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신약] 마르코와 함께 떠나는 복음 여행: 가까이 다가온 하느님 나라(마르 1,14-15)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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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주호식 | 작성일2024-02-20 | 조회수311 | 추천수0 | |
[마르코와 함께 떠나는 복음 여행] 가까이 다가온 하느님 나라(마르 1,14-15)
사십 일 동안 광야에서 단식하시며 사탄의 유혹을 받으신 후, 예수님께서는 이제 사람들 앞에 나서시어 다음과 같은 말로 당신의 공적인 삶, 곧 공생활을 시작하십니다. “때가 차서 하느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다. 회개하고 복음을 믿어라.”(1,15) 이는 앞으로 당신이 완수해야 할 사명이 무엇인지 요약해 주는 말씀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죄와 죽음의 권세에 놓여있는 인간을 해방하시어 당신의 영원한 생명에 참여시키시기 위해 예수님을 이 세상에 보내주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인간의 ‘구원’을 원하신 아버지의 뜻을 이루시고자 우리와 똑같이 인간이 되어 오셨고 우리 가운데 사셨습니다. 이제 아버지께서 원하신 ‘때’가 되어 예수님께서는 하느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음을 장엄하게 선포하십니다. 그런데 마르코에게 묻고 싶습니다. 하느님 나라의 도래가 도대체 우리의 구원과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
사실 예수님께서 활동하시던 당시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하느님은 먼 존재처럼 느껴질 때가 많았습니다. 특히 가난 때문에 율법의 규정들을 성실히 지키지 못해서 늘 하느님의 은총 밖에 머물러 있다고 느끼는 사람들에게 하느님은 너무나 먼 곳, 마치 저 멀리에서 그들을 심판하고 벌을 주시기 위해 대기하고 계시는 존재처럼 여겨졌습니다. 하루 벌어 하루 끼니를 겨우 해결해야 하는 사람들, 온갖 질병으로 헤어 나올 수 없는 고통 속에서 살아갈 수밖에 없는 사람들, 그리고 스스로 죄인임을 알기에 하느님 앞에서 얼굴을 들고 그분과 마주할 수 없는 아픔을 지닌 이들. 예수님께서는 이들에게 말씀하십니다. ‘아니다, 하느님은 자비로운 너희의 아버지시다. 온갖 시련에서 너희를 지켜주고 보호하는 분이시며, 너희의 아픔과 굶주림을 나 몰라라 하시는 분이 절대 아니다.’ 예수님께서 선포하신 하느님의 나라는 바로 그런 곳입니다. 하느님의 무한한 사랑과 자비를 체험할 수 있는 곳, 자신이 지은 죄와 온갖 인간적 나약함에 짓눌려 살아가는 이들이 자유와 해방을 체험하고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참된 인간다운 삶을 살아갈 수 있는 곳, 바로 그곳이 하느님 나라입니다. ‘구원’이 말 그대로 어려움에 놓여있는 이를 도와서 그 어려움에서 벗어나게 하는 것이라면, 하느님 나라는 참된 구원을 체험하는 자리입니다.
그런데 가까이 다가온 하느님 나라에 참여하기 위해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회개하고 복음을 믿는 것. 지금껏 하느님이 아닌 다른 무엇인가를 마치 하느님처럼 섬기며 살아왔다면, 이제 예수님께서 드러내신 하느님의 모습을 보고 듣고 깨달아 자신의 전 존재를 그분께로 ‘돌려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전해주시는 ‘기쁜 소식’을 온전히 받아들이고 믿어야 합니다. 예수님께 우리 자신을 온전히 투신하는 삶을 살아갈 때, 우리를 짓누르는 모든 어려움에서 해방되어 하느님께서 베푸시는 구원을 지금, 이곳에서 체험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과 인격적으로 만나고 그분과 친밀한 관계를 이루고 그분을 온전히 따르는 것. 이것이 바로 하느님 나라에 이르는 길이며, 구원의 길입니다.
[2024년 2월 18일(나해) 사순 제1주일 서울주보 6면, 이영제 요셉 신부(가톨릭대학교 문화영성대학원 교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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