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구약] 성지에서 만나는 성경 말씀: 압살롬의 비극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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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주호식 | 작성일2023-10-01 | 조회수729 | 추천수0 | |
[성지에서 만나는 성경 말씀] 압살롬의 비극
- 키드론 골짜기에 있는 압살롬 기념비
성경에는 불효자 하면 생각나는 인물이 나옵니다. 바로 다윗의 아들 압살롬입니다. 엄청난 불효를 범하는 그는 정작 자신을 기억해줄 아들이 없다는 사실을 한탄하며 “임금의 골짜기”에 기념비를 세워(2사무 18,18) 오늘날까지 회자됩니다. 사실 압살롬에겐 아들 셋이 있었지만(14,27) 이름조차 나오지 않는 걸 보면 모두 일찍 세상을 떠난 듯합니다. ‘임금의 골짜기’는 키드론 골짜기로 추정되는데요, 이곳에 기념비가 세워져 있습니다. 그런데 이것은 기원후 1세기경의 것으로 추정되므로 압살롬이 세운 기념비라고 볼 수 없지만, 여전히 그의 이름으로 칭해집니다. 예부터 예루살렘 주민들은 말 안 듣는 아들을 이곳으로 데려와 부모 공경의 계명을 새겨주며 훈육했다고 합니다.
압살롬은, 다윗이 헤브론의 임금이던 시절 셋째 아들로 태어났습니다(3,3). 어머니는 그수르 임금 탈마이의 딸 마아카인데, 당시 그수르는 이스라엘의 봉신 국가였던 것 같습니다. 그곳은 신약 시대 예수님이 활동하신 마을 벳사이다와 위치가 같습니다. 압살롬은 친누이 타마르가 이복 형 암논에게 욕을 당하자 분노해서 형을 죽이는데, 이때 도망간 곳도 외가 그수르입니다(13,37). 그러다 예루살렘으로 돌아온 뒤, 그는 왕위 서열 선두에 서게 됩니다. 형 킬압(2사무 3,3; 1역대 3,1의 다니엘)은 존재감이 매우 미미한데, 아마도 어릴 때 죽었거나 강한 왕자는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더구나 압살롬은 인물이 좋고 언변이 유창해 인기가 높았습니다(2사무 15,2-6). 머리카락은 한 번씩 자를 때마다 왕궁 저울로 이백 세켈이나 나갔다고 합니다(14,25-26). 이스라엘에 그만큼 잘생기고 칭찬받는 이가 없었다고 하니, 백성이 그에게 얼마나 매료되어 있었는지 짐작할 수 있습니다. 다윗도 압살롬을 사랑하여, 그가 암논을 죽이고 도망갔을 때조차 몹시 그리워할 정도였습니다(13,39).
그런 압살롬이 반역하게 된 건, 우선 형을 살해한 사건이 자신에게 이롭게 작용하지 않을 터임을 알았고, 밧세바의 아들 솔로몬도 위협으로 느껴졌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자신의 고향 헤브론에서부터 물밑작업을 시작하여(15,7-12) 결국 반역에 성공합니다. 이에, 다윗은 도망자 신세로 쫓기게 되지만(17,24), 그 와중에도 측근 후사이를 남겨 돌파구를 마련하는 지혜를 발휘합니다. 압살롬이 도망길에 지친 다윗을 곧장 추격하지 않도록 후사이가 교묘하게 설득하는 데 성공했던 것입니다(17,1-14).
하지만 칼로 일어선 자 칼로 망한다고 했던가요? 미모에 힘입어 일어선 압살롬은 그 미모 때문에 몰락합니다. 노새를 타고 아버지를 추격할 때 향엽나무 밑을 지나다가 그 치렁치렁한 머리카락이 가지에 감겨버립니다(18,9). 이때를 놓치지 않고 다윗의 장군 요압이 그를 처단해 왕자의 난은 종결됩니다. 하지만 이 소식을 접한 다윗은 위로 받기를 거부하며 크게 통곡합니다(19,1). 자신의 죗값이 아들에게 돌아갔다고 여겼기 때문일까요? 밧세바를 부정하게 취한 죄로 밧세바의 첫 아들은 태어나자마자 죽었고(12,18), 이제는 압살롬마저 형을 해친 살인자에다 아버지를 거스른 반역자로서 죽은 것입니다. 압살롬은 이렇게 사라졌지만, 그의 기념비는 지금껏 남아 다윗과 압살롬의 이야기를 두고두고 떠올려줍니다.
* 김명숙 소피아 - 예루살렘 히브리 대학교 구약학과에서 공부하여 석사와 박사 학위를 받았다. 현재 한님성서연구소에서 수석연구원으로 일하며, 저서로는 <에제키엘서>와 <예레미야서 1-25장>, <예레미야서 26-52장>, <구세사 산책; 에덴에서 약속의 땅까지>가 있다.
[2023년 10월 1일(가해) 연중 제26주일 의정부주보 2면, 김명숙 소피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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