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구약] 하느님 뭐라꼬예?: 판관기를 시작하며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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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주호식 | 작성일2023-04-11 | 조회수1,707 | 추천수0 | |
[하느님 뭐라꼬예?] 판관기를 시작하며
판관기의 배경: 가나안 전쟁
앞에서 여호수아기를 시작하면서, 열왕기 상,하권은 유다교 전통에 따라 대부분이 예언자가 쓴 것으로 여기고 있어 ‘전기 예언서’로, 또한 신명기 사상을 토대로 이스라엘과 유다 두 왕국의 역사에 대해 예언적 해석을 제공하고 있어 ‘신명기계 역사서’로도 불린다고 했습니다. 이들 전기 예언서 혹은 신명기계 역사서들이 다루는 시기는 ‘이스라엘이 이집트를 탈출하여 가나안을 점령하고 생활한 때로부터 시작하여 바빌론으로 잡혀가 유배생활을 할 때’까지입니다. 즉 전체적으로 보아 기원전 1220년~기원전 587년까지의 역사를 기술하고 있는데, 이를 세분하자면 ‘여호수아기’와 ‘판관기’는 (모세의 사후[死後]) 가나안 정복과정을 거쳐 이스라엘 국가를 건설하는 왕국 초기까지의 역사를, ‘사무엘기’와 ‘열왕기 상권 11장’은 사울과 다윗과 솔로몬을 중심으로 하는 왕국의 본격적인 역사를, (열왕기 상권 12장부터의) ‘열왕기’는 남과 북으로 갈라진 왕국 멸망의 역사를 다루고 있습니다.
이렇게 판관기는 여호수아기에 이어 이집트를 탈출한 이스라엘 지파들이 가나안 땅을 정복해나가면서 왕정(王政)이 출현하기 전까지 어떻게 살아왔던가를 기술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 지파들은 가나안 땅에 정착하는 과정에서 성공과 실패를 오가는 어려운 시간을 반복해서 겪어내야 했습니다. 지파들은 그렇게 무수한 싸움을 치른 후 마침내 각자 고유한 영토를 나누어 받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다 끝난 게 아니었습니다. 여전히 가나안인들이 이스라엘 왕국이 건립되기 전까지 성읍을 중심으로 (지파들과 섞여서) 살고 있었고, 그러한 적(敵)들로 말미암은 위협과 전쟁이 지파들의 삶 가까이에 자리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바로 이러한 시기에 이스라엘 백성을 이끈 인물들을 ‘판관’(判官)이라고 부릅니다.
이스라엘 신앙의 산물
판관기는 여러 가지 면에서 이해하기 쉽지 않은 문헌이지만 그 이야기 속에서 줄곧 잘 나타나는 흐름이 있습니다. 그것은 먼저 이스라엘 자손들이 하느님의 눈에 거슬리는 악한 짓을 저질러 하느님께서 그들을 적들의 손에 넘겨 버리셨다는 것이고, 다음으로 이스라엘 자손들이 하느님께 부르짖자 평화롭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즉 하느님께서 당신 백성의 탄원에 응답하시어 판관 또는 구원자를 세우심으로써 원수들이 굴복하게 되었으니 이후 몇 해 동안은 평온하였다는 것이지요. 한마디로 이스라엘이 불충하여 어려움에 처하게 되더라도 그때마다 하느님께서 당신의 백성을 도와주신다는 것입니다. 이는 이스라엘인들이 지녔던 신앙과 확신의 내용이기도 합니다. 판관기는 이러한 신앙과 확신 속에서 이야기를 전개해 나갈 뿐만 아니라 이를 더욱 심화시키는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이 책(판관기) 전체의 뼈대를 이루는 신학적 틀은, 계속 하느님을 저버리고 우상 숭배에 빠져들려는 이스라엘의 나약성과, 억압당하는 당신 백성의 지파들을 구원하시려고 끊임없이 사람들을 보내시는 하느님의 인내를 먼저 강조하면서, 이러한 믿음을 더욱 강화시킨다. … 우리는 당신(하느님)의 영을 받은 지도자들(10; 6,34; 11,29; 13,25; 14,6.19; 15,14), 인간적으로 볼 때에 나약하고 부족한 사람들을 보내시어 한 백성을 인도하시는 하느님의 행동을 발견할 줄 알아야 할 것이다. 그들은, 하느님의 백성을 의롭게 인도할 수 있도록 주님의 영을 받아야 하는 이스라엘 임금을 예시한다. 그리고 이스라엘 임금은 다시 다양한 은사를 지닌 주님의 영을 받는 메시아를 예고한다.(이사 11,2)”(한국천주교 주교회의, 주석성경 구약, 587쪽)
불충의 시대에 구원하시는 하느님의 손길
“모세에 이어서 이스라엘 민족을 이끈 여호수아의 시대는 하느님의 백성이 주님께 충성을 다한 시대였다. 그러나 판관 시대는 한마디로 불충의 시대로 묘사된다. 이러한 내용의 서문에 이어, 판관들의 행적을 전하는 단편적인 이야기들이 펼쳐진다. 판관들은 모두 열둘인데(바락과 아비멜렉은 판관이 아니다.), 그들에 관한 서술의 길이는 제각각이다. … 판관기는 왕정이 수립되기 전에 이스라엘에 팽배해 있던 무질서와 혼란을 보여 주는 두 개의 부록과 함께 끝을 맺는다.”(한국천주교 주교회의, 주석성경 구약, 583-584쪽)
판관의 시대는 모세와 여호수아의 시대와는 달리 전반적으로 하느님께 불충한 시대였습니다. 이렇게 이스라엘 백성이 하느님께 반역을 일삼던 때를 배경으로 활약한 인물들이 바로 판관이지요. 그들은 자신의 원의나 백성들의 선출에 의해서가 아니라 하느님께서 뽑아 세운 카리스마적 인물이었습니다. 이를 잘 드러내는 성경본문을 살펴봅니다.
