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구약] 성경 인물 이야기: 수산나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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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주호식 | 작성일2023-05-16 | 조회수1,527 | 추천수0 | |
[함신부가 들려주는 성경 인물 이야기] 수산나 (1)
지금부터 소개할 성경 인물은 수산나입니다.
수산나는 다니엘서에 등장하는 여인으로, 그의 이야기는 다니엘서 13장에 수록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다니엘서 13장과 14장은 꿈란 동굴에서 발견된 현존하는 최고(最古)의 다니엘서 사본에는 들어있지 않을 뿐 아니라, 히브리어가 아닌 그리스어로 기록되어 있어 후대의 첨가로 여겨집니다. 내용도 다니엘서의 다른 부분과는 이질적이어서, 어찌 보면 다니엘서의 부록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예전에 공동 번역 성서는 이 부분을 제2 경전으로 분류하여 마치 성경으로서의 권위가 덜한 듯한 오해를 불러일으키기도 했습니다.
그런데도 여기서 굳이 다니엘이 아니라 수산나의 이야기를 하려는 까닭은 다니엘이 유명세를 누리는 동안 수산나는 너무 오랫동안 그의 그림자에 가려져 있었기 때문입니다.
많은 이가 수산나를 주체가 아닌 객체로 보아왔습니다. 수산나를 단지 다니엘의 지혜를 돋보이게 하기 위한 하나의 도구처럼 여긴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수산나 이야기를 다 읽고 나서는 ‘역시 다니엘은 대단해!’ 하며 감탄합니다. 그렇다면 이야기 제목도 ‘수산나 이야기’가 아니라 ‘다니엘 이야기’라고 불러야죠.
하지만 분명히 말씀드리는데, 수산나는 절체절명의 위기 상황에서 누군가가 내밀어 줄 도움의 손길만을 기다린 가련한 여인이 아닙니다. 적어도 다니엘서 13장에서 가장 능동적으로 움직이는 주인공은 수산나입니다.
이 사실은 수산나 이야기가 철저한 남성 중심 사회였던 고대 이스라엘을 배경으로 한다는 것을 생각하면 놀라운 점입니다. 어떻게 수산나가 이야기의 주인공이 될 수 있는지 같이 보시죠.
먼저 수산나 이야기의 줄거리를 살펴봅시다.
이야기의 무대는 기원전 6세기의 바빌론입니다. 기원전 587년 유다 왕국의 멸망 이후 유다인들은 바빌론에 포로로 끌려온 신세였지만, 이곳에서 어느 정도의 독립적인 삶을 누릴 수 있었습니다. 그들은 일정한 범위 안에서 행정권과 사법권을 자치적으로 행사했습니다. 그래서 유다인들은 자신들만의 재판관을 임명했는데, 기가 막히게도 수산나의 이야기에는 두 범죄자가 재판관으로 등장합니다. [2023년 5월 14일(가해) 부활 제6주일 가톨릭안동 3면, 함원식 이사야 신부(갈전마티아 본당 주임)]
[함신부가 들려주는 성경 인물 이야기] 수산나 (2)
유다인 가운데 아주 부유한 요아킴이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그는 이 위선자들의 정체를 알지 못한 채 그들을 덕망 있는 원로로 생각하여 자기 집을 마음껏 사용하라고 내주었습니다. 그런데 요아킴에게는 매우 아름다운 아내 수산나가 있었습니다.
수산나를 본 두 원로는 음욕을 품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요아킴이 집을 비운 어느 날 그들은 목욕하는 수산나에게 달려가 자신들과 잠자리를 함께 하든지 간음죄로 고발을 당하든지 선택하라고 협박했습니다.
그들의 뜻을 따르자니 하느님의 계명을 어겨 큰 죄를 짓는 것이고, 그들의 뜻을 거부하면 간음죄로 고발되어 틀림없이 유죄판결을 받고 사형을 당할 것임을 수산나는 알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진퇴양난의 상황에서도 수산나는 당당한 태도를 보이며 그들의 강요에 저항합니다.
