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구약] 성경 인물 이야기: 에스테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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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주호식 | 작성일2023-06-12 | 조회수1,122 | 추천수0 | |
[함신부가 들려주는 성경 인물 이야기] 에스테르 (1)
지금부터 소개할 인물은 에스테르입니다. 에스테르가 좀 생소한 분들도 계시겠지만, 에스테르기는 유다인들이 아가, 룻기, 코헬렛, 애가와 더불어 매우 중요한 민족적 의미가 있는 사건들을 기념하는 절기에 읽는 메길롯(축제 오경)에 속하는 책입니다. 아가는 파스카, 룻기는 오순절, 코헬렛은 초막절, 애가는 성전 파괴 기념일, 에스테르기는 푸림절에 읽습니다. 푸림절의 유래는 아래에서 살펴보겠습니다.
에스테르가 실존 인물이었느냐에 대하여는 논란이 있습니다. 그런데 사실 지금까지 유다 여인이 페르시아의 왕비가 되었다는 기록은 어디에서도 발견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다수의 학자는 에스테르기의 문학 장르를 실제 역사를 배경으로 하지만, 가공의 인물들이 등장하여 가상의 사건을 일으키는 역사 소설로 분류합니다. 역사의 비어있는 공간을 상상력으로 메운 문학이라는 말이죠. 세종대왕의 한글 창제를 다룬 ‘뿌리 깊은 나무’와 같은 드라마를 생각하시면 되겠습니다.
하지만 에스테르기는 단순히 흥미를 위한 소설이 아닙니다. 추정되는 집필 연대를 고려하면, 에스테르기는 비록 페르시아 제국의 크세르크세스 임금 시대(기원전 496~464년)를 배경으로 하고 있지만, 실제로는 훨씬 후대인 셀레우코스 왕조의 안티오코스 4세(기원전 175~164년)가 유다교를 말살하려고 일으킨 박해 상황을 반영하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이 상황에서 에스테르기는 하느님께서 이방인의 손에서 당신 백성을 반드시 구원하신다는 가르침을 주고 있습니다.
어쨌든, 우리에게 에스테르의 역사성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성경에 기록된 대로의 에스테르가 어떤 인물이었으며, 그가 우리에게 어떤 신앙적 가르침을 줄 수 있는지를 살펴볼 것이기 때문입니다.
에스테르기는 ‘크세르크세스 대왕 통치 제이년 니산 달 초하룻날’(1,1)로 시작합니다. 크세르크세스는 그리스-페르시아 전쟁을 다룬 영화 ‘300’에도 등장하는 페르시아의 임금입니다.
기원전 587년 유다를 멸망시킨 신바빌로니아를 정복한 페르시아는 기원전 538년 포로로 끌려와 있던 유다인을 해방했습니다. 하지만 모든 이가 유다로 돌아간 것은 아니었습니다. 많은 유다인은 폐허가 된 고향으로 돌아가기보다 이미 대를 이어 뿌리를 내린 곳에 그냥 머무는 것을 선택했습니다. 이 남은 자들 가운데 에스테르가 있었습니다. [2023년 6월 11일(가해) 지극히 거룩하신 그리스도의 성체 성혈 대축일 가톨릭안동 3면, 함원식 이사야 신부(갈전마티아 본당 주임)]
[함신부가 들려주는 성경 인물 이야기] 에스테르 (2)
에스테르의 본래 이름은 하다싸(2,7)인데, 도금양나무를 뜻하는 하다쓰가 어원입니다. 도금양 나무는 늘 푸른 관목으로서 평화와 축복의 상징이었습니다. 에스테르는 이방 양식에 맞추어 개명한 이름인데, 신바빌로니아의 전쟁의 여신인 이쉬타르가 어원으로 보입니다. 별을 의미하는 페르시아어 스타라에서 파생되었다고 보기도 합니다.
크세르크세스 임금에게는 와스티라는 이름의 왕비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와스티는 연회 도중 임금이 왕비의 아름다움을 사람들 앞에서 자랑하기 위해 부른 명령을 거역하여 폐위됩니다.
에스테르기에는 와스티가 왕명을 거역한 이유가 나오지 않습니다. 그런데 유다 전승 중 하나인 에스테르 랍바가 그 이유를 밝히고 있습니다: “만일 그들(연회의 손님들)의 눈에 제가 아름답게 보인다면, 그들은 저를 빼앗기 위해 당신을 죽일 것입니다. 반대로 만일 그들이 보기에 제가 평범하다면, 그것은 당신에게 불명예가 됩니다.”
