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구약] 성지에서 만나는 성경 말씀: 하렘으로 들어간 에스테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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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주호식 | 작성일2023-11-15 | 조회수404 | 추천수0 | |
[성지에서 만나는 성경 말씀] 하렘*으로 들어간 에스테르
이스라엘에서는 유다인뿐 아니라 아랍인도 만날 기회가 많습니다. 아랍 여인들은 대개 히잡(Hijab)을 쓰지만 가끔 부르카(Burqa)를 입기도 합니다. 부르카는 눈만 내놓고 머리부터 발끝까지 가리는 의복입니다. 부르카로 외부와 차단한 여인이나 둘째, 셋째 부인으로 시집가는 처녀를 볼 때면(모슬렘 사회에서는 처를 넷까지 둘 수 있습니다), 페르시아 임금의 하렘으로 들어간 에스테르가 생각나곤 합니다.
에스 1장에 따르면, 에스테르가 궁으로 가게 된 계기는 크세르크세스 임금의 비(妃) 와스티가 폐위된 사건이었습니다. 연회에서 술을 마시고 기분이 좋아진 임금이 왕비의 미모를 자랑하려고 그를 불러냈는데, 기생처럼 여러 대신들 앞에 서게 된다는 굴욕감 때문이었는지 와스티가 그 요구를 거절한 것입니다. 결국 와스티는 폐위당하고, 왕실은 새 왕비 간택을 위해 전국에서 처녀들을 소집합니다. 이때 유다인 유배자 모르도카이의 사촌 에스테르도 왕궁에 들어가게 됩니다(2,6-8).
에스테르의 본 이름은 도금양나무(하다쓰)를 뜻하는 “하다싸”(2,7)입니다. 도금양나무(이사 55,13; 즈카 1,8)는 평화와 축복을 상징하는 늘푸른 관목입니다. 에스테르는 현지식으로 개명한 이름으로서, 메소포타미아 여신 ‘이쉬타르’나 별을 뜻하는 페르시아어 ‘스타라’에서 딴 것으로 보입니다. 탈무드(메길라 13ㄱ)에서는 ‘감추다’라는 뜻의 히브리 어근 ‘사타르’와 연결하는데요, 에스테르 자신이 유다인이라는 사실을 감추었기 때문입니다(에스 2,10).
에스테르가 왕비가 된 시기와 거의 맞물려 궁에서는 하만이라는 자가 높은 위치를 차지합니다. 하만은 “아각 사람”(3,1)으로 소개되는데, 공교롭게도 아각은 사울의 몰락에 원인이 된 아말렉 임금의 이름입니다(1사무 15,19-22). 말하자면, 하만은 아말렉의 후손을 상징하는 인물인 것입니다. 모르도카이는 사울처럼 벤야민 지파 사람이고요(에스 2,5). 그렇다면 임금을 뺀 모두가 하만에게 절해야 했던 당시 상황에서 모르도카이만 이를 거부한 이유(3,2)도 짐작할 수 있습니다. 사울이 미완으로 끝낸 숙적 아말렉과의 전투가 재현되는 셈이었기 때문입니다.
하만이 모르도카이 때문에 유다인을 섬멸하려는 계획을 세우자(3,6), 모르도카이는 내시 하탁을 통해 왕비 에스테르와 비밀리에 소통합니다(4,5-17). 에스테르는 궁리 끝에 하만과 임금만 연회에 초대하는 방법으로 하만의 허영심을 부풀립니다. 그런 다음 세 번째 연회에서 돌연 자신의 정체를 밝히며 하만이 자신과 유다 민족을 죽이려 한다고 임금 앞에서 고발합니다(7장).
이렇게 하여 에스테르는 극적으로 자기 민족을 구하고 이야기는 희극으로 끝납니다. 그런데 만일 다른 처녀가 왕비로 뽑혔더라면 에스테르는 하렘에서 평생 불행하게 살았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에스테르는 평화와 축복의 상징, 도금양나무였습니다. 왕비가 된 다음 처음에는 소심하고 여렸지만(4,11-14), 그는 결국 위험을 무릅쓰고 민족을 구함으로써 성모님의 예표 구실을 한 구약의 여인 가운데 하나로 꼽히게 되었습니다.
* 일부다처제 사회의 한 가정에 속한 여인들이 자식들과 함께 거처하는 곳.
* 김명숙 소피아 - 예루살렘 히브리 대학교 구약학과에서 공부하여 석사와 박사 학위를 받았다. 현재 한님성서연구소에서 수석연구원으로 일하며, 저서로는 <에제키엘서>와 <예레미야서 1-25장>, <예레미야서 26-52장>, <구세사 산책; 에덴에서 약속의 땅까지>가 있다.
[2023년 11월 12일(가해) 연중 제32주일(평신도 주일) 의정부주보 2면, 김명숙 소피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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