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성경] 성지에서 만나는 성경 말씀: 바벨탑 사건과 성령 강림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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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주호식 | 작성일2023-05-30 | 조회수2,120 | 추천수0 | |
[성지에서 만나는 성경 말씀] 바벨탑 사건과 성령 강림
예루살렘의 성령 강림 기념 경당에 가면, 바벨탑 이야기(창세 11,1-9)가 떠오릅니다. 인간이 하느님의 영역을 침범하여 도전했다고 해석되어 온 이야기입니다. 하지만 이 이야기가 전하려 한 메시지는 따로 있습니다. 그것은 노아의 홍수 뒤 인류가 어떤 계기로 세상에 흩어져 서로 다른 말을 쓰게 되었는지를 전해주는 것입니다. 곧 인류가 흩어진 결과를 창세 10장에서 먼저 언급하고, 그 원인을 11장에서 설명한 것입니다.
이야기의 배경은 바빌론입니다. “바벨”은 히브리어로 바빌론을 뜻하는 고유명사인데요, 바빌론 사람들은 ‘지쿠라트’라 하는 탑을 쌓고 그것이 신들의 계단으로서 하늘과 땅을 이어준다고 믿었습니다. 바벨탑도 이런 ‘지쿠라트’였을 것입니다. 지쿠라트에는 종종 ‘꼭대기가 하늘까지 닿는다.’라는 수식어가 붙곤 했는데, 창세 11,4에도 “꼭대기가 하늘까지 닿는 탑”이란 구절이 나옵니다. 그렇다면 “하늘까지 닿는 탑”이란 우리가 생각했던 바와는 달리, 신성한 영역을 침범하려 한 시도가 아니라 매우 높은 건축물을 묘사할 때 사용한 관용 표현이라 하겠습니다. 신명 1,28에도 유사한 표현이 나옵니다: “성읍들은 클뿐더러 하늘까지 닿는 요새로 되어 있다.” 바벨탑 이야기에 나오는 인간의 도전은 다른 것이었습니다. 곧 ‘온 세상에서 번성하라.’(창세 1,28) 하신 하느님의 명을 거슬러, 인류가 탑을 쌓고 요새를 건설해 그들끼리 흩어지지 않게 한 것입니다(11,4). 이에 하느님께서는 언어를 뒤섞어 자기들끼리 뭉치려 한 인류를 흩어 버리셨습니다.
하지만 스바니야 예언자는 거만한 이들이 회개하는 날, 주님께서 흩어진 인류를 하나로 모으실 거라는 메시지를 전합니다(3,9-11). 주님께서 정하신 때가 되면 세상 만민이 서로 이해하며 주님의 이름을 받들어 부르리라는 것입니다. 이는 인류가 하느님의 뜻을 거슬러 뭉친 바벨탑 시대와 달리, 이제는 주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 하나가 되리라는 예고입니다. 그럼, 이 신탁은 언제 실현되었을까요?
그 첫 단계는 사도 2,1-13에 나오는 성령 강림 사건이었습니다. 사도들이 한자리에 모여 있을 때 불꽃 모양의 혀들이 내려앉자, 그들은 성령으로 가득 차 다른 언어들로 말하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리고 여러 나라에서 온 사람들이 사도들의 말을 각자 자기 말로 알아들으며 어리둥절하게 되었습니다. 언어가 다른 이들이 사도들의 말을 알아들었다는 건 바벨탑 이후 갈린 언어가 통합되었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실제로 2000년이 흐른 지금, 우리는 보편된 교회 안에서 하나인 새로운 인류를 발견합니다. 바로 전 세계 어디서든 공통된 미사에 참여하는 그리스도인 말입니다. 과거 사도들의 말을 저마다 자기 언어로 알아들었듯, 지금은 흩어진 민족들이 하나의 미사 안에서 한 목소리로 하느님을 찬미하고 있습니다. 게다가 이제는 하느님의 뜻을 실현하기 위해 모이기에, 미사 안에서 하나 되는 범세계적 공동체는 흩어짐 이후 내린 스바니야의 재회합(再會合) 신탁을 실현하고 있는 것입니다.
* 김명숙 소피아 - 예루살렘 히브리대학교 구약학과에서 공부하여 석사학위와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한님성서연구소 수석연구원으로 일하며, 수도자 신학원 등에서 구약학을 강의하고 있다. 저서로는 <에제키엘서>와 <예레미야서 1-25장>, <예레미야서 26-52장>이 있다.
[2023년 5월 28일(가해) 성령 강림 대축일(청소년 주일) 의정부주보 2면, 김명숙 소피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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