“주님께서는 판관들을 세우시어, 이스라엘 자손들을 약탈자들의 손에서 구원해 주도록 하셨다. 그런데도 그들은 저희 판관들의 말을 듣지 않을뿐더러, 다른 신들을 따르며 불륜을 저지르고 그들에게 경배하였다. 그들은 저희 조상들이 주님의 계명에 순종하며 걸어온 길에서 빨리도 벗어났다. 그들은 조상들의 본을 따르지 않았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그들을 위하여 판관들을 세우실 때마다 그 판관과 함께 계시어, 그가 살아 있는 동안 내내 그들을 원수들의 손에서 구원해 주도록 하셨다.”(판관 2,16-18)
재판관, 지도자, 구원자로서의 판관
성경의 전통에 의하면 왕정 이전의 시기는 ‘판관 시대’로 불립니다. 판관기는 이스라엘 백성이 가나안 땅을 정복해나가는 과정에서 보인 불충과 징벌을 이야기하면서 (단수명사로서의 ‘판관’이라는 호칭이 아닌) 복수명사로 ‘판관들’을 언급하는데, 이들은 (분문 자체에서 흔하게 사용하고 있지는 않지만) 하느님께서 당신 백성을 구원하려고 선택하신 사람들을 가리킵니다.
판관은 어떤 인간적인 용맹이나 계승을 통해서가 아니라 하느님의 자유로운 구원의지에 의해 그때그때 하느님으로부터 파견을 받은 구원자로, 이스라엘을 어려움으로부터 구해내는 하느님의 도구로 나타납니다. 판관기 본문을 살펴보면 판관들은 ‘판관’이라는 호칭보다도 ‘하느님으로부터 사명을 받은 사람’ ‘재판을 하는 사람’ ‘구원의 역할을 하는 사람’으로 더 자주 불리는데, 그들의 활동영역은 재판정에만 국한되지 않고 사회, 정치, 종교 전반에 걸쳐져 있었습니다. 본연의 구원자이신 하느님께서 당신의 구원을 실현시키기 위해서 선택하신 ‘구원자’로까지 불릴 정도였지요.
판관기의 역사적 중요성
판관기는 편집 과정에서 드러난 여러 불확실성에도 불구하고 (여호수아의 죽음 이후) 팔레스타인에서 시작된 정착생활을 거쳐 왕정의 출현에 이르는 (약 200여 년에 달하는) 이스라엘의 역사에 대해 유일한 자료를 제공하고 있습니다. 이 시기에 이스라엘은 중앙정부나 국가체제 없이 느슨하게 조직된 지파체제로 있었지만, 그럼에도 하느님과의 계약과 계약궤가 있었던 성소를 구심점으로 하느님께서 자신의 영에 의해서 지명된 대표인 판관들을 통해 자기 백성을 직접적으로 다스리는 통치체제였습니다.
이렇게 판관기는 이스라엘 열두 지파가 아직 한 나라로서 정치적으로 통일된 상태가 아니었을 때 이스라엘 민족 전체를 (느슨하게) 연결하고 있는 열두 지파들의 동맹의식에 대해 단편적이나마 들려주고 있습니다. 판관기를 통해 초기 이스라엘의 신앙과 체제에 대해, 그리고 이스라엘 몇몇 지파들의 역사와 생활에 대해 개략적이나마 알게 되길 바랍니다.
[월간 레지오 마리애, 2023년 4월호, 조현권 스테파노 신부(대구대교구 사무처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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