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구약] 성경에 빠지다49: 코헬렛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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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주호식 | 작성일2023-11-28 | 조회수666 | 추천수0 | |
[리길재 기자의 성경에 빠지다] (49) 코헬렛 하느님의 사랑 아래 현재에 충실하며 행복하게
- 코헬렛은 지혜로운 사람은 현재의 삶에 성실하고 하느님의 섭리에 자신을 온전히 맡기는 사람이라고 가르친다. 지난 8월 리스본 세계청년대회에 참여한 젊은이들이 함께 십자가를 지고 행렬하고 있다. OSV
구약 성경 제1 경전인 히브리어 타낙 성경은 ‘코헬렛’을 성문서로 분류해 ‘아가’ 다음에 배치해 놓았습니다. 코헬렛이 무슨 뜻인지 명확지 않습니다. 다만 회중을 모으거나 집회를 이룬 공동체 안에서 가르치는 직책이나 직무를 맡은 사람을 뜻하는 것으로 여겨집니다.
그래서 헬라어 구약 성경 「칠십인역」은 코헬렛을 ‘Εκκλησιαστηs’(에클레시아스테스)라고 이름 붙였습니다. 우리말로 ‘회중을 가르치는 설교자’라는 뜻입니다. 라틴어 대중 성경 「불가타」는 칠십인역 명칭을 그대로 계승해 코헬렛을 ‘Ecclesiastes’라고 표기합니다. 한국 천주교 주교회의가 펴낸 우리말 「성경」은 구약 성경 제1 경전의 전통을 이어받아 ‘코헬렛’으로 표기합니다. 그리고 가톨릭교회 성경 분류법에 따라 ‘시서와 지혜서’에 분류해 놓았습니다. 한국 교회는 「공동번역 성서」에서 코헬렛을 ‘전도서’라고 번역해 표기한 바 있습니다.
책 이름이 코헬렛으로 불린 이유는 표제에 “다윗의 아들로서 예루살렘의 임금인 코헬렛의 말이다”(코헬 1,1)이라고 밝히고 있기 때문입니다. 유다교 전승에 따르면 솔로몬 임금이 노년에 코헬렛을 지었다고 합니다. 다윗의 아들로서 예루살렘의 임금은 ‘솔로몬’뿐이기 때문입니다.(코헬 1,1. 12 참조) 하지만 코헬렛의 실제 저자는 프톨레마이오스 왕조가 팔레스티나를 다스리던 때인 기원전 3세기께 예루살렘에서 지혜를 가르치던 현인이었을 것으로 추정합니다. 코헬렛에 아람어와 헬레니즘의 영향을 받은 히브리어가 나오고 있을 뿐 아니라 기원전 2세기에 일어났던 마카베오 항쟁에 관해 언급이 전혀 없습니다. 또 기원전 2세기에 편집된 집회서의 저자가 코헬렛을 이미 알고 있었고(집회 14장 참조), 기원전 2세기 중엽에 제작된 쿰란 필사본에 코헬렛의 몇 구절이 기록돼 있기 때문입니다. 성경학자들은 코헬렛이 실제 저자에 의해 최종 완성된 것이 아니라 후대 편집자의 손을 거쳐 완성된 것으로 봅니다.
코헬렛은 표제(1,1)와 머리말(1,2-11), 코헬렛의 자기 반성과 인생에 대한 반성(1,12-2,26), 인간 현실의 부정적 면과 한계(3,1-6,12), 인간 실존 문제들(7,1-12,8), 맺음말(12,9-14)로 구분됩니다. 코헬렛은 “허무로다, 허무! 코헬렛이 말한다. 허무로다, 허무! 모든 것이 허무로다!”(1,2)라는 말로 시작해 같은 말로 끝맺습니다.(12,8) 이처럼 코헬렛은 모든 것이 허무라고 합니다. ‘허무’로 표현되는 히브리말 ‘헤벨’은 본래 ‘숨’, ‘입김’, ‘실바람’을 뜻합니다. 추상적으로는 ‘허무’, ‘허망’, ‘무상’, ‘덧없음’, ‘공허’, ‘헛됨’을 의미합니다. 간과해선 안 될 것은 헤벨의 숨은 뜻입니다. 헤벨은 곧 사라질 것 같은 무상함만을 뜻하는 것이 아닙니다. ‘숨’은 모든 생명을 유지하는 필수 요소입니다. “곧 히브리어 헤벨은 생의 갖가지 요인(부귀, 명예, 쾌락 등)이 숨처럼 인간의 삶에 꼭 필요한 조건일 수 있지만 동시에 숨과 마찬가지로 찰나적이어서 찰나적인 것을 삶의 본질인 양 좇고 영원히 소유하려는 노력만큼 무상하고 무의미한 것도 없음을 가리킵니다.”(김혜윤 수녀, 「시서와 지혜서」 180쪽)
코헬렛은 그러면서 태양 아래에서 인간의 삶이 왜 헛되고 허무한지를 순환하는 자연의 모습과 인간 역사를 들어 설명합니다. 코헬렛은 인생이 허무한 이유는 인간이 아무리 많은 것을 소유한다고 해도 결코 그것을 완전히 소유할 수 없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코헬렛은 삶 자체를 싫어합니다.(2,17) 살아 있는 사람보다 오래전에 죽은 이들이 더 행복하고, 이보다 더 행복하기로는 아예 태어나지 않아 이 세상에서 자행되는 불의와 허무한 일들을 보지 않는 인간이라고 합니다.(4,2-3)
코헬렛은 또 인간사의 모든 것은 정해진 때가 있으며, 이는 하느님의 섭리이며 선물이라고 가르칩니다. 코헬렛은 지혜, 정의, 여자, 권력, 운명, 사회 관계와 같은 인간 실존과 관련된 다양한 문제를 다루면서 가장 현명한 사람은 현실과 자신의 한계를 깨닫고 하느님께서 허락하신 범위 안에서 인생을 즐기는 사람이라고 강조합니다. 현재를 가장 좋은 때로 인식하고 살아갈 때 인간은 행복한 삶을 영위할 수 있다고 합니다.
코헬렛은 ‘즐김’은 삶의 본질과 진수를 누리며 현재에 전적으로 충실하는 것이라고 가르칩니다. 그러면서 코헬렛은 “하느님을 경외하고 그분의 계명을 지켜라”(12,13ㄴ)며 모든 가르침을 마무리합니다.
정리하면, 코헬렛은 단순히 현실을 즐기는 쾌락주의를 권고하는 것이 아니라 현재의 삶에 성실할 것을 가르칩니다. 그리고 자신의 삶에 성실해야 하는 근거는 하느님께 대한 절대적인 경외에 있다고 합니다. 하느님 없는 인생은 무의미하므로 주님께 대한 믿음을 절대적으로 요구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지혜로운 인간은 하느님의 섭리에 자신을 온전히 맡기는 사람이라고 합니다.
“하느님을 경외하고 그분의 계명을 지켜라. 이야말로 모든 인간에게 지당한 것이다. 하느님께서는 좋든 나쁘든 감추어진 온갖 것에 대하여 모든 행동을 심판하신다.”(코헬 12,14)
[가톨릭평화신문, 2023년 11월 26일, 리길재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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