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성경] 성지에서 만나는 성경 말씀: 축복과 저주?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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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주호식 | 작성일2023-06-25 | 조회수1,452 | 추천수0 | |
[성지에서 만나는 성경 말씀] 축복과 저주?
이스라엘의 중부 스켐의 에발산에 가면, 여호수아가 제단을 쌓고 율법서에 쓰인 “축복과 저주”를 백성에게 읽어주었다는 장면(여호 8,30-35)이 떠오릅니다. 이는 이스라엘이 가나안에 들어가 예리코와 아이라는 성읍을 정복한(6장; 8,1-29) 이후의 일이었습니다. 그런데 “하느님은 사랑”(1요한 4,8.16)이시라는 말씀에 익숙한 우리이기에, 율법서에 ‘저주’라는 말이 담겼다는 사실이 당혹스럽게 느껴집니다. 하느님 말씀과 어울리지 않아 보이기 때문입니다. 이 ‘저주’를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요?
율법서에 저주가 담겼다는 것이 우리에게 이질감을 주지만, 사실 이는 고대근동에 존재했던 일반 관습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저주는 나라 간 주종(主從) 계약을 체결할 때 으레 포함되던 항목입니다. 이는 신하국의 계약 위반이나 파기를 막으려 했던 일종의 장치로, 신하국 측에서 주군국과 맺은 계약을 지키지 않을 경우 이런저런 재앙을 겪으리라고 신들의 이름으로 서약한 것입니다. 하느님과 이스라엘이 맺은 계약도 주군과 신하 관계를 설정하는 것이므로 같은 구조를 갖추게 된 것이지요. 그렇다면 위 여호수아기에 언급된 저주는, 하느님께서 당신 백성의 불행을 바라며 일부러 내리신 것이 아니라, 당시의 계약 양식 안에 당연히 들어가던 요소로써 계약 위반이나 파기를 경고하신 거였음을 알 수 있습니다. 곧 성경에서 저주는 이스라엘 백성이 계약을 함부로 위반하거나 파기하지 않도록 막아주는 장치였던 셈입니다. 그 구체적인 징벌의 내용은 레위 26,14-39과 신명 28,15-68에 실려 있는데요, 이 징벌의 경고 바로 앞 대목(레위 26,3-13; 신명 28,1-14)에는 계약을 잘 지킬 경우 받게 될 상, 곧 축복의 내용이 나옵니다.
이런 축복과 징벌의 경고는 이후 예수님의 행복 선언과 불행 선언(루카 6,20-26)에도 영향을 준 듯합니다. 왜냐하면, 레위 26장과 신명 28장에 축복과 징벌의 경고가 나오듯이, 루카 복음에도 행복과 불행 선언이 나란히 나오기 때문입니다. 이때 예수님께서 불행한 사람으로 부유한 이들을 지목하신 건 부유함 자체 때문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으로 가난한 이들을 돕지 않았다는 데 이유가 있습니다(루카 16,19-31). 곧 혼자만 부를 누린 이들은 구원을 보장받을 수 없는 반면, 행복과 불행 선언에 이어지는 말씀, 곧 “남이 너희에게 해 주기를 바라는 그대로 너희도 남에게 해 주어라.”(6,31)는 가르침대로 살아간다면 하늘나라에 함께할 수 있다고 하십니다. 이는 구약 시대에 하느님께서 여호수아의 입을 빌려 ‘당신과 맺은 계약을 잘 지키면 가나안에서 복을 누리며 오래 살리라.’ 하신 말씀과 일치합니다.
지금의 스켐은 팔레스타인 자치 기구에 속해 안전상의 이유로 안타깝게도 순례자들의 방문이 어렵습니다. 하지만 3,200년 전 에발산에서 여호수아가 읽어주었다는 “축복과 저주”는 예수님의 가르침을 더 깊이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줍니다.
* 김명숙 소피아 - 예루살렘 히브리 대학교 구약학과에서 공부하여 석사와 박사 학위를 받았다. 현재 한님성서연구소에서 수석연구원으로 일하며, 저서로는 <에제키엘서>와 <예레미야서 1-25장>, <예레미야서 26-52장>, <구세사 산책; 에덴에서 약속의 땅까지>가 있다.
[2023년 6월 25일(가해) 민족의 화해와 일치를 위한 기도의 날 의정부주보 2면, 김명숙 소피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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