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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구약] 다윗 이야기: 제가 무슨 잘못을 저질렀다는 것입니까?(1사무 20,1) - 다윗이 도망쳐 목숨을 건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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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주호식 쪽지 캡슐 작성일2023-04-14 조회수1,372 추천수0

[다윗 이야기] “제가 무슨 잘못을 저질렀다는 것입니까?”(1사무 20,1) - 다윗이 도망쳐 목숨을 건지다

 

 

네 번째 이야기 : 1사무 19-23,18

 

다윗이 전쟁에서 승리를 거듭하며 명성이 높아지자, 사울은 아들 요나탄과 모든 신하들에게 다윗을 죽이겠다고 밝힌다.(18,30-19,1) 왕권을 잃을까 두려웠던 것이다. 요나탄은 다윗이 골리앗과 필리스티아를 제압하여 왕권을 이롭게 했을 뿐 아니라 죄지은 일이 없으므로 무죄한 이를 죽이는 것은 하느님께 죄가 된다며 사울을 설득한다. 사울은 “주님께서 살아 계시는 한, 다윗을 결코 죽이지 않겠다.”고 맹세하지만 이는 오래가지 못한다.(19,4-6) 다윗의 목숨은 그가 필리스티아에게 승리를 거둔 직후 다시 위태롭게 된다. 

 

“사울이 창으로 다윗을 벽에 박으려고 하였으나, 다윗이 사울 앞에서 몸을 피하는 바람에 창이 벽에 꽂혔다. 다윗은 도망쳐 목숨을 건졌다. 그날 밤, 사울은 전령들을 다윗의 집으로 보내며, 지키고 있다가 아침에 죽이라고 하였다. 그러나 다윗의 아내 미칼이 남편에게 ’오늘 밤 당신의 목숨을 건지지 않으면, 내일은 죽게 될 것입니다.’ 하고 일러 주었다. 미칼이 다윗을 창문으로 내려 보내니, 다윗은 달아나 목숨을 건졌다.”(19,10-12)

 

지금까지 사울의 창을 두 번이나 피했지만(18,11) 이번에는 상황이 심상치 않았다. ‘도망치다’와 ‘목숨을 건지다’ 라는 표현이 세 번 반복되어 긴박감이 강조되고 있다. ‘도망치다, 달아나다’로 옮겨진 ‘누우스’는 ‘가까스로 벗어나다’의 뜻인데, 다윗과 사울 이야기에 자주 등장한다.(1사무 19,12.18; 20,1; 21,11; 22,17; 27,4) ‘목숨을 건지다’로 옮겨진 ‘말라트’는 ‘구원받다’의 뜻으로 신적 개입을 나타내는 말이다. 다윗의 도피 생활을 들려주는 19-22장에는 그의 목숨과 관련된 ‘말라트’ 동사가 8회 쓰이고, 그중에서 5회가 위의 사건에 집중된다.(19,10.11.12.17.18) 사울도 승전의 무공을 세웠던 전사였다. 가까이에서 악기를 연주하는 다윗에게 창을 던져 맞히는 것이 어려웠을 리 없다. 다윗이 ‘도망쳐 목숨을 건진’ 일은 민첩함이나 행운이 아니라 하느님께서 그의 목숨을 구해 주셨기 때문이다. 

 

“제가 무슨 짓을 했단 말입니까? 제가 무슨 잘못을 저질렀다는 것입니까? 왕자님의 아버님께 무슨 죄를 지었기어, 그분께서 이렇게 제 목숨을 노리신단 말입니까?… 저에게 잘못이 있다면 차라리 왕자님이 저를 죽여 주십시오.”(20,1.8)

 

사울의 도성인 기브아에서 도망친 다윗은 먼저 사무엘이 있는 라마로 간다. 그 후 요나탄을 찾아가 억울함과 결백을 호소했다. 요나탄은 다윗을 대신해 아버지에게 “왜 그가 죽임을 당해야 합니까? 그가 무슨 짓을 했다고 그러십니까?”라고 탄원한다. 그러나 다윗을 죽이기로 작심한 사울을 멈추게 할 수는 없었다.(20장) 다윗은 놉에서 빵과 무기를 얻고 사울의 추격을 피할 수 있는 필리스티아의 갓으로 달아난다. 여기서도 위험해지자 그는 갓과 고향 베들레헴의 중간 산악지대인 아둘람의 굴속으로 숨어든다. ‘아둘람’은 ‘피신처’라는 뜻으로 마치 다윗의 처지를 대변하는 듯하다.

