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구약] 성경에 빠지다35: 룻기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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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주호식 | 작성일2023-08-14 | 조회수676 | 추천수0 | |
[리길재 기자의 성경에 빠지다] (35) 룻기 다윗의 증조모, 진취적이고 지혜로운 여성의 표본
우리말 가톨릭 성경 ‘룻기’의 유다교 정경 타낙 성경 명칭은 ‘룻’입니다. 히브리 성경 헬라어 번역본 「칠십인역」은 ‘Ρουθ’, 라틴어 대중 성경 「불가타」는 ‘Ruth’으로 히브리 명칭을 음역해 그대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룻은 우리말로 ‘친구’라는 뜻입니다. 아울러 이 책의 제목이자 여주인공의 이름이기도 합니다.
룻기는 유다교 정경에서 ‘멜길롯’ 또는 유다교 축제 때 읽히는 ‘다섯 두루마리’(룻기ㆍ아가ㆍ코헬렛ㆍ애가ㆍ에스테르기)라고 불리는 성문서로 분류돼 있습니다. 룻기는 보리와 밀 추수를 배경으로 이야기가 전개되기에 유다교 축제 중 농경 축제 주간에 낭독됩니다. 아울러 룻기는 타낙 성경에서 잠언 뒤에 배치돼 있습니다. 잠언 31장 10-31절의 ‘훌륭한 아내에 대한 송가’를 현실적으로 들려주는 내용이 바로 룻기이기 때문입니다.
「칠십인역」에는 판관기 바로 다음으로 룻기가 편집돼 있습니다. 가톨릭 성경 정경에서 룻기는 ‘역사서’로 분류되며, 칠십인역본처럼 판관기와 사무엘기 사이에 자리합니다. 룻기는 판관기 19-21장이 묘사하는 무법적인 왕정 이전 시대로부터 다윗과 함께 시작되는 왕정의 새로운 시대로의 과도기를 뚜렷이 보여줍니다.
룻기는 모압 출신 룻이 유다인 시어머니 나오미와 곤궁한 현실 속을 이겨내며 서로 자애롭게 살아가는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룻은 다윗 임금의 증조모입니다. 곧 룻기는 다윗 임금의 증조할머니 이야기입니다. 아울러 룻은 예수 그리스도의 족보에도 나오는 몇 안 되는 여성 가운데 한 명입니다.
룻기는 구약 성경에서 처음으로 여성을 주인공으로 다룬 작품입니다. 구약 성경에서 여성의 이름을 제목으로 한 책은 룻기 외에도 ‘에스테르기’와 ‘유딧기’가 있습니다. 룻기는 이 두 책과 달리 가부장 중심 제도에서 여성의 사회적 현실을 구체적으로 다룹니다. 가난한 여인들의 삶을 위협하는 가부장 사회에서 나오미와 룻이라는 두 여인의 생존기입니다. 룻과 나오미는 운명을 스스로 개척해 가는 진취적이고 지혜로운 여인이며, 유다 여성들의 모범을 제시됩니다.
룻기는 네 부분으로 나뉩니다. 첫째 부분(1,1-22)은 나오미 가족이 기근으로 베들레헴에서 모압으로 이주한 내용을 들려줍니다. 그곳에서 남편 엘리멜렉과 두 아들이 죽은 후 나오미는 자신을 따라나서는 며느리 룻과 함께 베들레헴으로 돌아옵니다. 룻이 나오미를 따라나선 것은 ‘효성’(룻 3,10) 때문입니다. 둘째 부분(2,1-23)은 룻이 친족 보아즈의 밀밭에서 이삭을 주워 시어머니를 돌보는 과정을 보여줍니다. 셋째 부분(3,1-18)은 나오미가 룻과 보아즈를 결혼시키기 위해 두 사람만의 비밀스러운 만남을 주선한 이야기를 전합니다. 넷째 부분(4,1-22)은 보아즈가 룻을 아내로 맞고 오벳을 낳아 엘리멜렉 가문의 대를 이었다는 내용입니다.
성경학자들은 룻기의 저술 시기를 기원전 5세기 이스라엘 백성의 바빌로니아 유배 이후로 추정합니다. 그 이유는 저자가 판관 시대를 아주 먼 옛날로 이야기하고 있기 때문입니다.(룻 1,1; 4,7) 또 룻기에 나오는 하느님의 보편 사랑과 고통의 의미 등은 바빌로니아 유배 이후 시대에 등장하는 신학 사상입니다. 아울러 이방인과의 결혼을 자연스럽게 묘사한 것도 유배 이후 시대를 반영하는 것입니다. 본디 이스라엘 율법은 모압인들과 상종하지 말라고 합니다. “암몬족과 모압족은 주님의 회중에 들 수 없고, 그들의 자손들은 십 대손까지도 결코 주님의 회중에 들 수 없다.”(신명 23,4)
룻은 구세사에서 특별한 위치를 차지합니다. 룻은 아브라함의 삶과 연결돼 있습니다. 새 남편이 될 보아즈는 룻에게 “네 아버지와 어머니 그리고 네 고향을 떠나 전에는 알지도 못했던 겨레에게 온 것을 내가 다 잘 들었다”라고 합니다.(룻 2,11) 이 표현은 하느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네 고향과 친족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 내가 너에게 보여 줄 땅으로 가거라”(창세 12,1)고 하신 말씀과 연결됩니다. 또한, 룻은 고향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 이스라엘에 시집온 이방 여인 레베카(창세, 24,58-67)와 라헬(창세 29,28-30)과도 비교됩니다. 더욱이 룻이 이스라엘 여인이 아니라 모압 출신 이방인이라는 점에서 하느님의 구원은 이스라엘 민족에게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 모든 민족에게 열려 있는 보편적인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곧 하느님을 섬기는 자는 누구나 구원받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룻기의 핵심 내용은 1장 16절의 “어머님의 겨레가 저의 겨레요 어머님의 하느님이 제 하느님이십니다”라는 고백으로 집약됩니다. 룻기는 하느님께서는 충실하시다는 사실을 증거합니다. 룻에게 구원의 문을 열어 주신 분은 하느님이시며, 이는 하느님께서 당신 백성에게 신실하시다는 것을 드러냅니다.
룻기는 하느님께서는 늘 힘없는 이들과 연대하신다는 것을 드러냅니다. “하느님께서는 가난한 이를 돕는 사람에게 복을 주시고, 가난한 이에게 등을 돌리는 사람은 배척하신다. ‘달라는 자에게 주고 꾸려는 자를 물리치지 마라’(마태 5,42) ‘너희가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어라’(마태 10,8).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가난한 이들에게 해 준 것으로써 선택된 사람들을 알아보실 것이다. ‘가난한 사람들이 복음을 들을’(마태 11,5) 때, 그것은 그리스도께서 현존하시는 표징이 된다.”(「가톨릭교회 교리서」 2443항)
[가톨릭평화신문, 2023년 8월 23일, 리길재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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