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성경] 성경 입문8: 문자(文字), 기억의 보존과 활용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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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주호식 | 작성일2024-05-07 | 조회수252 | 추천수0 | |
[성경 입문] (8) 문자(文字), 기억의 보존과 활용
성경은 인간의 언어와 문자로 기록된 하느님의 말씀입니다. 그러나 처음부터 글로 쓰인 성경이 두루마리나 책의 형태로 하늘에서(?) ‘쿵’하고 떨어진 것은 아닙니다. 기록 이전에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는 신(들)과 인간 세상에 관한 이야기가 있었을 것입니다. 시와 노래, 탄원과 고백, 환호와 분노, 사랑과 미움, 전쟁과 평화 같은 인간 세상에서 벌어지는 모든 일들과 그에 대한 생각들이 이런 이야깃거리의 주제가 됩니다. 과거에는 인간 스스로에 대한, 그리고 그 인간 사회의 구성원들이 살아가는 세상 속에서 풀리지 않는 질문에 대한 답을 종종 보이지 않는 신에게 유보하기 마련이었습니다. 그래서 천재지변이나 질병과 같은 불행한 사건들은 신들의 분노로, 풍작과 이상적인 자연환경은 신들의 축복으로 생각하곤 했습니다. 그런 사회에서 태어나고 자라는 사람들에게 세상에 대한 지식과 정보를 제공하는 것은 인터넷이나 도서관, 교육기관 등이 아니었습니다. 그 사람들 보다 먼저 세상을 살았던 이들의 축적된 경험과 성장과정 속에서 체험을 통해 얻게 되는 통찰이 인류의 문화를 발전시킵니다.
우선, 가정은 한 사람이 한 사회의 구성원으로 살아가는 데에 필요한 역량을 키워가는 첫 교육이 이루어지는 장소였습니다. 조금 더 성장하여 집 밖으로 그의 활동 범위가 넓어지면, 또래들과의 놀이, 사회 구성원 전체가 참여하는 공동 노동, 축제와 같은 사회적 활동이 그의 인식의 폭을 더욱 넓혀주고 그 깊이를 더하는 데 도움을 줍니다. 이런 세상 속에서 대개 최고의 정보 제공자는 지적 활동의 기간과 체험이 많은 사람들이었습니다. 자연스레 한 부족과 사회의 연장자들은 살아있는 백과사전의 역할을 하게 됩니다. 그들은 자신들의 기원과 자기들 만의 독특한 풍습과 사회적 합의의 이유와 의무 등에 대해 설명해 주고, 구성원들 간에 다툼이 있을 때는 권위를 지니고 공적인 판결을 통해 분쟁을 해결하였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런 형태의 정보 전달과정은 점점 거대해지는 공동체의 규모에 부응하기에는 비효율적일 수밖에 없습니다. 마을과 부족 단위를 넘어 국가라고 부를 정도의 거대한 한 사회 전체에서 통용되고 그들을 하나로 규합할 수 있는 가치체계를 담아낼 수 있는 보다 확실하고 효율적인 지식과 지혜의 저장 수단이 필요합니다. 한 사람의 기억에만 의존하지 않고, 굳이 그 사람을 찾아가거나 초빙하지 않더라도 쉽고 간편하게 확인과 조언을 얻을 수 있는 수단. 그것은 정보를 저장할 수 있는 표지, 곧 문자입니다. 문자는 시간이 지나도 변하지 않습니다. 인간의 기억은 한계가 있지만 문자는 거의 완벽하게 그 보존기간을 늘려줄 뿐 아니라 동시에 여러 지역에서 같은 정보를 전달할 수도 있습니다. 그렇다면, 국가의 주요 정책이나 새로운 소식을 한 사람이 순회하며 들려주지 않더라도, 여러 도시에 같은 권위를 가진(보통 통치자의 인장으로 확인가능한) 정보들이 한꺼번에 전달되고, 설령 시간이 지나 정확한 의미가 생각나지 않을 경우에는 다시금 확인 가능한 매우 유용한 수단이 될 수 있습니다. 처음에는 단순히 상거래 내역을 기록하던 수단이었던 단순한 기호들이, 점점 더 복잡한 의미를 담아내는 문자로 발전하여 법과 신화, 시와 같은 한 사회의 공적 정신적 가치를 보존하는 기억의 저장고 역할을 하게 됩니다.
인류가 문자를 활용하기 시작한 것은 구약성경이 글로 기록되기 2,500여년 전부터인 것으로 추정됩니다. 바빌론 유배시기, 단편적으로 전해지던 망국의 기록 유산들을 수집, 정리하며 시작된 구약성경의 초기 편집작업이 문자의 태동지였던 메소포타미아 문명의 한복판에서 이루어진 것도 우연은 아닐 것입니다. 화실에 세워 놓은 그리스-로마의 석고상이 인체 드로잉의 길잡이가 되고, 고대 중국의 금석문과 명필들의 서첩들이 서예가들의 참고서 역할을 하듯 구약성경의 저자들은 켜켜이 축적되어 왔던 선진 문명의 도서관에서 참조할 수 있었던 글쓰기의 기본 소양에 기대어 자신들의 조상들과 그들이 섬겼던 신이 남겨준 역사와 교훈을 기록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2024년 5월 5일(나해) 부활 제6주일(생명 주일) 전주주보 숲정이 3면, 이정석 라파엘 신부(전주가톨릭신학원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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