와스티가 폐위된 뒤 에스테르가 그를 대신하여 페르시아의 새 왕비가 됩니다. 여기서 에스테르 덕분에 페르시아에서 유다인들의 입지가 확고해질 것이라고 기대할 수 있겠습니다. 하지만 반대로 에스테르가 왕비가 되자마자 제국 내의 유다인 전부가 학살당할 위기에 처합니다.
페르시아의 이인자인 하만과 에스테르의 사촌이었다가 양아버지가 된 모르도카이 사이의 갈등이 그 발단이 되었습니다. 모르도카이의 이름은 에스테르와 마찬가지로 이방식으로 개명한 것입니다. 신바빌로니아의 최고신 마르둑에서 유래한 이름으로 추정합니다.
하만과 모르도카이의 갈등은 오래전 있었던 한 사건을 모티브로 한 듯합니다. 모르도카이는 벤야민 지파(2,5)에 속하며 하만은 아각 사람(3,1)입니다. 그런데 1사무 15장에는 벤야민 지파 출신의 사울 임금이 아말렉 임금 아각과 싸워 이기고 그를 죽이는 장면이 나옵니다. 하만 또한 모르도카이와의 대결에서 패하여 죽음을 맞이하게 됩니다.
크세르크세스 임금을 제외한 모든 이가 하만에게 무릎을 꿇고 절을 해야 했으나, 모르도카이는 이를 거부합니다. 그러자 이에 분노한 하만은 유다 민족을 몰살하려는 계획을 세웁니다. 그런데 사실 이 부분은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한 사람이 자신의 기분을 상하게 했다고 해서 그의 가문도 아니고 민족 전체를 학살한다는 것은 비약이 심해도 너무 심하죠. [2023년 6월 18일(가해) 연중 제11주일 가톨릭안동 3면, 함원식 이사야 신부(갈전마티아 본당 주임)]
[함신부가 들려주는 성경 인물 이야기] 에스테르 (3)
유다인 전체를 학살하려 한 하만의 행동은 이렇게 해석할 수 있습니다:
고대 근동에서는 한 해의 시작에 만신전(萬神殿)의 신상들 앞에서 제비를 뽑아 점을 치는 관습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하만은 제비를 신상 앞에서 뽑지 않고 자기 앞에서 뽑게 합니다(3,7). 스스로 에피파네스(신의 현현)라고 불렀던 안티오코스 4세처럼 하만 또한 자신의 신적 권위를 강조한 것입니다.
그러니 유일신 하느님을 믿는 유다인인 모르도카이가 신의 반열에 오르고자 하는 하만에게 절을 하지 않은 것이 이해됩니다. 그 행위가 단순히 예를 표하는 것이 아니라 우상 숭배가 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것은 하만이 유다인 전체를 말살하려는 이유도 됩니다. 자신의 신격화에 걸림돌이 되는 괘씸한 유다 민족에 대한 개인적인 분풀이도 되겠지만, 더 큰 이유가 있을 수 있습니다.
로마가 제국 내의 모든 신들을 위한 공동 신전 판테온을 세운 것처럼, 여러 민족을 아우르는 제국은 고대인들의 삶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였던 종교의 관용과 화합을 중시했습니다. 그런데 유다인들은 하느님 외의 다른 신들, 즉 다른 민족의 종교를 인정하지 않으니, 하만은 그들을 제국의 통합과 안정을 저해하는 심각한 골칫덩이로 보았을 수 있습니다.
하만의 계획을 알게 된 모르도카이는 옷을 찢고 자루옷을 입은 다음 재를 뒤집어쓰고 통곡합니다. 이것은 위기의 상황에서 하느님께 탄원하는 행위입니다: 티모테오스가 다가오자, 마카베오와 그의 군사들은 머리에 흙을 뿌리고 허리에 자루옷을 두르고서 하느님께 탄원하였다.(2마카 10,25) 모르도카이는 비록 이방 땅에 살며 이름조차 이방식으로 개명했지만, 조상 대대로 지키던 종교 관습은 보존한 것입니다.
그런데 에스테르의 반응이 이상합니다. 그는 경악하여 즉시 모르도카이에게 갈아입을 옷을 보냅니다(4,4). 다시 말해, 어서 자루 옷을 벗어버리라는 말입니다.
