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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구약] 하느님 뭐라꼬예?: 입타, 하느님께 전적으로 의탁한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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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주호식 쪽지 캡슐 작성일2023-10-09 조회수709 추천수0

[하느님 뭐라꼬예?] ‘입타’, 하느님께 전적으로 의탁한 사람

 

 

이스라엘 자손들의 잘못과 회심

 

하느님의 진노로 18년 동안에 걸쳐 필리스티아인들과 암몬 자손들의 압제를 받게 된 이스라엘 자손들은 급기야 하느님께 부르짖었습니다. “저희가 당신께 죄를 지었습니다. 정녕 저희는 저희 하느님을 저버리고 바알들을 섬겼습니다.”(판관 10,10) 그들은 하느님께 자신들의 죄를 고백하며 ‘당신께서 보시기에 좋으실 대로 저희에게 하십시오.’ 하면서 이렇게 간청합니다. “(그래도) 오늘만은 저희를 구해 주십시오.”(판관 10,15) 그러면서 그들은 회개하는 마음을 실제 생활로 드러내 보였습니다. 말만 하거나 기도만 한 게 아니라 (회심의 증거로) 삶의 변화를 구체적으로 실천한 것이지요. 판관기는 그들의 변화하는 노력을 보신 하느님께서 이렇게 응답하셨다고 전하고 있습니다. “그러고는 (이스라엘 자손들이) 자기들 가운데에서 낯선 신들을 치워버리고 주님을 섬기니, 주님께서는 더 이상 이스라엘의 고통을 보고 계실 수 없었다.”(판관 10,16)

 

주님께서는 지난날의 잘못을 아파하며 진정으로 뉘우치는 이스라엘 자손들의 고통을 더 이상 보고 계실 수 없었다고 했습니다. 내가 비록 지금 고통을 겪고 있을지라도 하느님 앞에 저지른 잘못을 뉘우치고 회개하는 마음을 행동으로 드러낸다면, 하느님께서 그런 나를 결코 모른척하지 않으신다는 판관기의 말씀은 참으로 위안이 되는 말씀이 아닐 수 없습니다. 고난과 역경의 시간에 하느님을 원망하면서 하느님 아닌 다른 것에 솔깃해하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하느님만이 나의 희망입니다. 나를 참으로 사랑하시고 나를 위해서도 수난하신 주님께는 내가 겪는 고통이 결코 남의 일일 수가 없습니다!

 

“자기들 가운데에서 낯선 신들을 치워버리고 주님을 섬기니”라는 대목에도 눈길이 갑니다. 우리 세상에 얼마나 많은 낯선 신들이 있는지요? 우리 교우들 가운데에도 가끔 역술인이나 점쟁이를 찾는 분들을 볼 수 있는데요, 아예 사주팔자는 봐도 문제없는 것으로 생각하는 분이 적지 않은 듯합니다. 그렇다면 낯선 신들은 구약성경에서 볼 수 있는 이방의 신들이 아니라 오늘날 우리 가운데에도 있는 셈이지요. 비존재(比存在)를 존재화(存在化)하고, 그런 허망한 존재에 나의 현재와 미래를 의탁하는 행위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주님으로 믿고 따르며 하느님의 나라를 준비하는 그리스도인에게 결코 어울릴 수 없습니다. 우리 가운데 있는 낯선 신들을 몰아냅시다! 낯선 신들이 내 곁에는 발도 붙이지 못하도록 합시다!

 

 

판관 입타의 등장

 

하느님의 도우심으로 드디어 ‘입타’가 이스라엘의 구원 역사에 등장합니다. (입타는 아버지를 모르는 사생아로 자라났지만 요르단 강 동쪽 지역에 해당하는 ‘길앗’에서 자라났기에 ‘길앗’의 아들로 알려진 듯합니다.) 입타는 남달리 힘이 세었습니다. 후에 길앗의 다른 아들들이 성장하여 어른이 되자 입타에게 “너는 다른 여자의 아들이기 때문에, 우리 아버지 집안에서 상속 재산을 받을 수 없다.”(판관 11,2)고 말했습니다. 스스로를 창녀의 아들이라는 출생의 부끄러움을 안고 태어난 죄인으로 생각한 것일까요? 힘이 센 용사와 같았던 입타였지만 자신을 내쫓는 형제들에게 저항도 복수도 없이 나약하게 물러났습니다. 그렇게 자기 형제들을 피하여 집 없는 떠돌이가 된 입타는 길앗 지방 북쪽 끝으로 달아나 지내다가, 자신에게 모여든 건달들과 함께 노략질을 일삼으며 살았습니다.

 

그러던 중 요르단 강 동쪽 지류에 해당하는 야뽁 강 부근 ‘길앗’에서 암몬 자손들이 진을 치자, 이스라엘 자손들은 야뽁 강의 남쪽 ‘마츠파’에 모여 논의하였습니다. “암몬 자손들과 싸움을 시작할 사람은 누구인가? 그가 길앗 온 주민의 우두머리가 될 것이다.”(판관 10,18) 자신들을 위해 싸워줄 사람을 지배자로 섬기겠다는 말이었지요. 얼마 뒤 암몬 자손들이 실제로 이스라엘을 공격해 오기 시작하자 길앗의 원로들은 입타를 찾아와 자기들의 지휘관이 되어달라고 청하였습니다. 이에 입타는 자신이 암몬 자손들과 싸울 때 하느님의 도우심으로 승리하면 자신을 그들의 우두머리로 받들겠다는 약속을 그들로부터 받아내었습니다.

