제목 | [성경] 성지에서 만나는 성경 말씀: 실로암과 기혼 샘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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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주호식 | 작성일2023-03-20 | 조회수2,481 | 추천수0 | |
[성지에서 만나는 성경 말씀] 실로암과 기혼 샘
예루살렘 성의 남동쪽에는 실로암 유적지가 있습니다. 기원전 8세기 후반 남왕국 임금 히즈키야가 외적의 침입에 대비하려고 기혼 샘물을 성안으로 끌어들였을 때 생겨난 저수지입니다. 예루살렘은 상당히 건조한 도시입니다. 예루살렘의 애칭인 ‘시온’(히브리어 [찌욘])을 ‘메마른 곳’이란 의미로 보기도 합니다. 올리브산만 넘으면 곧장 광야로 이어지지요. 그런 예루살렘이 유구한 역사의 중심이 될 수 있었던 건 기혼 샘 덕분입니다. 히즈키야 임금은 이런 생명수를 지키려고 긴 터널을 파서 성안으로 물을 끌어들였습니다. 샘이 성 바깥에 있으면 적이 와서 독을 탈 수도 있고, 성이 포위당할 경우에는 물을 확보하기가 어려워지기 때문입니다. 이런 중요성을 반영하듯, 솔로몬은 기혼 샘에서 기름부음을 받아 왕위에 올랐습니다(1열왕 1,45). 또한 히즈키야 터널을 통해 기혼 샘물이 실로암으로 끌어들여진 이후에는, 예수님께서 “태어나면서부터 눈먼 사람”을 그곳으로 보내어 눈을 고쳐 주셨습니다(요한 9,1-12). 말하자면, 예수님께서는 기혼 샘물이 흘러 만들어진 실로암 못으로 소경을 보내신 것입니다.
이는 당시 실로암이 정결 예식터였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실로암과 연결되는 기혼 샘의 지명이 에덴 동산과 관련된 까닭인 듯합니다. 창세 2,10-14에 따르면, 생명수의 원천인 에덴 동산에서는 네 개의 강이 흘러나오는데요, “피손” “기혼” “티그리스” 그리고 “유프라테스”입니다. 이 가운데 티그리스강과 유프라테스강은 실재하는 지명입니다. 반면, 피손과 기혼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설이 제시되지만, 실존하는 강은 아닌 듯합니다. 아마도 원조들이 죄를 지은 뒤에덴 동산은 돌아갈 수 없는 장소가 되었기에, 성경에선 실제 지리에서 찾을 수 없는 강의 이름을 써서 말 그대로 ‘유토피아’, 곧 ‘어디에도 없고 어디서도 찾을 수 없는 곳’이 되게 한 것 같습니다.
다만 에덴 동산과 관련해, 예루살렘의 생명수인 “기혼” 샘의 지명이 언급된 점은 퍽 의미심장합니다. 성경 시대에 예루살렘 성전은 가장 높은 곳에 자리해 있었고, 기혼 샘은 그 밑에서 흘러나오는 형태였습니다. 말하자면, 에덴에서 흘러나오는 강 가운데 하나가 ‘기혼’이듯이, 성전 아래에서 ‘기혼’ 샘물이 흘러나온 것입니다. 게다가 에덴 동산 입구에 커룹들이 불 칼을 들고 지키게 되는데(창세 3,24), 옛 성전 지성소에 모셔진 계약 궤 위에도 커룹들이 장식되어 있었습니다. 그래서 옛 성전, 특히 일반 백성의 출입이 금지된 지성소는 에덴 동산을 재현하는 의미를 지녔던 셈입니다.
그렇다면 예수님께서는 에덴 동산과 관련된 물로 소경의 눈을 뜨게 해 주신 것이지요. 당신께서 침으로 진흙을 개어 소경의 눈에 발라 주신 건(요한 9,6-7), 하느님께서 흙으로 아담을 빚으셨다는 창세 2,6-7을 떠올리게 합니다. 실제로 암흑 속에 산 소경에게 처음으로 눈을 뜬 날은 마치 새로 태어난 날처럼 여겨지지 않았을까요?
* 김명숙 소피아 - 예루살렘 히브리대학교 구약학과에서 공부하여 석사학위와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한님성서연구소 수석연구원으로 일하며, 수도자 신학원 등에서 구약학을 강의하고 있다. 저서로는 <에제키엘서>와 <예레미야서 1-25장>, <예레미야서 26-52장>이 있다.
[2023년 3월 19일(가해) 사순 제4주일 의정부주보 2면, 김명숙 소피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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