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구약] 성경에 빠지다22: 바빌론 유배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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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주호식 | 작성일2023-05-09 | 조회수2,349 | 추천수0 | |
[리길재 기자의 성경에 빠지다] (22) 바빌론 유배 위기를 기회로, 율법 중심으로 다시 서다
- 포로가 되어 바빌론으로 끌려가 50년 간 유배 생활을 한 유다인 지도자들과 지식층은 율법 중심의 하느님 신앙을 싹틔우기 시작했다. 제임스 티소, ‘포로들의 대이동’, 뉴욕 유다인박물관.
아시리아는 이스라엘을 점령한 후 자국 백성들을 데려와 그 땅에 살게 했습니다. 이러한 식민 정책으로 북 왕국 10개 지파는 혈통의 순수성을 잃고 신앙도 변질됐습니다. 그래서 유다인들은 이들을 ‘사마리아인’이라 부르며 멸시했죠. 반면, 남 왕국 유다를 멸망시킨 신바빌로니아는 유다인들을 자기 나라에 끌고 갔습니다.
유다인들의 바빌론 유배는 이스라엘 민족사에 있어 모든 것이 뒤바뀌는 엄청난 사건이었습니다. 이스라엘 민족의 모든 제도와 체제가 종말을 고했습니다. 또 예루살렘의 성전과 왕궁이 모두 파괴됐습니다. 그로 인해 국가 제전(祭典)이 붕괴돼 종교적으로도 큰 위기를 맞습니다. 놀랍게도 이러한 절망 속에서도 유다인들은 다시 일어나 새로운 하느님의 백성을 태동시킵니다. 바로 ‘율법 중심의 유다교’가 바빌론 유배지에서 싹을 틔우기 시작합니다.
기원전 597ㆍ587ㆍ582년 세 차례에 걸쳐 유다인 4600명이 포로로 바빌론으로 끌려갔습니다.(예레 52,28-30) 이 숫자는 당시 관습에 따라 성인 남자만 셈한 수입니다. 여자와 어린아이를 합하면 이 수의 몇 배가 될 것입니다. 성경학자들은 그 수가 적어도 2만 명 이상이 될 것으로 추정합니다.
포로로 끌려간 유다 남자 대부분은 정치ㆍ종교ㆍ사회 지도층의 유력자들이며 지식인들이었습니다. 그들은 기원전 538년 신바빌로니아를 멸망시킨 페르시아 키루스 임금의 칙령으로 유배지에서 해방되어 귀향할 때까지 50년 동안 바빌론과 니푸르 지역에서 살았습니다. 처음엔 모진 고생을 했지만, 점차 부를 쌓고 신바빌로니아 왕궁의 관리가 되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유배지에서 이스라엘의 새로운 미래를 설계했습니다. 무엇보다 먼저 하느님께 대한 신앙을 회복하는 일에 온 힘과 정성을 쏟았습니다.
이스라엘은 지연이나 혈연 때문이 아니라 하느님께 대한 신앙으로 탄생한 민족입니다. 그들은 바빌론 유배지에서 자신들이 왜 이토록 시련을 겪어야 하는지를 성찰했습니다. 그리고 이사야, 예레미야, 에제키엘 예언자의 설교를 상기하고 되씹으면서 회개했습니다. 그들은 예언자들이 경고한 대로 자신들이 겪는 고난은 바로 민족의 죄에 대한 하느님의 당연한 징벌임을 깨닫습니다. 그리고 이 징벌은 마땅히 거쳐야 하는 정화의 과정이며, 이를 통해서만이 이스라엘 민족의 새로운 미래를 열 수 있다는 것을 성찰합니다.
성전도, 축제도, 제의(祭儀)도, 나라도 없으니 무엇으로 하느님께 선택받은 백성임을 증거할 수 있을까?하는 물음에 그들은 ‘오직 율법을 열심히 지키는 것’이라고 확신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율법을 다시 공부하고 안식일과 할례, 정결법, 십일조를 열심히 지키기 시작했습니다. 이렇게 함으로써 그들은 하느님의 백성이라는 신앙 고백을 외적으로 드러낼 수 있었습니다.
또 유다인들은 바빌론 유배생활 동안 하느님께 대한 신앙의 의미를 심화시키기 위해 조상들의 이야기를 다시 읽고 정리하기 시작했습니다. 이 작업이 구약 성경 저술 단계에 결정적 역할을 합니다. 그들은 오늘날 성경학자들이 ‘전기 예언서’라고 분류하는 신명기계 역사서들을 편집하기 시작했습니다. 또 예언자들의 설교도 수집해 글로 남겼습니다. 율법들도 재정리했습니다.
바빌론 유배 시기에 위대한 예언자 두 명이 등장합니다. 바로 에제키엘과 이사야입니다. 둘은 유배지의 유다인들이 하느님께 대한 믿음을 회복할 수 있도록 독려했습니다. 아울러 예루살렘이 함락된 것은 유다인들이 하느님께 등을 돌려 온갖 우상을 숭배했기 때문이라고 탓했습니다. 그러면서 그들은 하느님께서 새 예루살렘 성전을 세우시고 온 세상에 새 생명을 주실 것이라고 예언했습니다.
특히 이사야는 ‘이스라엘의 해방’을 선포했습니다. 그의 예언대로 하느님께서는 페르시아 키루스 임금을 통해 유다인들을 해방시키셨습니다. 이사야는 “역사를 심판하고 한 나라가 일어서고 무너지는 것은 하느님의 주권에 달려 있다”면서 “하느님께서 ‘새로운 이집트 탈출’ 사건을 통해 이스라엘을 다시 일으켜 세우시어 하느님의 승리를 떨치게 할 것”이라고 예언합니다.
이사야는 아울러 한 분이신 하느님께 대한 유일신 사상을 신학적으로 가장 명확하게 체계화합니다. 그는 ‘하느님만이 거룩하신 분’이라고 고백했습니다. 거룩하심은 하느님의 초월성, 절대성, 인간이 범접할 수 없음을 뜻합니다.
이사야는 더불어 ‘주님의 종’(42장, 49장, 50장, 52-53)의 모습을 통해 역사 안에서 하느님의 구원 경륜을 실현하는 구세주를 드러냅니다. 주님의 종은 이스라엘 전체를 가리키기도 하지만 ‘종의 노래’에 나오는 주님의 종은 특별한 한 인간을 지칭합니다. 그는 하느님께서 선택한 이, 마음에 드는 사람입니다. 그리고 그는 아무 죄가 없으면서도 다른 이들의 죄를 짊어지고 고통을 받습니다. 그는 이 고통을 하느님께 대한 순종으로 받아들입니다. 그가 불평 없이 참아 받는 그 고난과 죽음은 대속의 성격을 띱니다. 바로 임마누엘입니다.(이사 7,10-17) 신약 성경의 네 복음사가는 이사야가 예언한 주님의 종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시다”라고 고백합니다.
[가톨릭평화신문, 2023년 5월 7일, 리길재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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