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구약] 성지에서 만나는 성경 말씀: 아나톳 출신 예언자 예레미야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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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주호식 | 작성일2023-09-03 | 조회수669 | 추천수0 | |
[성지에서 만나는 성경 말씀] 아나톳 출신 예언자 예레미야
예루살렘에서 북쪽으로 5km가량 떨어진 곳에는 예레미야의 고향 아나톳이 있습니다. 광야에 인접한 마을인데, 이런 환경은 예레미야의 인격과 사상 형성에 큰 영향을 준 것으로 보입니다. 무엇보다 광야는 이집트 탈출기를 떠올려주는 현장이고, 이집트 탈출은 예레미야서에 자주 등장하는 소재이기 때문입니다.
여호 21,18에서는 아나톳을 ‘레위인 성읍’의 하나로 소개하는데, 예레미야 역시 사제 가문 출신입니다(예레 1,1). 다만 그의 부친 힐키야는 당시(기원전 7세기) 예루살렘 성전에서 신명기의 일부로 추정되는 율법 두루마리를 발견한 “힐키야 대사제”(2열왕 22,8)와 이름이 같지만, 동명이인일 뿐입니다. 실제로 예레미야의 집안은 비주류 가문에 속하였습니다. 그래도 부친의 이름이 신명기 율법서를 발견한 대사제와 같다는 점은 인상적입니다. 예레미야서에는 신명기에서 받은 영향도 다수 드러납니다. 아마도 율법서의 발견은 당시 매우 큰 사건이었을 테니, 예레미야도 그 내용을 수차례 인용하였을 법합니다.
예레미야의 집안이 비주류 사제 가문이었다는 점은 그의 고향이 아나톳이라는 데서 짐작할 수 있습니다. 과거 다윗 시대 왕실에서는 에브야타르와 차독이 사제 직무를 수행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다 다윗이 세상을 떠날 무렵, 아도니야와 솔로몬 사이에 왕위 경쟁이 일어나는데, 이때 에브야타르는 아도니야의 편에 섰다가 좌천되어 고향 아나톳으로 쫓겨가게 됩니다. 대사제의 자리는 솔로몬을 지지한 차독이 잇게 되고요(1열왕 2,26-27.35). 예레미야의 고향이 바로 이 아나톳이므로, 그가 좌천당한 에브야타르의 후손이었다고 추정해볼 수 있습니다.
사제 집안 출신이지만 예언자로 활동한 예레미야는 특별히 상징행위를 통하여 강력한 메시지를 전달하곤 하였습니다(예레 13,1-11; 19,1-13 등). 자신의 삶으로 하느님의 뜻을 전하기도 하였는데요, 그의 독신 생활이 그중 하나입니다(16,2). 예레미야는 아내를 맞지 않음으로써, 혼인에 비유되는 하느님과 이스라엘의 계약 관계가 이스라엘의 불충으로 파탄 나게 되었음을 알립니다. 또한 그는 초상집과 잔칫집에 들어가지 말라는 주님의 명령도 수행합니다(16,5-9). 이는 시나이 산 아래에서 맹세한 계약을 깨뜨린 불충으로 이스라엘이 벌을 받아, 망자를 일일이 묻어줄 수 없을 정도로 생존자가 소수가 되고, 이스라엘에서 기쁨 소리가 끊기게 되리라는 예고였습니다.
재앙 예고 메시지도 못마땅한데, 평생 독신으로 살며 이웃의 경조사에도 참여하지 않는 건 관습과 예의에 어긋나는 행동이었습니다. 결국 많은 백성이 그를 배척하였고, 심지어는 고향 아나톳 사람들마저도 그에게 등을 돌려 박해하였습니다(11,21). 예레미야가 느낀 지독한 외로움(15,17)은 이런 배경에서 비롯된 것이니, 예언자로 사는 일이란 얼마나 고된 삶이었는지 모릅니다. 그래도 그는 마침내 동족이 죗값을 치르고 하느님과의 관계를 새롭게 시작할 수 있도록 이끌어주었으니, 한때 겪어야 했던 고생만큼 기쁨과 보람도 그의 몫이 되었을 거라 생각해봅니다.
* 김명숙 소피아 - 예루살렘 히브리 대학교 구약학과에서 공부하여 석사와 박사 학위를 받았다. 현재 한님성서연구소에서 수석연구원으로 일하며, 저서로는 <에제키엘서>와 <예레미야서 1-25장>, <예레미야서 26-52장>, <구세사 산책; 에덴에서 약속의 땅까지>가 있다.
[2023년 9월 3일(가해) 연중 제22주일 의정부주보 2면, 김명숙 소피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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