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신약] 스승의 날에 만나는 스승 예수 그리스도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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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주호식 | 작성일2023-05-16 | 조회수818 | 추천수0 | |
스승의 날에 만나는 스승 예수 그리스도 제자들 편에서 눈을 맞추고 진리 전한 자비로운 스승
- 코시모 로셀리 ‘산상설교와 나병환자를 고치심’. 예수님은 성전과 회당, 들판 등 어디에서든 사람들을 가르치며 소통한 스승이었다.
학교에서 혹은 인생에서 가르침을 전해주는 사람. 우리는 삶에서 한 번은 중요한 스승을 만난다. 어느 설문조사에 따르면, 대학생들은 중요한 결정을 앞두고, 장래 문제에 고민이 있을 때, 인생이 허무하고 외롭게 느껴질 때 인생의 스승을 찾는다고 답했다. 이들은 공감과 소통능력, 신뢰감, 배려심, 도덕성, 결단력을 스승의 덕목으로 꼽았다. 삶이 녹록지 않기에, 올바른 방향을 알기 어렵기에 우리는 나침반이 돼줄 멘토를 필요로 하는 것이다. 열두 명의 제자를 이끌었던 예수님은 어떤 스승이었을까? 지금의 젊은이들과 같은 고민을 했을 그 시대 사람들에게 예수님은 어떤 조언을 건넸을까? 스승의 날을 맞아 스승 예수 그리스도의 발자취를 찾아본다.
공감 바탕으로 소통했던 스승
마태오복음에는 예수님을 따른 많은 사람들의 이야기가 나온다.
“예수께서 온 갈릴래아를 두루 다니시며 회당에서 가르치시고 하늘 나라의 복음을 선포하시며 백성 가운데서 병자와 허약한 사람들을 모두 고쳐주셨다. … 그러자 갈릴래아와 데카폴리스와 예루살렘과 유다와 요르단 강 건너편에서 온 많은 무리가 예수를 따랐다.”(마태 4,23-25)
이처럼 제자들뿐 아니라 자신에게 적대적인 사람들에게조차 스승으로 알려졌던 예수 그리스도. 예수님은 성전과 회당, 들판 등 어디에서든 사람들을 가르치며 소통한 스승이었다. 사람들은 예수님 곁에 모여서 율법이나 살면서 해결되지 않는 문제들에 대한 견해를 듣고자 했다. 세금납부 여부(마르 12,13-17), 혼인과 이혼에 관한 문제(마르 10,1-12), 가족 간의 유산 다툼(루카 12,13-15), 계명의 중요성(마르 12,28-34) 등 그 주제는 다양했다.
지혜와 식견 갖춘 스승
예수님은 자신을 함정에 빠뜨릴 수 있는 질문에 현명하게 대처할 수 있는 지혜를 갖춘 스승이었다.
로마에 세금을 내는 것을 싫어했던 유다인들은 어느 날 예수님에게 다가와 “황제에게 세금을 내는 것이 합당한가, 그렇지 않은가”라는 질문을 던진다. 합당하지 않다고 대답한다면 로마에 대한 반항을 부추긴다고 주장할 것이고, 그 반대라면 로마 편에 선 자라고 비난할 요량이었다.
이에 예수님께서는 그들의 간악한 속셈을 아시고 이렇게 답했다. “이 위선자들아, 어찌하여 나의 속을 떠보느냐? 세금으로 바치는 돈을 나에게 보여라.” 그들이 데나리온 한 닢을 가져오자 예수님께서는 “이 초상과 글자는 누구의 것이냐?”하고 물으시고, ‘카이사르의 것’이라는 답이 오자 “그러면 카이사르의 것은 카이사르에게 돌리고 하느님의 것은 하느님께 돌려라”라고 말씀하셨다.(마태 22, 18-22 참조)
카이사르의 초상과 글자가 새겨진 데나리온을 직접 가져오라면서 로마 제국의 것을 지니고 있는 바리사이의 위선을 꾸짖은 것이다. 그들은 이 말씀을 듣고 경탄하면서 예수 그리스도를 떠나갔다.
눈높이 맞게 맞춤 교육한 스승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많은 것을 비유로 가르치셨다.”(마르 4,2)
복음에 나타나 있듯 예수님께서는 비유를 들어 가르치셨다. 예수님께서는 하느님 나라와 같은 낯선 개념들을 씨앗, 밀, 누룩, 양, 농부 등 익숙한 것들과 비교해 설명했다. 알기 쉬운 말들로 재편된 예수님의 가르침은 제자들이 진리를 쉽게 파악할 수 있도록 도울 뿐 아니라 기억하기 쉽게 전달됐다.
