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승천? 십자가 죽음? 그게 맞을까? | 카테고리 | 성경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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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박세양 | 작성일2018-10-17 | 조회수4,540 | 추천수0 | 신고 |
재밌는 관점이네요.
그런데 한 편으로는 승천하고 십자가 죽음을 이야기하기에는 아직 이른 시점이 아닐까?
이 의문점에서 생각을 시작합니다.
니코데모랑 이야기하던 시점을 생각해보죠.
이 때 니코데모가 어떻게 승천을 생각하고 십자가 죽음을 생각하겠습니까?
그 십자가 죽음이 어떻게 후대에 전해질지 알겠습니까?
만약 예수님께서 십자가 죽음과 승천을 가지고 이야기하셨다면... 우리 일상 대화 수준으로 이야기하면 이런 겁니다.
한 친구가 영화를 보고 왔는데 안 본 친구에게 가서 그 영화 일부를 말하면서
넌 이것도 모르냐 어리석은 놈아 이렇게 말하는 거죠.
실제로 친구가 그러면 싸우자는 걸로 받아들일 정도의 시비죠. 이건
어쨌든 십자가 죽음이나 예수님 승천이나 그 당시 살던 이스라엘의 스승이 모른다고 타박받을 이야기는 아니었죠.
예수님께서는 잘난 척하실려고 강생하신 것이 아니라 진짜로 그가 이스라엘의 스승으로서 알아야할 것을 모르기에 타박을 주신 것입니다.
바로 위로부터 태어나야 한다는 개념입니다.
정식 교회 의견은 아니지만 한편으로 조금 이상하다 느끼는 것이 있습니다.
사람의 아들 이란 표현이 예수님께 한정된 표현일까?
예수님께서는 앞에서 사람의 아들이란 표현을 쓰시고서 그 이야기에서 좀 더 내려가서 따로 하느님의 외아들이란 표현을 쓰십니다.
사람의 아들은 하늘에서 내려 온 이인데
누구든지 위로부터 태어나야 한다고 합니다.
즉 원래는 모든 이가 하늘로부터 태어나서 내려와야 한다는 것이죠.
즉 사람의 아들이란 표현은 예수님에 한정된 표현이 아닌 "하느님께서 창조한 인간들"이 아닐까 조심스레 생각해봅니다.
하느님의 외아들이 예수님을 표현하는 명칭이고요.
십자가의 성요한이 대표적이지만 많은 성인들이 비움에 대해서 많은 이야기를 합니다.
자신을 비워야한다. 자신을 비우고 하느님의 것으로 채워야한다.
예수님께서 많이 말씀하신 어린이처럼 되라는 것도
우리가 생각하는 어린 아이들 정도가 아닌 영혼의 시작점
즉 우리가 육체도 없고 아무것도 지니지 않았던 그 때로 돌아가라는 것입니다.
아무것도 없지만 하느님의 사랑안에서 창조된 그 순간으로 말이죠.
사실 우리가 모든 것을 내려놓고서 비우면 우리에게는 하느님의 사랑만이 남습니다.
바로 그것이 영혼의 시작점인 어린이와 같이 되는 지점이죠.
이것이 위로부터 태어나는 것입니다.
우리가 대체로 육체의 탄생의 시절만 기억하며 살아가는 것이 아래로부터 태어난 것이고요.
이런 상태에서 예수님께서 선을 그으신 것이죠.
아래로부터 태어난 이는 하느님 나라를 볼 수 없다고 말이죠.
"하늘에서 내려온 이, 곧 사람의 아들 말고는 하늘로 올라간 이가 없다."
즉 우리가 모든 것을 비우고 우리 자신을 하느님의 것으로 채우는 것
그것은 우리 신앙에서 필수불가결한 태도라는 것입니다.
이것을 가시화한 것이 미사입니다.
우리는 우리의 인성을 봉헌함으로서 즉 우리의 피와 땀이 섞인 빵과 포도주를 봉헌하고서
그것을 하느님의 몸과 피로 되돌려 받습니다.
우리의 모든 것을 하느님께 봉헌하고 같은 형태이지만 하느님의 것으로 돌려받는 것
우리가 미사 안에서 본질적으로 따라야할 모습인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나만 승천했다~ 한 것이 아니라 (실제로 이때 아직 승천도 십자가 죽음도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이것이 예수님만 이야기하는 것이 아닐 것이라는 가설의 두번째 점입니다.)
네가 지금 너의 생각 세상의 생각을 따르는 것을 버리고 하느님을 따르라는 것입니다.
자신의 모든 것을 봉헌하고 하느님의 창조 원리로 되돌아와 그 뜻에 따라 사는 이 말고는 하느님 나라를 본 사람이 없다는 뜻이죠
우리는 미사를 통해 그 사실을 기억하며 행동으로는 하고 있지만
그 안의 영혼까지 그러고 있나 다시금 되돌아봐야할 것 같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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