 

 

의탁한 이에게 주어지는 하느님의 승리

 

이제 입타는 ‘미츠파’라는 곳으로 가서 하느님 앞에서 이 약속을 되풀이한 후, 이스라엘 자손들의 대표로서 암몬 자손들의 임금에게 사절을 보내어 말하였습니다. “그대가 나와 무슨 상관이 있다고, 이렇게 와서 내 땅을 공격하는 것이오?”(판관 11,12) 이에 암몬의 임금은 입타의 사절들에게 부당하게 점령한 자신의 땅을 평화롭게 돌려 달라고 했습니다. 이러한 요구에 입타는 다시 사절들을 보내어 말했습니다.

 

“주 이스라엘의 하느님께서 이렇게 아모리족을 쫓아내셨는데, 이제 와서 그대가 우리를 쫓아내겠다는 것이오? 나는 그대에게 잘못한 것이 없는데도 나를 공격하는 잘못을 저지르고 있으니 판관이신 하느님께서 오늘 이스라엘 자손들과 암몬 자손들 사이에 판결을 내려 주실 것이오.”(판관 11,23-27 참조)

 

이스라엘 자손들을 구원해 내신 하느님께 대한 신뢰로 가득 찬 입타는 자신도 임금으로서의 위엄을 갖추고 암몬의 임금에게 당당히 말했습니다. (이런 입타에게서 이스라엘의 참지휘자요 임금다운 풍모를 발견하게 됩니다.) 하지만 암몬 자손들의 임금은 입타가 보낸 전갈에 귀를 기울이지 않았습니다. 입타를 통해 ‘내가 판결하리라’ 하시는 하느님의 경고에 귀를 막은 것이지요. 이제 암몬의 자손들과 이스라엘 자손들 사이에 전쟁이 벌어졌습니다. “당신께서 암몬 자손들을 제 손에 넘겨만 주신다면, 제가 암몬 자손들을 이기고 무사히 돌아갈 때, 저를 맞으러 제 집 문을 처음 나오는 사람은 주님의 것이 될 것입니다. 그 사람을 제가 번제물로 바치겠습니다.”(판관 11,31) 싸움을 앞두고 하느님의 영을 받은 입타는 이렇게 하느님께 서원을 드리고 암몬 자손들과 싸워 큰 승리를 거두었습니다. 하느님께서 당신께 온전히 의지하는 입타를 이용하시어 이스라엘의 자손들을 구원하신 것이지요.

 

 

입타의 서원

 

싸움을 앞두었던 입타가 하느님께서 주시는 승리를 염원하며 그분께 서약을 드린 것까지는 좋았습니다. 그러나 해서는 안 될 서약을 성급하게 한 셈이 되었습니다. 자신을 맞으러 처음 문을 나서는 사람을 하느님께 번제물로 바치겠다고 약속을 했는데, 글쎄 하나밖에 없는 사랑하는 딸이 자신을 마중 나오는 것 아니겠습니까! 입타가 하느님께 서원할 때에 사람을 번제물로 바치겠다는 약속을 한 것은 사람을 신에게 희생 제물로 바치는 고대 셈족의 관습을 엿볼 수 있게 합니다. 이는 고대 인도와 유럽에서도 발견되는 종교 관습의 하나인데, 후에 ‘예레미야’와 ‘에제키엘’ 같은 예언자들의 비판을 받았고, 마침내 율법에서 금지됩니다. (입타의 서원과 그 딸에 관한 이야기는 앞서 창세기 22장 ‘이사악의 희생제사’ 이야기에서 언급한 바 있으므로 생략합니다.) 그러할지라도 하느님께 드린 서약을 끝까지 지키고자 애쓴 입타와 그 딸의 충정은 놀랍기만 합니다.

 

이후 입타는 자신의 승리를 시기하면서 딴죽을 거는 에프라임 지파 사람들을 쳐 죽였습니다. 이들은 일찍이 기드온이 미디안족을 칠 때 자신들을 부르지 않았다고 기드온을 비난하는 등 다른 지파들에 대해 패권을 유지하고자 힘쓰며 불평을 일삼는 사람들이었던 까닭입니다. 오로지 하느님께 의탁했던 입타는 6년간 이스라엘의 판관으로 일하고 죽었습니다.

 

“하느님의 도우심으로 승리하면…” “주님께서 그들을 나에게 넘겨주시면…” “당신께서 암몬 자손들을 제 손에 넘겨만 주신다면…” 입타는 하느님께서 도와주시지 않으시면 그 어떤 승리도 거둘 수 없음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입타는 자신의 비천한 출생에도 아랑곳 않고 자신에게 주어진 역할을 하느님의 부르심으로 받아들였습니다. 또한 입타는 이스라엘의 임금과도 같은 지휘자가 되었으나 자만하거나 거들먹거리지 않고 기꺼이 하느님의 도구로 자신의 역할을 다하였습니다. 입타는 자신의 처지를 한탄하거나 하느님을 원망함 없이 오로지 하느님께만 의탁하고 그분만을 신뢰하였습니다.

 

이런 입타에게서 어떠한 처지에서든지 하느님께 감사하고, 하느님을 신뢰하며, 하느님께 전적으로 의탁하는 자세를 배웠으면 합니다. “하느님, 당신께서 도와주시지 않으시면 저는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 당신께 저를 맡겨드리오니 저를 지켜주소서. 오로지 당신께 의탁하는 저에게 자비를 베푸소서!”

 

[월간 레지오 마리애, 2023년 10월호, 조현권 스테파노 신부(대구대교구 사무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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