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신약] 성지에서 만나는 성경 말씀: 라자로의 소생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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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주호식 | 작성일2024-04-24 | 조회수214 | 추천수0 | |
[성지에서 만나는 성경 말씀] 라자로의 소생
올리브산 동편에 자리한 베타니아는 예수님 시대에 라자로, 마리아, 마르타 남매가 살던 옛 고을입니다. 베타니아라는 지명의 뜻은 두 가지로 추정됩니다. 하나는 ‘가난의 동네’입니다. 나병 환자 시몬이 베타니아에 살았고(마르 14,3) 라자로도 그곳에서 앓다가 죽었다는 점(요한 11장)을 생각하면, 가난한 병자들이 많은 동네였던 것 같습니다. 또한 베타니아를 ‘무화과 고을’로도 풀이하는데요, 예수님께서 열매 맺지 못한 무화과나무를 저주하신 곳도 베타니아였습니다(마르 11,12-14).
주로 갈릴래아 호숫가에서 활동하시던 예수님께서는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실 때 라자로 남매의 집에서 자주 머무신 것 같습니다. 마리아와 마르타가 자기 오빠를 말할 때 “주님께서 사랑하시는 이”(요한 11,3)라고 일컬은 점에서도 예수님과 이들이 각별한 사이였음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그런 라자로가 죽었다는 부고에 예수님께서는 베타니아까지 가셔서 그를 살려내시는데요, 다만 곧장 가시지 않고 이틀 뒤에 가십니다(11,6-11). 라자로의 일을 통하여 당신의 영광이 드러날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막상 두 자매를 만나자 눈물을 흘리십니다. 곧 라자로를 소생시켜 주실 터였는데, 왜 눈물을 보이셨을까요? 이는 아마도 오빠를 잃은 마리아와 마르타를 위한 눈물이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누군가를 깊이 사랑하면, 그 사람이 느끼는 감정까지 고스란히 이입되곤 합니다. 오빠의 죽음을 슬퍼하는 누이들의 마음이 예수님께도 전해져 함께 울어 주신 게 아니었을까요. 그런 뒤 예수님께서 그의 이름을 부르시자, 라자로는 수의에 싸인 채 죽은 지 나흘이나 지났음에도 걸어 나왔습니다.
라자로의 히브리어 이름은 [엘아자르]로 ‘하느님께서 도우셨다’라는 의미입니다. 그 이름 뜻처럼 라자로는 주님의 도우심으로 두 번째 생을 선사 받았습니다. 이는 요한복음에 나오는 일곱 기적, 곧 일곱 표징 가운데 마지막이자 절정이 되는 기적입니다. 하지만 라자로가 되살아난 일을 ‘부활’이라고 칭할 수는 없습니다. 왜냐하면, 그는 언젠가 다시 죽음을 맞이해야 할 운명이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나중에 다시 죽을 때 그는 하느님 안에서 평화로우리라는 확신을 가졌을 것입니다.
베타니아에 자리한 라자로의 무덤 안에 들어가보면, 칠흑 같은 어둠이 온몸을 휘감습니다. 편안함과 함께 두려움도 느끼게 하는 어둠입니다. 이런 게 바로 죽음의 어둠이구나, 하는 생각과 더불어 죽음 앞에서는 누구나 혼자임을 묵상하게 됩니다. 죽음을 대하는 마음 자세는 저마다 다르겠지요. 우리는 단순히 죽음을 망각하고 외면할 게 아니라, 언젠가는 찾아올 손님으로서 죽음을 받아들여야 할 것입니다. 라자로가 경험한 죽음과 소생은, 우리 역시 언젠가 죽더라도 하느님 안에서 평화로우리라는 확신을 얻게 해줍니다.
* 김명숙 소피아 - 예루살렘 히브리대학교 박사, 광주가톨릭대학교 구약학 교수, 전 한님성서연구소 수석연구원. 저서 「에제키엘서」 「예레미야서 1-25장」 「예레미야서 26-52장」 「구세사 산책: 에덴에서 약속의 땅까지」
[2024년 4월 14일(나해) 부활 제3주일 의정부주보 2면, 김명숙 소피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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