그러자 두 원로는 협박했던 대로 수산나를 간음죄로 고발하며 거짓 증언을 합니다. 참으로 억울한 일이지만, 그들의 놀이터와 마찬가지인 법정에서 수산나는 사형을 선고받고 맙니다.
수산나가 하느님께 호소하자, 하느님께서는 다니엘을 보내시어 정의를 바로 세우게 하십니다. 다니엘은 두 원로에게 각각 질문하여 엇갈린 진술을 끌어냄으로써 그들의 음모와 거짓을 밝혀냅니다. 이로써 결백한 수산나는 살게 되고, 두 위선자는 죽임을 당하게 됩니다.
이 수산나 이야기에 대한 해석은 다양합니다. 전통적으로 덕의 승리, 기도의 효력, 하느님께서 무고한 이가 중상모략의 희생자가 되도록 내버려 두지 않으심을 알리거나, 역경과 유혹에도 반드시 의인과 악인에게 합당한 대가를 치르게 하시는 하느님을 신뢰하고 순종하도록 격려하는 이야기 등으로 해석되었습니다. 유다 전승은 우상 숭배, 돼지고기를 먹는 것과 더불어 3대 죄로 꼽는 성적 문란의 치명적 결과를 경고하는 이야기로 해석하기도 했습니다.
여기서는 이야기의 신학적인 해석보다 수산나의 인물됨에 주목하고자 합니다.
수산나 이야기 자체가 그의 결백함을 증명하고 있지만, 어이없게도 수산나의 이미지는 종종 부정적으로 그려졌습니다. 교부 시대부터 수산나가 위기의 상황에 부닥치게 된 데는 자신의 책임도 있다고 보았습니다. 자신에게 기름을 바르는 행위로 표현된 감각적 즐거움을 추구하고 사치를 누리려는 욕망이 사건의 시발점이 되었다는 말입니다. [2023년 5월 21일(가해) 주님 승천 대축일(홍보 주일) 가톨릭안동 3면, 함원식 이사야 신부(갈전마티아 본당 주임)]
[함신부가 들려주는 성경 인물 이야기] 수산나 (3)
수산나의 이름이 등장인물들의 이름 가운데서 홀로 이질적인 점도 비판적으로 해석되었습니다. 수산나의 남편 요아킴은 ‘하느님께서 일으키신다.’ 아버지 힐키야는 ‘하느님의 몫’, 다니엘은 ‘하느님의 심판’이라는 뜻으로 모두 하느님 중심적인 이름입니다.
하지만 수산나는 백합을 뜻합니다. 이것은 하느님과 연관을 지을 수 없는 이름처럼 보입니다. 그리고 꽃은 아름답고 향기롭지만, 나무와 비교하면 연약하고 생명이 짧습니다. 그래서 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이라는 말처럼 꽃이 아름다울 때는 잠시에 불과합니다. 따라서 수산나를 곧 사라져 버릴 자신의 아름다움에 취해 위기를 자초하는 어리석음의 상징으로 보았습니다.
더 심하게는, 자신의 아름다움을 뽐냄으로써 의도와 관계없이 원로들을 유혹한 책임이 수산나에게 있다고 보는 이들도 있었습니다. 이 관점은 예술의 세계에서 더 극명하게 드러났는데, 루벤스를 비롯한 많은 화가가 수산나를 관능적이고 유혹적인 모습으로 그려냈습니다.
13장 56절을 다니엘이 원로에게 하는 말을 통해 수산나를 간접적으로 비난하는 말씀으로 이해한 이들도 있습니다: “아름다움이 당신을 호리고 음욕이 당신 마음을 비뚤어지게 하였소.” 자칫하면 원로가 수산나의 유혹에 넘어간 피해자가 될 판입니다.
13장 31절에서 수산나가 베일로 자기 얼굴을 가려 아름다움을 숨긴 일을 사건이 벌어진 뒤에야 비로소 자기 잘못을 깨달은 것이라고 해석하기도 했습니다.
사실 성범죄의 피해자인 여성을 비난하는 일은 고대에 흔했는데, 불행히도 오늘날도 여자가 짧은 치마를 입어서 성범죄가 일어난다는 황당한 주장을 하는 이들이 있습니다.
