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성경] 성경, 다시 보기: 놀면 뭘 하나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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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주호식 | 작성일2024-07-10 | 조회수64 | 추천수0 | |
[성경, 다시 보기] 놀면 뭘 하나
이 제목은 어느 텔레비전 방송에서 방영하는 놀이 프로그램의 한 제목이다. 이 글을 쓰라고 부탁받은 후, 첫 번째 글인데, 제목을 꼭 붙여달라기에 어떤 제목을 붙일까 하고 겨우 생각해 낸 것이 이것이다.
은퇴 후, 아니 성사전담 신부가 된 지, 벌써 5년째 접어든다. 첫 번째 1년은 아무것도 안 하고 놀고 쉬었다. 그러면서 생각해 낸 것이, 나에게 주어진 이 빈 시간을 어떻게 지루하지 않고 외롭지 않게 그리고 재미있고 시간이 빨리 가고 또 보람되게 보낼 수 있을 건지를 생각해 낸 것이 하나 있다. 그것이 바로 나에게 있어서는 “배운 도둑질”인 성서 공부다.
그 가운데서도 성경 번역이다. 이미 우리말로도 가톨릭에서도 개신교에서도 여러 번역들이 있는데, 또 뭘 새삼스럽게 변역을 하느냐고 누가 짜증스러운 핀잔의 말을 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말이란 세대를 거치면서 그 뜻이 변하기에 그렇고, 또 완벽한 번역이 있을 수 없기에, 기회가 닿는 대로 자꾸 새롭게 더 나은 번역을 시도해야 한다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 옛날 어느 선배 신부님의 말이 생각난다. 번역은 반역이다. 이 말은 번역이 얼마나 그 원문의 뜻을 잘 반영할까 하는 의구심에서 나온 말일 것이다.
유학 시절에 있었던 일이다. 내가 살았던 오스트리아 인스브루크의 Cansianum 신학교 기숙사에는 교구 신학생들이 사는 기숙사와는 달리, 세계 여러 나라에서 온 신부, 신학생들이 많이 살았는데, 많을 때는 23개국의 사람들이 살았다고 한다. 그런데 성탄절이 되면, 각국 나라 학생들에게 자기 나라의 성탄 노래를 불러보라는 것이었다. 그런데 40여 년 전 그때 우리는 우리 고유의 성탄 노래가 없었고, 그들이 우리말을 모르기에, “고향의 봄” “오빠 생각”등을 불렀다. 그런데 한국 신부, 신학생들이 눈이 휘둥그레지고 놀란 일이 일어났다. 인도 신부, 신학생들이 그들의 성탄 노래를 부를 때였는데, 우리 귀에는 흡사 “염불 소리”로 들렸던 것이다. 중국말로 불경을 번역할 때, 그 산스크리트 경전의 운율도 그대로 살려서 따온 것이 아닐까?
광주 대신학교 재학시절 도서관에서 읽었던 글이 생각났다. 불경을 “산스크리트” 인도말에서 중국말로 번역했을 때 일곱 단계를 거쳤다고 한다. 1) 초벌 번역: “번역은 반역이다”란 말을 늘 염두에 둔다. 2) 문법: 어느 쪽의 문법을 따를 것인가? 예: “나는 학교에 간다”라고 해야 할지, “나는 간다 학교에”라고 해야 할지. 3) 어순: 원문의 어순을 따르는 것이 원칙이지만, 관계문일 경우 우리 말은 관계문이 먼저 나오지만, 희랍말(그리스)이나 외국말은 관계문이 뒤에 나온다. 4) 가능하면 같은 단어 사용. 예: “아가페”를 “사랑”이라고 번역했으면 이 단어가 나올 때마다 “사랑”이라고 번역한다. 5) 가능하면 단어의 길이가 같게. 6) 운율: 산스크리트로 읽을 때와 중국말로 읽을 때 얼마나 비슷한가? 7) 되번역: 중국말 번역을 산스크리트어로 되번역했을 때, 얼마나 원문과 같을까?
이번에 새롭게 번역을 시도하는 것은 이 일곱 단계를 늘 염두에 두고 있다. 특히 3), 4) 그리고 7)이다. 가끔 이런 생각도 든다. 옛말에 “노니 장독 깬다”는 말이 있다. 가만있으면 편한 것을, 요란스럽게 일을 내어, 귀한 장독이나 깨뜨리지나 않나 하는 염려에서 하는 말이다.
[2024년 2월 4일(나해) 연중 제5주일 가톨릭마산 8면, 황봉철 베드로 신부(성사전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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