에스테르는 그냥 자신과 밀접한 관계에 있는 모르도카이가 궁 앞에서 소란을 멈추기만을 바라고 있습니다. 얼마나 무서운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아직은 알지 못했다고 해도, 모르도카이가 온몸으로 표현하고 있는 고통에 전혀 공감하지 못하고 제 안위만을 챙기고 있습니다. 전 왕비 와스티가 사소한 이유로 폐위된 일을 알기에 더 그런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2023년 6월 25일(가해) 민족의 화해와 일치를 위한 기도의 날 가톨릭안동 3면, 함원식 이사야 신부(갈전마티아 본당 주임)]
[함신부가 들려주는 성경 인물 이야기] 에스테르 (4)
흥미로운 점은 이 부분에서 에스테르는 단지 ‘왕비’로 불린다는 사실입니다. 지금 그에게 가장 중요한 정체성은 세계 최강대국 페르시아에서 가장 고귀한 여인인 왕비라는 암시입니다.
그래서 동족이 학살당한 위기에 처했다는 사실을 알고 난 뒤에도 에스테르는 처음에는 그들을 구하기 위해 나서기를 주저합니다:
“임금님의 모든 시종과 임금님께 속한 모든 주의 백성들이 알고 있는 바와 같이, 부름을 받지 않고 안뜰로 임금님께 나아간 자에게는 남자든 여자든 오직 한 가지 법규만이 있으니, 곧 사형입니다. 오직 임금님이 황금 왕홀을 내밀어 주셔야만 살아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저는 이미 삼십 일 동안이나 임금님께 들도록 부름을 받지 못한 형편이랍니다.”(4,11)
이런 에스테르를 모르도카이가 설득합니다. 사실 그의 말을 들어보면 설득이라기보다는 협박입니다:
“왕궁에 있다고 모든 유다인들 가운데 왕비만 살아남으리라고 속으로 생각하지 마시오. 그대가 이런 때에 정녕 침묵을 지킨다면, 유다인들을 위한 해방과 구원은 다른 데서 일어날 것이오. 그러나 그대와 그대의 아버지 집안은 절멸하게 될 것이오.”(4,13-14)
에스테르는 결국 민족의 구원을 위해 나서게 되는데, 그 동기는 협박에 대한 두려움이 아닙니다. 에스테르의 소명을 일깨우는 모르도카이의 마지막 말이 그의 마음을 움직인 것으로 보입니다: “누가 알겠소? 지금과 같은 때를 위하여 그대가 왕비 자리에까지 이르렀는지.”(4,14)
이러한 해석의 근거는 에스테르의 말입니다: “그러다 죽게 되면 기꺼이 죽겠습니다.”(4,16) 그에게는 아직 하느님께 대한 굳은 믿음이 없습니다. 그래서 살 생각보다 죽을 생각을 먼저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어쨌든 죽음에 대한 협박이 두려워서 모르도카이의 청을 받아들였다면, 죽음까지 각오하고 위험의 최전선에 뛰어들지는 않았겠죠.
하느님은 당신의 백성을 구하기로 결단한 에스테르를 저버리지 않으십니다. 부르지도 않은 에스테르가 불쑥 찾아왔을 때, 크세르크세스는 그가 궁중 법을 어겼다는 사실은 망각하고 귀엽다는 생각만을 하게 됩니다(5,2). 이것은 하느님께서 하신 일입니다. 평소 크세르크세스에게 그러한 마음이 가득했다면 에스테르를 30일 동안이나 찾지 않았을 리 없기 때문입니다. 그리스어로 쓰인 부분은 명시적으로 하느님께서 임금의 영을 부드럽게 바꾸어 놓으셨다고 합니다.(1,8) [2023년 7월 2일(가해) 연중 제13주일(교황 주일) 가톨릭안동 3면, 함원식 이사야 신부(갈전마티아 본당 주임)]
[함신부가 들려주는 성경 인물 이야기] 에스테르 (5)
크세르크세스의 마음을 확인한 에스테르는 연회를 열고 임금과 하만을 초대합니다. 그리고 연회 중에 자신이 유다인임을 밝히고, 하만으로부터 자기와 자기 민족을 살려달라고 임금에게 간청합니다. 그러자 크세르크세스는 하만이 모르도카이를 노리고 세운 말뚝에 그 자신을 매달아 죽입니다.