그런데 수산나의 이름은 전혀 다르게도 해석할 수 있습니다. 수산나는 우리말 성경에 나리꽃으로 번역되어 있는데, 아가에 다섯 번 나옵니다(2,2.16; 4,5; 6,3; 7,3). 여기서 나리꽃은 이스라엘을 상징합니다. 호세아서 14,6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내가 이스라엘에게 이슬이 되어 주리니 이스라엘은 나리꽃처럼 피어나고 레바논처럼 뿌리를 뻗으리라.” 이 구절을 유다 전승 미드라시는 이렇게 해석하고 있습니다. “랍비 아분이 말했다. ‘이슬이 내릴 때 백합이 꽃 피듯 이스라엘도 그리하리라.” 이 맥락에서 수산나는 화무십일홍이 아니라 이스라엘 백성의 상징입니다. [2023년 5월 28일(가해) 성령 강림 대축일(청소년 주일) 가톨릭안동 3면, 함원식 이사야 신부(갈전마티아 본당 주임)]
[함신부가 들려주는 성경 인물 이야기] 수산나 (4)
역할에 집중하지만, 사실 이 이야기에서 가장 중요하고 결정적인 순간은 수산나가 기도하는 장면입니다. “아, 영원하신 하느님! 당신께서는 감추어진 것을 아시고 무슨 일이든 일어나기 전에 미리 다 아십니다. 또한 당신께서는 이자들이 저에 관하여 거짓된 증언을 하였음도 알고 계십니다. 이자들이 저를 해치려고 악의로 꾸며 낸 것들을 하나도 하지 않았는데, 저는 이제 죽게 되었습니다.”(13,42-43)
수산나의 기도로 상황이 반전됩니다. 수산나의 기도를 들은 하느님께서 다니엘을 보내시는 것이죠(13,44-45).
수산나 기도의 장르는 고백입니다. 이것은 유다 전통과도 부합하는데, 미시나에 따르면 사형을 선고받은 이는 형 집행에 앞서 자기의 죄를 공적으로 고백해야 합니다. 그런데 만일 억울한 죽임을 당하게 된 경우는 자신의 무죄를 고백하게 되어있습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이미 범죄의 시간과 장소, 범인의 정체와 범행의 유형에 대한 수사, 증인신문 등의 철저한 조사를 거쳐 재판정에서 선고된 사형은 취소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기도를 들으시는 하느님의 도움에 대한 요청을 내포한 수산나의 무죄 고백은 상황을 반전시키는 실제적인 효력을 냅니다. 이것은 수산나의 믿음에 대한 하느님의 응답입니다: “마음으로 주님을 신뢰하고 있었기 때문이다.”(13,34)
수산나의 기도가 또 하나 있습니다: “수산나는 눈물이 가득한 채 하늘을 우러러보았다.”(13,34) 기도는 말로만 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미드라시에는 이런 말이 있습니다: “성전이 파괴된 뒤 기도의 문은 닫혔지만, 눈물의 문은 닫히지 않았다.”
이렇게 볼 때, 수산나의 기도는 행위로 시작해 말씀으로 완성됩니다. 기도하는 수산나는 다니엘의 화려한 등장을 준비하는 무대 장치가 아니라, 이 이야기를 하느님의 개입이라는 클라이맥스로 끌고 가는 능동적인 주체입니다.
수산나는 역사적 실존 인물이 아닙니다. 그런데 수산나가 한 특정 인물의 이름이 아니라는 바로 이 사실 때문에 오늘날도 억울한 처지에 있는 모든 이는 수산나가 될 수 있습니다. 너무나 억울해서 숨도 제대로 쉬어지지 않는데, 누구의 도움도 기대할 수 없는 절망에 빠진 모든 사람이 수산나입니다. 이들에게 수산나는 권고합니다. 오직 하느님께 눈물과 기도로써 도움을 청하라고 말입니다. [2023년 6월 4일(가해) 지극히 거룩하신 삼위일체 대축일 가톨릭안동 3면, 함원식 이사야 신부(갈전마티아 본당 주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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