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구약] 성경에 빠지다21: 유배 이전 예언자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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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주호식 | 작성일2023-05-03 | 조회수1,739 | 추천수0 | |
[리길재 기자의 성경에 빠지다] (21) 유배 이전 예언자들 회개하라 꾸짖고 멸망을 경고한 예언자들
- 예언자는 하느님의 뜻을 이스라엘 백성에게 전달하는 사람이다. 그들은 모세의 가르침에 따라 하느님을 섬기며 주님의 뜻대로 살아가도록 이스라엘 백성들을 일깨웠다. 윤혜순 클라라, 엘리야 예언자, 이콘.
예언자는 하느님의 뜻을 이스라엘 백성에게 전달하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예언자들은 임금이나 이스라엘 백성에게 말할 때 “주님의 말씀이 나에게 내렸다” “주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신다”라는 말로 예언을 시작하고 끝맺습니다. 예언자들의 역할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모세의 가르침에 따라 하느님을 섬기며 주님의 뜻대로 살아가도록 일깨우는 것이었습니다.
이러한 예언자들의 사명은 임금이 잘못할 때에 두드러집니다. 임금들이 하느님을 제대로 섬기지 못하고 우상 숭배에 빠질 때 이를 나무라고 경고하는 이들이 예언자들이었습니다. 그러니 임금들은 예언자들을 달가워하지 않았습니다. 북 왕국 이스라엘과 남 왕국 유다에서 임금과 예언자 사이의 갈등은 왕국이 멸망할 때까지 지속됐습니다.
예언 운동은 북 이스라엘에서 발전합니다. 북 왕국 이스라엘에는 엘리야와 그의 제자 엘리사, 아모스, 호세아 같은 예언자들이 나타나 백성들을 깨우치고 회개하라고 호소했으나 무위로 끝납니다. 예언서들을 남긴 예언자들 이전에 활동한 예언자 가운데 가장 중요한 예언자는 북 왕국 이스라엘의 엘리야와 엘리사입니다.(1열왕 17장-2열왕 8장) 엘리야는 바알 우상을 섬기는 이들과 정면으로 맞부딪쳐 싸웠습니다. 엘리야는 우리말로 “나의 하느님은 야훼”라는 뜻입니다. 엘리야 예언자는 자기 이름 그대로 야훼 하느님께 대한 신앙의 수호자였습니다. 그는 사마리아에 이교 신전을 세우고 우상 숭배를 한 아합 임금과 이스라엘 백성에게 “주님께서 하느님이시라면 그분을 따르고 바알이 하느님이라면 그를 따르십시오”(1열왕 18,21)라고 요구했습니다. 그리고 카르멜 산 위에서 450명이 되는 바알의 예언자들과 홀로 싸워 주님께서 참 하느님이심을 온 백성에게 드러냈습니다. 엘리야 예언자는 또 아합이 나봇의 재산을 탐해 그를 죽이고 포도밭을 차지하자 아합의 자손들이 처참하게 죽을 것을 예언하면서 임금이 하느님 위에 있을 수 없음을 선포했습니다.
북 왕국 이스라엘이 경제적으로 가장 번영했을 때 아모스 예언자는 사회 부조리를 고발하고 사치 풍조를 규탄하며 하느님과 맺은 계약의 정신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외쳤으나 역시 실효를 거두지 못했습니다.
남 왕국 유다의 쪽 예언자들 활동에서 주목할 것은 ‘메시아 사상’이 발전하기 시작했다는 점입니다. 메시아란 ‘기름 부음 받은 자’란 뜻이고 헬라어로는 ‘그리스도’입니다. 구약 시대의 임금이 즉위할 때 기름으로 축성했습니다. 사제가 성직에 오를 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때로는 예언자도 기름으로 축성했습니다. 따라서 왕이나 사제, 예언자도 메시아였습니다.
이스라엘 12지파가 임금을 세우면서 하느님께 바치는 백성들의 제사 의식은 왕실의 제사로 변질되었습니다. 12지파들이 새해 축제 때에 시나이 계약 갱신 의식을 거행하던 것이 왕정 시대가 열리면서 하느님께서 다윗 왕조의 영속성을 보장했다는 것을 기념하는 축제로 바뀌었습니다.
그런데 해마다 이런 의식을 거행하지만 선정을 베푸는 임금은 드물었습니다. 거의 모두 악행만 저지르며 실망시켰습니다. 그래서 제사 의식에서는 차츰 훌륭한 임금이 나타나 주기를 바라는 소망이 깃들게 됩니다. 다윗 후손 가운데에서 이상적인 임금이 나타나 주길 바라는 소망이 바로 메시아 사상의 기원이 됩니다. 곧 메시아 사상의 못자리는 제사 의식이었던 것입니다.
안타깝게도 남과 북 두 왕국에서 하느님의 눈에 드는 임금이 좀처럼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미카 예언자는 유다 지배층의 부패를 규탄하고 사제들의 부정 불의를 비난했습니다. 심지어 예루살렘과 성전도 파괴될 것이라는 예언까지 했습니다. 그는 이렇게 유다 왕국의 멸망을 예언하면서도 베들레헴에서 위대한 지도자가 나타나리라는 희망을 보였습니다. 이는 다윗 왕에 대한 향수라고 할 수도 있습니다.
이사야는 메시아 사상을 재해석합니다. 그는 하느님께서 다윗에게 약속하신 것을 무조건 믿고 안심하는 그릇된 희망을 가져선 안 된다고 했습니다. 시나이산 계약에 따라 하느님의 백성으로서의 ‘의무’ 곧 도덕적 의무를 다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반드시 멸망한다고 경고했습니다. 그러면서도 이사야 역시 메시아에 대한 희망을 피력합니다. 이사야가 예언한 임마누엘과 평화로운 나라에 대한 이야기가 바로 그러했습니다.
예레미야는 가장 비극적인 예언자였습니다. 그는 죽을 때까지 유다가 망한다는 예언만 되풀이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많은 박해를 당했습니다. 그러나 예레미야도 장래에 대한 희망을 버리지 않았습니다. 하느님께서 새로운 계약을 맺을 때가 온다고 선포했습니다. 그것은 현재 질서나 왕국, 그리고 현 사회 체제가 완전히 와해된 다음 폐허 너머 하느님께서 직접 개입하시어 세우시는 새로운 질서에 대한 희망이었습니다.
예언자들이 이 메시아가 다스릴 새 왕국에 대한 희망을 백성들에게 남겼기 때문에 이스라엘 민족은 유배의 시련 속에서도 살아남을 수 있었습니다.
유배 이전의 예언자들이 이스라엘 민족이 죄 때문에 심판이 다가오는 것을 경고했다면, 유배 시절부터 예언자들은 하느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용서하시어 다윗 왕조를 재건하실 것이라고 선언합니다.
[가톨릭평화신문, 2023년 4월 30일, 리길재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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