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구약] 성지에서 만나는 성경 말씀: 통곡의 벽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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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주호식 | 작성일2024-03-14 | 조회수242 | 추천수0 | |
[성지에서 만나는 성경 말씀] 통곡의 벽
유다교의 최고 성지는 단연 통곡의 벽입니다. 그래서 늘 붐비지만, 성인식을 치르는 월요일과 목요일에는 더 떠들썩해집니다. 여자아이는 만 12세부터, 남자아이는 13세부터 율법의 의무를 지켜야 하는 성인이 됩니다. 이날, 가족과 친지들은 사탕을 던지고 북소리에 맞춰 춤을 추며 기뻐합니다. 성인식을 통곡의 벽에서 하는 건, 과거 그 위 모리야산에 성전이 자리해 있었기 때문입니다.
모리야산 위의 성전을 마지막으로 보수한 이는 2,000년 전 헤로데 임금입니다. 그는 모리야산을 평평하게 깎아 500미터 길이의 광장으로 만든 뒤, 그 위에 성전을 개축하였습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 강도들의 소굴로 변질된 성전을 꾸짖으며 돌 위에 돌 하나 남지 않으리라고 예고하신 대로, 기원 후 70년 로마 장군 티투스는 열혈당원들의 반란을 진압하며 징벌 차원으로 성전을 파괴하였습니다. 이는 당시 유다인들에게, 명성황후 시해나 숭례문 화재 사건에서 우리가 느낀, 아니 그보다 훨씬 더 충격적인 고통의 사건이었습니다. 그 이후 모리야산에는 성전을 받치던 바깥벽들만 남게 되었는데, 그 가운데 서쪽 벽이 바로 통곡의 벽입니다. 유다인들이 유독 서쪽 벽을 성지로 삼아 기도하는 건, 그 벽이 성전의 지성소와 가장 가까운 곳인 데다, 솔로몬 임금이 “당신 종과 당신 백성 이스라엘이 이곳을 향하여 드리는 간청을 들어주십시오.”(1열왕 8,30)라고 하느님께 청하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통곡의 벽은 오늘날 유다인들에게 하느님의 현존을 상징하는 심장 같은 곳이 되었습니다.
그렇다면, 통곡의 벽이라는 이름은 어떻게 생긴 걸까요? 이는 유다인들이 로마에 거슬러 일으킨 제2차 반란 사건(132-136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기원후 66년 발발한 열혈당원들의 반란 뒤, 132년에는 바르 코흐바 혁명이 일어납니다. 유다인들이 연이어 반란을 일으키자 이에 분노한 로마 황제 하드리아누스(재위 117-138년)는 유다인들을 예루살렘에서 내쫓았습니다. 이후 유다인들은 성전파괴일인 아브 월 9일에만 출입을 허락받았습니다. 그래서 그날 예루살렘으로 올라온 유다인들이 서쪽 벽을 붙들고 밤새 통곡하다가, 이튿날 울며 그곳을 떠났다고 합니다. 또한 전승에 따르면, 성전이 무너지던 날 그 벽이 이슬에 젖어 마치 우는 것처럼 보였다고도 합니다. 다만 불과 60년 전만 해도 통곡의 벽은 유다인들에게 ‘화중지병’(畵中之餠) 곧 그림의 떡과 같았는데요, 그때는 동-예루살렘이 요르단의 영토였기 때문입니다. 1967년 일어난 6일 전쟁 뒤에야 이스라엘은 예루살렘 통합(?)에 성공합니다.
통곡의 벽에서 몸을 앞뒤로 흔들며 기도하는 유다인들을 보고는, 졸면 안 돼 몸을 흔든다는 둥, 몸을 흔들어 기도를 바치면 두 배가 되기 때문이라는 둥 재미있게 추측하곤 하지만, 사실 이는 온몸으로 하느님을 찬양하려는 몸짓입니다. 기도한 뒤에는 주님께 등을 보이지 않으려고 뒷걸음질로 나옵니다. 이런 유다인들을 볼 때면, 성전 건물은 외형에 불과할 뿐 하느님의 현존을 느끼는 데는 거창한 무엇이 필요하지 않다는 생각도 하게 됩니다.
* 김명숙 소피아 - 예루살렘 히브리대학교 박사, 광주가톨릭대학교 구약학 교수, 전 한님성서연구소 수석연구원. 저서 「에제키엘서」 「예레미야서 1-25장」 「예레미야서 26-52장」 「구세사 산책: 에덴에서 약속의 땅까지」
[2024년 3월 10일(나해) 사순 제4주일 의정부주보 2면, 김명숙 소피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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