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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구약] 다윗 이야기: 그 어린 압살롬은 무사하냐?(2사무 18,29) - 다윗이 아들의 반란을 겪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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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주호식 쪽지 캡슐 작성일2023-10-24 조회수593 추천수0

[다윗 이야기] “그 어린 압살롬은 무사하냐?”(2사무 18,29) - 다윗이 아들의 반란을 겪다

 

 

열 번째 이야기 : 2사무 13장-19장

 

다윗은 헤브론에서 사울의 딸 미칼을 포함한 일곱 아내에게 여섯 명의 아들을 얻었다.(1역대 3,1-4) 왕위 계승자가 될 맏아들은 세 번째 아내인 아히노암이 낳은 암논이었다. 예루살렘에서 맞이한 여덟 번째 아내 밧 수아에게서 아들 네 명이 더 태어나 모두 19명에 이른다. 성경에 언급된 이름은 여덟이지만 아내와 후궁이 더 있었음을 짐작케 한다.(5,13-16; 1 역대 3,1-9)

 

친형제 사이에도 갈등이 있는데, 하물며 서로 다른 어머니에게 태어난 이복형제들끼리 화목하기는 어려운 일이다. ‘네 집안에서는 칼부림이 영원히 그치지 않을 것’(12,10)이라고 예언된 주님의 말씀은 맏아들 암논의 죄를 통해 실현되기 시작한다. 암논은 이복동생인 압살롬의 누이동생을 속여 욕보인 후 냉정하게 버린다. 이 일을 안 다윗은 분노했지만 암논의 악행에 대해 책임을 묻지 않았다. 압살롬은 아버지의 선택 앞에 암논에게 침묵했지만 그를 미워했다.(13,1-22) 두 해가 지난 후 압살롬은 오래 품었던 원한을 마침내 실행했다. 속임수를 써서 왕위 계승자인 암논을 죽이고 외가인 아람의 그수르로 몸을 피한다. 우리야 사건을 방불케 하는 욕망과 거짓, 속임수와 살인이 다윗의 아들들 사이에서 반복된 것이다.

 

여러 해가 지난 후 다윗은 압살롬을 그리워하고, 요압 장군의 중재로 압살롬과 관계를 회복하게 된다. 맏아들이 사라진 까닭일까. 왕권을 향한 집념을 불태운 압살롬은 병거와 말들을 마련하고 북부 이스라엘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으면서 세력을 키워간다. 그리고 때가 차자 왕위를 찬탈하고자 반란을 일으키고, 다윗은 아들에게 쫓겨 피난길에 올랐다.

 

그때 임금이 차독에게 일렀다. “하느님의 궤를 도성 안으로 도로 모셔 가시오. 내가 주님의 눈에 들면 그분께서 나를 돌아오게 하시어, 그 궤와 안치소를 보게 하실 것이오. 그러나 그분께서 ‘나는 네가 싫다.’ 하시면, 나로서는 그저 그분 보시기에 좋으실 대로 나에게 하시기를 바랄 뿐이오.”… 다윗은 올리브 고개를 오르며 울었다. 그는 머리를 가리고 맨발로 걸었다. 그와 함께 있던 이들도 모두 제 머리를 가리고 울면서 계속 올라갔다.(15,25-30)

 

하느님의 계약 궤를 모시고 피신하려던 다윗은 마음을 바꾼다. 실상 주님이 함께하시는 것은 계약 궤 자체에 달린 것이 아님을 그는 잘 알고 있었다. 다윗의 왕권을 지켜 주실지 아닐지는 오로지 주님 뜻에 달려 있기 때문이다. “나로서는 그저 그분 보시기에 좋으실 대로 나에게 하시기를 바랄 뿐이오.”(15,26)라는 말에서 모든 상황을 주님께 맡긴 다윗의 겸손함을 엿볼 수 있다.

 

다윗은 반란군과 싸우러 나가는 요압과 군사들에게 ‘나를 보아서 저 어린 압살롬을 너그럽게 다루어 주시오.’라고 분부한다.(18,5) 반역자의 운명은 죽음이기에, 이 말은 그를 살려달라는 뜻이다. 다윗은 자신의 안위와 왕권보다 아들의 목숨이 더 마음 쓰였던 것이다. 압살롬은 어리지 않다. 그러나 부모의 눈에 자식은 늘 철부지요 어린애로 남아 있나 보다.

