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신약] 사도행전 읽기36: 로마 시민권과 부활에 대한 믿음(사도 22,22-23,22)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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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주호식 | 작성일2023-11-14 | 조회수398 | 추천수0 | |
[사도들의 기쁨과 삶을 담은 사도행전 읽기 36] 로마 시민권과 부활에 대한 믿음(22,22-23,22)
영화나 소설을 보면, 마지막 절정을 향해 달려가는 클라이맥스 부분이 있습니다. 그것처럼 이제부터 시작되는 이야기가 바로 바오로 복음 선포 여행의 마지막 절정에 해당되는 부분입니다. 예루살렘을 떠나 로마까지 복음 선포의 증언자가 되는 여정입니다.
바오로는 예루살렘에서 소동을 일으킨 혐의로 천인대장에게 체포되었지만, 이를 기회로 삼아 예루살렘 백성들에게 자신의 회심 경위를 들려줍니다. 그러나 유다인들의 반발은 더욱 거세집니다. 천인대장은 바오로를 피신시켰고, 도대체 왜 그들이 바오로를 거세게 반대하는지 심문을 통해 알아보려고 합니다. 심문을 받던 바오로는 천인대장의 부하인 백인대장에게 자신이 로마 시민임을 밝힙니다. 그 당시 로마 시민에게는 중요한 특전이 있었습니다. 그 특전은 로마 시민은 로마법으로만 심판할 수 있고, 법적인 절차를 밟지 않고는 구금하거나 처벌을 가할 수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심문 과정에서 구금과 채찍질을 지시했던 천인대장은 놀랄 수밖에 없었습니다. 특히 채찍질은 당시 노예나 외국인 또는 죄인들에게 강제로 진술을 끌어낼 때 쓰던 일반적인 방식이었기에, 로마 시민권을 가진 바오로에게는 굉장히 부당한 처사였습니다. 여러 가지 복잡한 상황에 처한 천인대장은 바오로를 최고의회에 데려갑니다.
바오로는 최고의회에서 자기 자신을 변론합니다. 변론의 중심은 죽은 이들의 부활에 관한 믿음이었습니다. 결국 서로 다른 믿음을 가지고 있었던 사두가이파와 바리사파는 대립합니다. 그리고 바오로와 같이 죽은 이들의 부활에 대한 믿음이 있던 바리사이들은 바오로에게 아무런 죄가 없음을 선언합니다. 이 이야기는 그리스도교를 박해하려던 로마인들에게 큰 시사점을 안겨줍니다. 그리스도교는 유다교와 전혀 다른 종교가 아니라, 유다교의 바리사이파와 비슷한 종교라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리스도교는 박해를 받아야 하는 종교가 아니라 유다교와 동등한 대우를 받아야 한다는 인식으로 이어지게 됩니다. 또한 죽은 이들의 부활은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통해 성취되었다는 복음 선포적인 내용도 함께 전달됩니다. 결국 최고의회는 바오로의 재판이 아닌 서로간의 논쟁의 자리로 바뀌게 됩니다. 저자인 루카는 이 모든 일들이 바로 로마에서 주님을 증언하기 위한 과정임을 드러냅니다.
“용기를 내어라. 너는 예루살렘에서 나를 위하여 증언한 것처럼 로마에서도 증언해야 한다.”(23,11)
그리스도인의 증언은 다른 것이 아닙니다. 십자가에서 돌아가신 예수님께서 부활하셨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인에게 죽음은 두려운 것이 아니라 부활을 위한 하나의 관문이 됩니다. 그러나 단순히 이 모든 것을 알았다고 부활의 기쁨을 누릴 수 없습니다. 부활의 기쁨은 바로 그리스도의 부활을 온전히 굳게 믿는 이들에게 주어지는 선물입니다.
[2023년 11월 12일(가해) 연중 제32주일(평신도 주일) 서울주보 5면, 김덕재 안드레아 신부(사목국 성서못자리 담당)]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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