하느님 나라를 겨자씨에 비유한 가르침이 대표적이다. “하느님 나라는 겨자씨와 같다. 땅에 뿌릴 때에는 세상의 어떤 씨앗보다도 작다. 그러나 땅에 뿌려지면 자라나서 어떤 꿀보다도 커지고 큰 가지들을 뻗어 하늘의 새들이 그 그늘에 깃들일 수 있게 된다.”(마르 4,31-32)
예수님께서는 비유로 가르치는 이유를 제자들에게 이같이 전한다. “너희에게는 하느님 나라의 신비가 주어졌지만, 저 바깥 사람들에게는 모든 것이 그저 비유로만 다가간다. ‘보고 또 보아도 알아보지 못하고 듣고 또 들어도 깨닫지 못하여 저들이 돌아와 용서받는 일이 없게 하려는 것이다.’”(마르 4,11-12)
마르코복음은 예수님께서 사람들이 알아들을 수 있을 정도로 많은 비유로 말씀하셨다고 전한다. 또한 제자 한 명 한 명을 배려한 스승이었음은 마르코복음 4장 34절에 드러난다. “비유를 들지 않고는 그들에게 말씀하지 않으셨다. 당신의 제자들에게는 따로 모든 것을 풀이해 주셨다.”
가려진 눈 열리게 한 스승
예수님의 부활을 믿지 못한 채 엠마오로 향하던 두 제자. 눈이 가려져 부활한 스승을 알아보지 못한 그들은 예수 그리스도가 “무슨 일이냐?”고 묻자 “천사들은 그분이 살아계시다고 일렀지만 우리 동료 몇 사람은 그분을 보지 못했다”고 대답한다.
“아, 어리석은 자들아! 예언자들이 말한 모든 것을 믿는 데에 마음이 어찌 이리 굼뜨냐? 그리스도는 그러한 고난을 겪고서 자기의 영광 속에 들어가야 하는 것이 아니냐?” 이렇게 제자들에게 호통을 친 예수님은 이윽고 제자들에게 모세와 모든 예언자로부터 시작하여 성경 전체에 걸쳐 당신에 관한 기록들을 설명해 준다.
여전히 예수 그리스도를 알아보지 못한 채 마을에 도착한 제자들은 예수님과 식탁에 앉았을 때 비로소 큰 깨달음을 얻는다.
“그들과 함께 식탁에 앉으셨을 때, 예수님께서는 빵을 들고 찬미를 드리신 다음 그것을 떼어 그들에게 나누어 주셨다. 그러자 그들의 눈이 열려 예수님을 알아보았다. 그러나 그분께서는 그들에게서 사라지셨다. 그들은 서로 말하였다. ‘길에서 우리에게 말씀하실 때나 성경을 풀이해 주실 때 속에서 우리 마음이 타오르지 않았던가!’”(루카 24,30-32)
비난 대신 사랑 베푼 스승
유다는 예수 그리스도를 팔아넘길 생각을 했고, 베드로는 예수 그리스도를 세 번이나 모른다고 말했다. 제자들이 배신할 것을 알고 있었음에도 예수 그리스도는 그들의 발을 씻어줬다.
“예수님께서는 ‘내가 하는 일을 네가 지금은 알지 못하지만 나중에는 깨닫게 될 것이다’하고 대답하셨다. 그래도 베드로가 예수님께 ‘제 발은 절대로 씻지 못하십니다’ 하니, 예수님께서 그에게 대답하셨다. ‘내가 너를 씻어 주지 않으면 너는 나와 함께 아무런 몫도 나누어 받지 못한다.’ … ‘내가 너희에게 한 일을 깨닫겠느냐? 너희가 나를 스승님, 또 주님하고 부르는데, 그렇게 하는 것이 옳다. 나는 사실 그러하다. 주님이며 스승인 내가 너희의 발을 씻었으면, 너희도 서로 발을 씻어 주어야 한다. 내가 너희에게 한 것처럼 너희도 하라고, 내가 본을 보여 준 것이다.’”(요한 13,7-15)
제자의 잘못을 알고 있음에도 묵묵히 지켜보며 오히려 사랑을 베푼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은 힘든 길을 걸어가고 있는 이들에게 우리가 어떤 멘토, 혹은 스승이 돼야 하는지 알려준다.
[가톨릭신문, 2023년 5월 14일, 민경화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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