 

전쟁은 치열했고 반란군은 밀리기 시작했다. 달아나던 압살롬은 불운하게 나무에 머리카락이 걸려 매달리게 되는데, 이를 발견한 요압이 창을 던져 그를 죽인다. 요압에게는 다윗의 아들일지라도 왕에 대한 반역자를 처단함으로써 왕국을 수호하는 게 중요했다. 다윗은 두 사람의 전령에게 각각 반란군의 진압 소식을 보고받는 순간에도 한결같이 “그 어린 압살롬은 무사하냐?”라고 반복해서 물었다.(18,28-32) 그의 관심사는 오로지 아들 압살롬의 생사에 있었던 것이다. 전령이 압살롬의 죽음을 알리자 다윗은 그대로 무너진다.

 

이 말에 임금은 부르르 떨며 성문 위 누각으로 올라가 울었다. 그는 올라가면서 “내 아들 압살롬아, 내 아들아, 내 아들 압살롬아, 너 대신 차라리 내가 죽을 것을. 압살롬아, 내 아들아, 내 아들아!” 하였다.… 그리하여 모든 군사에게 그날의 승리는 슬픔으로 변하였다. … 군사들은 그날 슬며시 성읍으로 들어왔는데, 마치 싸움터에서 도망칠 때 부끄러워 슬며시 빠져나가는 군사들 같았다. 임금은 얼굴을 가리고 큰 소리로 “내 아들 압살롬아, 압살롬아, 내 아들아, 내 아들아!” 하며 울부짖었다.(19,1-5)

 

사정이 이렇게 되자 요압은 다윗을 준엄하게 꾸짖었다.(19,6-9) 임금과 나라를 지키기 위해 목숨을 걸고 싸운 전사들은 무엇이 되는가? 백성은 임금에게 자식과 같은 존재가 아닌가? 오직 아들의 죽음만 생각하며 비통에 빠진 다윗은 아버지이기 전에 백성과 군사를 헤아리고 이끌어야 할 임금임을 기억해야 했다. 그러지 못하면 요압의 말대로 아무도 임금을 지키려 나서지 않을 것이고 이것은 다윗 가문에 더 큰 재앙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자 임금이 일어나서 성문에 나와 앉았다. 온 백성은 “임금님께서 성문에 나와 앉아 계시다.”는 말을 듣고 임금 앞으로 나아갔다.(19,9)

 

마침내 다윗은 압살롬의 아버지가 아니라 백성의 아버지인 임금 본연의 위치로 돌아간다. 아들의 죽음은 홀로 품어야 할 아픔이었다. 적어도 왕국을 지켜 낸 승리의 날에는 그랬다.

 

다윗은 임금이기 전에 아버지였다. 암논의 행실에 분노했지만 왕위를 물려받을 맏아들이었기에 그의 죄를 엄하게 다스리지 못한 마음 약한 아버지. 형제 살인을 저지르고 도망친 압살롬이지만 결국 품을 수밖에 없던 아버지. 아들에게 쫓겨 목숨을 건지려 맨발로 피신하면서도 아들이 살기를 바라고 살려주기를 부탁한 아버지였다. 반역자 아들의 죽음 앞에서 울부짖던 다윗은 도성 누각으로 올라가며 얼굴을 가리고 우는 모습을 보였다. 아들이 자신의 자리를 차지하려고 목숨을 위협했던 것도 그에게 중요하지 않았다. 골리앗을 쓰러뜨린 용사, 팔레스티아 수만 명을 이겨낸 장수, 이스라엘과 유다를 통합한 왕국의 위대한 임금이지만 그저 자식이 소중한 마음 약한 아버지에 불과했다. 어쩌면 다윗은 이 모든 일이 자신의 허물 때문에 생긴 일이라며 비통함과 참담함에 더 울었는지 모른다. 다윗의 절절한 울부짖음에서 자식을 향한 여느 부모의 마음이 느껴지는듯하다.

 

“내 아들 압살롬아, 너 대신 차라리 내가 죽을 것을. 압살름아, 내 아들아!”(19,1)

 

[월간빛, 2023년 10월호, 송미경 베로니카 수녀(바오로딸수도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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