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성경 단상.... | 카테고리 | 천주교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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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서채석 | 작성일2019-03-26 | 조회수2,992 | 추천수0 | 신고 |
먼저 박윤식님을 위해 기도드립니다. 임의 진솔한 말씀 격하게 와 닿습니다. 말씀의 행간 까지도 읽혀 진다고나 하겠습니다.
저 또한 겁도 없이 그 "하느님'을 뵈려고 고생께나 했습니다. 본당 여러 신심 단체 활동 많이 했습니다. 레지오 교본 오랫동안 엄청 팠습니다. 성모님을 만날 수 있을 까 하고.. 유명(?) 신부님들 강론 들을려고 수도원이고 어디고 많이 기웃거렸습니다. 신심 서적 많이 읽었습니다. 키팅, 머튼, 그륀 신부님들 책 많이 읽었습니다. 제도권에서 성경 공부도 했고, 봉사도 했습니다. 엄청난 저의 영적 목마름을 해결하기 위해 많이 노력했습니다. 스님이나 개신교쪽 사람들도 만났습니다. 그래도 갈증이 더욱 심해졌습니다. 성경 봉사자도 본부에서 최고 책임자이신 분이 재물과 타협하는 걸 보고 바로 그만두었습니다.
한편, 교회는 "세례"는 한번 만 해도 된다 가르칩니다. 견진 역시 마찬가지 입니다. 그러면서 우린 죄 사함을 받았고, 한번 받은 인호는 지워지지 않는다 배웠습니다. 그런데도 우린 많은 죄 의식을 가지고 삽니다. 매주 내 탓이라며 가슴을 칩니다. 복음이 기쁜 소식이 아닙니다. 대죄를 짓고 고해 성사를 보지 않으면 지옥 갈 것 같고, 하느님께 직접 기도드릴 수 있고 통공도 된다지만, 성사를 통해서만 죄가 용서 될 것 같다는 생각을 도무지 떨쳐 버릴 수 없습니다. 어찌보면 개신교보다 죄를 용서받는 다양한 루트가 있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외통수 입니다.
보편되고, 하나인 교회인데 한국에선 평신도는 절대 "부제"가 될 수 없고, 세계 유일의 판공성사는 언제 쯤 보지 않아도 될까요? 영성체는 어떻습니까? 주님의 살과 피라는데, 우린 늘 살만 먹고도, 먹고 마셨다 합니다.
과거 저는 공동번역 성서가 끝판인 줄 알았습니다. 성경에 조금씩 눈 뜨면서 슬슬 부화가 치밀기 시작했습니다. 하여 그때부터 외국 성경 보기 시작했습니다.
한 동안 심적으로 몹시 고통스러운 적이 있었습니다. 지금도 그 후유증에 시달립니다. 그걸 치유코자 꿈 작업, 음악.미술 테라피 등 많이 다녔습니다. 제 경험상, 인생 저 밑바닥까지 내려가 봐야 알 수 있는 것 같습니다. 고상 위의 예수님 팔이 출렁거리고, 자비의 예수님의 시선이 내 가슴에 꽂혀야 말씀이 비로소 내 안에서 용트림하기 시작하는 것 같습니다.
인간 지식과 상식으로는 늘 한계가 있습니다. 또 몇 수십년 후는 오늘 진리인 줄 알았던 것이 허사가 될 수도 있습니다. 또, 천주교 역사에 비하면 우리나라 성경 해설서, 주석서는 많이 빈약하지 않나요? 가톨릭 서점에 책이 별로 없습니다. 저도 기존의 그것들을 탐독하면 성경이 더 잘 보일 줄 알았습니다. 하지만 의문은 또 다른 의문을 야기 시켰습니다. 속이 후련해지지 않았습니다. 도무지 어디까지 가야할 지 막막하기만 했습니다. 주지하시다시피, 창세기는 읽을 때마다 다른 모습으로 도전해 옵니다. 어디까지 알아야 , 다 알았다 할 수 있겠습니까? 한정된 인간의 초라한 지식과 상식으로는 블가능하다는 것을 깨닫기 시작했습니다. 몇 십년을 주구장창 4복음서 강론 들었습니다. 앞으로도 더 들을 것 같습니다. 신기한 것은 신부님들의 강론이 천편일률적이지 않다는 것 입니다. 그만큼 성경은 엄청난 폭과 깊이를 가지는 무궁무진의 다양성을 갖는다 생각합니다. 저는 그 이후로 절대로 감히 "성경을 안다"하지 않습니다.
