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Re:저희는 조선왕조를 어떻게 바라봐야 할까요? | 카테고리 | 천주교 | ||
---|---|---|---|---|
이전글 | 이전 글이 없습니다. | |||
다음글 | 성 미카엘 대천사께 드리는 기도를 알고 싶습니다. |1| | |||
작성자김재환 | 작성일2019-08-08 | 조회수2,042 | 추천수0 | 신고 |
찬미 예수님!!! 어느 역사든 역사는 장단이 다 있습니다. 참고로 중세에 대해서도 논란이 있습니다. 예전에는 무조건 유럽 중세가 암흑기라 규정했지만 요즘은 유럽 중세가 100% 암흑기인 것은 아니며, 장단점이 있다고 보는 것입니다. 카롤링거 왕조가 시작될 때 쯤 지중해 쪽은 거의 상당수가 이슬람 세력이 장악하고 있었습니다. 카롤루스 대제(샤를마뉴 대제)가 돌아가시자 말자 게르만 전통 관습에 의해 3명의 아들에게 땅을 떼어주면서 서프랑크,중프랑크,동프랑크로 나뉘어지게 됩니다. 그 때쯤 되면 이슬람이 완전히 지중해를 장악했던 상황이기에 상업활동이 사실상 불가했던 시절이었습니다. 절대왕정이 가능할려면, 상업이 이루어져서 비용이 충당되고 그 비용을 바탕으로 상비군을 가지고 있어야 하고, 관료제도 만들어야 합니다. 그러나 비용이 없으면 그게 불가합니다. 그래서 유럽은 어쩔 수 없이 봉건제를 실시하게 됩니다. 서프랑크가 프랑스로 바뀌고 동프랑크는 나중에 신성로마제국이 되게 됩니다. 봉건제가 가장 강력하게 적용된 곳은 영국입니다. 영국의 경우 점령자가 봉건제를 의도적으로 도입했기 때문입니다. 프랑스도 영국보다는 덜하지만 봉건제가 강력히 적용됬던 나라였습니다. 하지만 신성 로마제국은 게르만 본거지였기에 봉건제도 자체가 성립할 수가 없었습니다.
봉건제란 왕이 상비군을 마련할 수 없기에 왕은 토지를 주고, 제후는 병력을 제공하는 쌍무적인 계약관계로 한적이 어기면 깨지는 계약이었습니다. 봉건제는 "왕토사살"이라는 개념을 바탕으로 진행되고 있습니다.
다만 신성로마제국은 게르만 본거지여서 제후들의 본거지였기에, 왕토사상이 통하지 않습니다. 그러다보니 봉건제가 성립하지 못하고 가장 후진국이 됩니다. 여기는 왕을 제후들이 투표로 뽑고, 거의 1~2년 못가서 바뀌고 그런 데 입니다. 그러다보니 이들은 황제파와 반황제파와 매번 싸움을 벌입니다. 이런과정에 신성로마제국 정치세력들과 교회와 서임권 다툼이 벌어지는 데, 최종적으로는 교회가 서임권을 가지게 되면서 제정분리의 기초가 만들어지고 대의제 민주주의의 기초가 자리잡기도 했다는 점도 있습니다.
참고로 십자군 전쟁이 벌어진 시기는 이슬람 세력이 어느정도 약화된 상태였고 상업활동이 조금은 가능한 상황이었기에 가능했던 것입니다. 그래도 이건 가톨릭교회가 잘못한 것이 맞습니다.
조선도 비슷합니다. 장점도 있고 단점도 있다고 봅니다. 과거제의 범위가 넓어지고 음서제도가 줄어든다는 점의 발전이 있고 농업적에서도 발전은 조금씩 있습니다. 사림들이 처음 붕당만든것도 초기에는 잘 가다가 나중에 변질됩니다. 변질되면서 이상해져버린 것이지요.
흥선대원군도 통상수교거부정책을 지나치게 강력하게 추구해서 문제가 된 것이고 참고로 고종도 사실 대통령제와 공화제를 알고 있었는데, 자신의 권력욕 때문에 문제가 생긴 것입니다.그렇다고 강화도 조약 때부터 한국은 일본에 식민지가 될 수 밖에 없다는 주장이었다는 일본 측의 주장이고 강화도 조약이 불평등 조약이라는 것 또한 일본의 여론전이었다고 합니다. 함대도 군함도 아니고 소규모 화물선을 함대로 변형해서 가져왔던 거라고 합니다. 실제 강화도조약은 불평등 조약이 아닌데, 일본 국내 법 때문에 사실상 불평등조약화된 겁니다.
|
||||
태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