 

하느님은 인간에게 선택의 자유를 주셨기에 인간은 선이 아닌 악을 택할 수 있다. 인간 세상에 들어온 악은 깊어져 자기 탓 없이 고통을 겪는 일이 만연하다. 다윗의 목숨을 건져주신 하느님이 세상을 회복하시는 길, 곧 그분의 구원은 무고한 이의 고난을 ‘면제’하는 방식이 아니라 고난의 한 가운데를 ‘통과’하는 길이다. 열 번의 재앙을 겪고서야 물러서는 인간의 완고함을 다 치러내고 하느님은 이스라엘을 구원하신다. 예수님의 파스카 역시 수난을 온전하게 다 통과한 부활이었다. 파스카는 우리말에서 한 단어로 번역할 수 없다. ‘건너가다, 통과하다’라는 의미의 이 말은 고난과 죽음에서 생명으로 건너가는 그 모든 과정 전체를 함축하는 까닭이다.

 

다윗은 홀로 산악과 유다 광야(지프와 마온)를 떠돌지만 언제나 여러 모양으로 무고한 이를 돌보시는 분의 손길 안에 있었다. 미칼과 요나탄은 다윗의 목숨을 구하고자 자신이 겪을 수도 있는 위험을 감수한다.(19,11-17; 20장) 사무엘은 다윗의 첫 은신처가 되어주고, 놉의 사제 아히멜텍은 다윗을 신뢰하며 거룩한 빵과 골리앗의 칼을 내어준다.(19,18; 21,1-10) 다윗은 필리스티아와 모압의 미츠파 땅에서도 도움의 받는다. 그리고 차츰 그에게 모여드는 이들이 늘어나 그 수는 사백 명에 이르게 된다.(22,1-2) 

 

“다윗은 광야의 산성에서 살았다...사울은 날마다 그를 찾아다녔지만, 하느님께서는 다윗을 그의 손에 넘기지 않으셨다.”(23,14)

 

사람은 곤경에 처하면 ‘왜 이런 일이 제게 일어납니까? 제가 무얼 잘못했나요?’라고 다윗처럼 호소하게 된다. 곤경이 길어지는 가운데 세상에 나 혼자가 된 듯 광야를 체험한다. 다윗이 모압 임금에게 부모님을 맡기며 하는 말은 새겨볼 만하다. : “하느님께서 저를 어떻게 하실지 알게 될 때까지, 저의 부모님이 임금님과 함께 머무르게 해 주십시오.”(22,3) 다윗은 고난에 매몰되지 않았다. 그는 자기 삶의 주인 되시는 분의 뜻을 헤아리고자 기다리는 마음을 잃지 않고 있다. 자신의 처지를 그대로 끌어안은 가운데 하느님을 향한다. ‘하느님께서 나에게 어떤 일을 하시려는지’를 알고자 하고, 믿음 가운데 구원을 갈망하는 다윗의 강렬한 눈빛이 보이는 듯하다.

 

우리의 녹록지 않은 인생에서 쫓기듯 힘겨울 때 다윗과 그의 하느님을 기억해 볼 일이다. 시련 가운데 하느님께서 나와 함께 무엇을 해 나가시는지 알기 위해서는 믿음을 잃지 않고 기다리는 인내가 필요하다. 깨어 인내롭게 모든 여정을 ‘통과’하는 이에게서 하느님과 그분의 구원하는 힘이 드러난다.

 

신앙인은 그렇게 하느님께 영광을 드리라고 부르심 받고 선택된 이들이 아닐까. 

 

“나를 쓰러뜨리려 그렇게 밀쳤어도 주님께서는 나를 도우셨네. 주님은 나의 힘, 나의 굳셈, 나에게 구원이 되어 주셨네.”(시편 118,13-14)

 

[월간빛, 2023년 4월호, 송미경 베로니카 수녀(성바오로딸수도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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