성경은 하느님 말씀이라고 합니다. 교리나 주석이 성경을 뛰어넘기가 불가하지만, 또 뛰어 넘으려 해도 안 된다는 게 제 생각입니다. 그것들은 성경 즉 말씀이신 하느님을 더 잘 이해하기 위한 수단이지 결코 목적은 아닙니다. 달을 가리키는 손가락만 쳐다 봐서는 안 될 것 같습니다.
어느날 봉쇄 수도원의 어느 수녀님께서 깨우침을 주셨습니다. 불가에서 말하는 "화두" 같은거! 그 이후로 성경을 보면 글씨들이 살아 움직이기 시작했습니다. 성경 어디를 펼쳐도 낯설지가 않습니다. 읽는 순간 오래지 않아 묵상에 빠져들기 시작합니다. 엠마오에서 주님의 옷 냄새와 음성과 열정과 땀과 발자국 소리를 보고 들으며, 겟세마니에선 가슴을 후벼파는 애절함에 넋을 놓습니다. 에덴 동산에서는 나뭇잎을 바스락 거리며, 도포 자락을 날리시며 , 먹거리를 들고 저를 부르시는 소리를 듣습니다.
성경은 정말 복음입니다. 거기에 모든 것이 있습니다. 거기에 주님께서 팔 벌리시고 기다리고 계십니다. 성경은 발로 꾹꾹 밟으면 "사랑" 두 글자가 튀어 오를 것 입니다. 인간은 죽을 때 "사랑"말고는 딱히 가지고 갈 것도 없지 않습니까? 성경 앞에선 겸손해야 합니다. 나를 낮추어야 합니다. 발가벗고 어린애가 되어야 옳습니다. 세상 것들에서 자유로와져서 다 비워야 합니다. 뭘 좀 안다는 지식이나 지혜의 교만이 하느님과 소통에 오히려 걸림돌이 되지 않아야 합니다. 다음을 노리는 악마도 성경을 알고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제 생각으론 성경은 "알아 가는" 것이 아니라, 조금씩 "느끼고 공감하는 것" 입니다. 성경과 일체가 되어야 합니다. 용서의 서(恕)자가 마음이 같아야 하듯, 성경과 내가 혼연일체가 되어야 합니다. 성경의 모든 구절에서 진솔한 자신의 모습을 읽어내고, 세상 모든 것에서 하느님을 뵐 수 있어야 되는 것 같습니다. 유가의 일이관지라고나 해 두겠습니다. 수녀님께서는 이런 류들의 것을 묵상하도록 어리석은 저를 이끌어 주셨고, 주시는 참으로 고마운 분이십니다.
이후로 주차장에서 미사 끝나고 차 빨리 안 빼준다고 다투지 않습니다. 운전 중 훅 끼어 들어도 욕하지 않습니다. 남을 비판, 비방하지 않으려 노력합니다. 성경 속에서 주님은 한결 같으시고, 일방적으로 좋은 것만 베풀어 주십니다. 그래서 저는 성경이 그냥 좋습니다. 제가 해 보니 좋아서, 다른 믿는 이들에게도 권하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위 글을 썼습니다. 마지막으로 성경과 한문을 접목시키는 것도 많이 유익한 것 같습니다. 그래서 과감히 도전장 냈습니다. 지난한 여정이 될 것 같습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오랫만에 지음지기를 만난 것 같습니다. 아무튼 형제님께서 주님 안에서 늘 평온하시고, 행복하셨으면 좋겠습니다. 언제 기회가 되면 또 다른 주님도 함께 모실 수 있겠습니까?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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