이후 페르시아 제국 전역에서 유다인들은 하만에게 동조하여 자신들을 죽이려던 원수들과 싸워 승리합니다. 그런데 적들의 재물에는 손을 대지 않습니다(9,10). 이것은 어떤 전리품도 챙기지 않는 헤렘법을 따른 것입니다. 헤렘법은 하느님께서 직접 싸우시는 전쟁에 적용됩니다. 승리가 오롯이 하느님의 것이기에 인간은 전리품에 대한 권리가 없는 것입니다. 유다인들은 재물에 손을 대지 않는 행위를 통해 이 모든 일이 당신 백성의 부르짖음에 응답하신 하느님께서 이루신 업적임을 고백한 것입니다.
이 구원 사건을 기념하기 위해 푸림절이 제정됩니다. 푸림은 제비 혹은 주사위를 가리키는 푸르의 복수형입니다. 유다 전승은 이 복수형을 이렇게 해석합니다: 주사위 두 개가 던져졌다. 하나의 주사위가 유다인들의 학살 날짜를 정하기 위해 하만 앞에서 던져질 때, 다른 하나는 하만이 죽을 날짜를 정하기 위해 하느님 앞에서 던져졌다.
에스테르가 하느님 백성의 구원을 위한 소명을 받는 장면을 보면, 즉각적이고 적극적인 응답을 하지 못하고 주저하는 모습이 실망스럽게 느껴질 수도 있겠습니다만, 사실 에스테르의 소명은 여느 예언자들의 것과 다릅니다. 모세는 불타는 떨기나무 속에서 하느님의 소명을 신비로운 방식으로 체험하고도 그것을 받아들이는 데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하지만 에스테르는 하느님의 직접적인 부르심을 체험하지 않고도 소명에 응답한 놀라운 여인입니다.
이름은 정체성을 상징합니다. 그러니 페르시아의 유다인들이 이방식 이름을 쓰고 있었다는 사실은 그들이 정체성의 혼란을 겪고 있었다는 것을 말합니다. 그런데 비록 하느님께 대한 완전한 신뢰를 갖지 못했음에도 소명에 응답한 에스테르의 결단은 유다인들을 구원하고 그들에게 하느님 백성으로서의 확고한 정체성을 되찾아 주었습니다.
에스테르기는 하느님의 부르심에 대한 응답은 확신이 아니라 결단에서 비롯되어야 한다고, 확신이 결단으로 이끄는 것이 아니라, 결단이 확신을 가져다준다고 말합니다. [2023년 7월 9일(가해) 연중 제14주일 가톨릭안동 3면, 함원식 이사야 신부(갈전마티아 본당 주임)]
[함신부가 들려주는 성경 인물 이야기] 에스테르 (6)
에스테르의 이름에는 ‘감추다’라는 의미가 있습니다. 과연 이 책에 감춰진 것은 무엇일까요? 놀랍게도 하느님께서 숨어계십니다.
무슨 말인가 하면, 에스테르기는 히브리어 사본과 그리스어 사본이 있는데, 히브리어로 쓰인 에스테르기는 하느님의 이름이 언급되지 않는 유일한 성경책입니다. 이 책에서 하느님은 당신을 직접적으로 드러내지 않으십니다. 즉, 명시적으로 역사에 개입하지 않으십니다.
참고로 우리말 성경의 에스테르기에는 하느님의 이름이 나오는데, 이것은 그리스어 부분이 첨가된 결과입니다.
우리도 때때로 하느님께서 계시지 않은 것처럼, 적어도 우리와 함께, 우리를 위하여 계시지는 않은 것처럼 느낄 수 있습니다.
그런데 에스테르기는 아주 낮은 확률로 발생할 수 있는 일들이 연속으로 이어짐을 통해 숨어 계신 하느님의 역사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1. 크세르크세스의 왕비 와스티가 어처구니없는 이유로 폐위되어 에스테르가 그 자리를 차지하게 된 것
2. 하만이 1월에 뽑은 주사위 점괘의 결과가 12월로 나와 유다인 학살의 시기가 최대한 미뤄진 것
3. 크세르크세스가 잠이 오지 않는 밤 하필 왕조 실록을 읽게 되어 모르도카이가 자기를 살린 공을 알게 된 것
4. 하만이 크세르크세스의 오해로 사형 선고를 받게 된 것
이렇게 많은 우연이 겹칠 확률이 얼마나 될까요? 연속되는 우연을 필연으로 만든 분은 하느님이십니다. 하느님이 보이지 않는다고 계시지 않는 것은 아닙니다.
에스테르는 우리에게 신앙은 하느님과의 숨바꼭질과 같다고 말하는 듯합니다. [2023년 7월 16일(가해) 연중 제15주일(농민 주일) 가톨릭안동 3면, 함원식 이사야 신부(갈전마티아 본당 주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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