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성경] 성지에서 만나는 성경 말씀: 제단 뿔과 주님의 자비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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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주호식 | 작성일2024-04-10 | 조회수336 | 추천수0 | |
[성지에서 만나는 성경 말씀] 제단 뿔과 주님의 자비
우리나라에서 민주화 운동이 한창이던 20세기 후반, 명동성당은 조계사와 함께 항쟁자들에게 성역(聖域)이 되어주었습니다. 빅토르 위고의 소설 「노트르담의 꼽추」에는 성당 종지기 콰지모도가 위험에 처한 집시 여인 에스메랄다를 성당으로 끌어들여 구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이런 성역의 존재는 구약 시대부터 이어진 전통입니다. 당시에는 제단에 달린 뿔이 피신처가 되어주었습니다. 이스라엘의 브에르 세바와 므기또 유적지 등에서 발굴된 제단이 이런 뿔 달린 형태를 보여줍니다.
제단의 제작 지침은 오경에 나옵니다. 그 가운데 탈출 20,25에서는 제단을 ‘다듬지 않은 돌’로 만들어야 한다고 규정하는데요, 정을 대면 그것이 부정해진다고 보았기 때문입니다. 이는 제단을 자연 그대로의 돌로 만듦으로써 그 제사를 통해 자연의 창조주이신 하느님을 섬긴다는 뜻입니다. 이와 관련해, 고대 유다 법전 <미쉬나>(미돗 3,4)는 다음과 같이 설명합니다: “제단은 인간과 하느님 사이의 관계를 화해시켜주는 구실을 하지만, 정의 재료가 되는 철은 인간의 수명을 단축하는 무기 제작에 사용되어 왔다. 화해의 장소인 제단과 무기로 사용되는 철은 서로 융합될 수 없다.” 그리고 제단의 뿔도 외부에서 만들어 갖다 붙이는 것이 아니라, 처음부터 제단과 하나인 돌로 만들어야 했습니다(탈출 27,2; 30,2).
제단의 뿔이 위험에 처한 이들에게 도피처가 된 데는 이유가 있습니다. 우선, 제단은 성막과 성전 제사의 중심으로서 백성이 제물을 바쳐 죄를 씻는 곳이고 동시에 하느님께서 당신을 백성에게 드러내 보이시던 곳입니다(레위 9,23-24; 1열왕 18,38 등). 이런 제단에서 주님의 힘과 자비를 가장 잘 드러내 주는 부분이 바로 뿔이었습니다. 뿔은 황소 같은 짐승을 떠올려주는 표상으로서 힘의 상징입니다(신명 33,17; 예레 48,25). 시편 18,3에서는 하느님의 권능을 기리며 주님을 “구원의 뿔”이라고 찬양합니다. 시편 132,17에는 주님께서 “다윗에게 뿔(=힘)이 돋게” 해 주신다는 찬송이 나옵니다. 이렇듯 뿔은 제단에서 신성(神性)과 힘이 깃든 중심으로 여겨졌기에, 그것을 자르면 제단 전체를 파괴하는 행위가 되고(아모 3,14), 그것을 잡으면 하느님의 자비를 누릴 수 있다고 보았던 것입니다. 이런 이유로 우발적으로 살인했거나 억울하게 누명 쓴 이가 제단 뿔을 잡으면 주님의 용서와 보호를 바랄 수 있었습니다. 단, 흉계를 꾸며 살인한 경우에는 그 뿔을 잡아도 소용이 없었습니다(탈출 21,14). 결국 제단 뿔은 구약 시대에 주님을 믿고 따르는 이들에게 공정하고 자비로운 성역이 되었습니다.
그러다 구원의 뿔은 신약 시대에 성자 예수님으로 육화(肉化)하기에 이릅니다. 루카 1,69에 나오는 “힘센 구원자”를 직역하면 ‘구원의 뿔’입니다. 그리고 민주화 운동 중 위험에 처한 이들을 명동성당이 보호해준 예에서 보듯, 뿔을 지닌 구약 시대 제단의 의미와 기능은 오늘날까지 이어지게 되었습니다.
* 김명숙 소피아 - 예루살렘 히브리대학교 박사, 광주가톨릭대학교 구약학 교수, 전 한님성서연구소 수석연구원. 저서 「에제키엘서」 「예레미야서 1-25장」 「예레미야서 26-52장」 「구세사 산책: 에덴에서 약속의 땅까지」
[2024년 4월 7일(나해) 부활 제2주일(하느님의 자비 주일) 의정부주보 2면, 김명숙 소피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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