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성경] 성경, 다시 보기: 부활이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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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주호식 | 작성일2024-07-10 | 조회수83 | 추천수0 | |
[성경, 다시 보기] 부활이란
신약성경 안에서 부활을 뜻하는 단어가 여럿 있습니다. 그들 가운데 명사로 된 단어인 아나스타시스(αναστασις)가 있는데 대략 40번 사용되고 있습니다. 이 단어는 부활로 번역되고 있습니다, 부활(復活)이란 “회복할 부, 다시 부”와 “살 활, 생존할 활”의 합성어로 다시 사신다는 의미입니다. 사도행전에서 제일 많이 사용되었습니다.
동사로는 에게이로(εγειρω)와 안이스테미(ανιστημι)가 있는데, 에게이로는 대략 140번 정도, 안이스테미는 100번 정도 사용되고 있습니다. 에게이로의 뜻은 “일으키다”로 타동사입니다. 그래서 이 동사는 주로 수동태로 사용되고 있으며, 즉 예수님께서는 “일으켜지셨다” 또는 “일으킴을 받으셨다”라는 것인데, 그러면 누구로부터, 누구에 의해서 일으킴을 받으셨는가 하면, 말할 것도 없이 하느님으로부터입니다. 성서 본문에는 하느님으로부터라는 말이 없지만, 그것은 명확한 사실입니다. 그래서 이런 표현을 신학적 수동태(Divinum Passivum)라고 합니다. 새 번역에서는 주로 “되살아나셨다”라고 번역되었습니다.
다음으로, 안이스테미라는 동사는 “일어나다”라는 뜻으로 자동사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신의 능력을 지니셨기에, 스스로 일어나실 수 있다는 것입니다. 새 번역에서는 “다시 살아나셨다”라고 번역되었습니다.
이제 이 두 동사의 사용처를 비교하여 살펴보겠습니다. 공관복음에서는 예수님의 부활에 대한 예고가 세 번이나 나옵니다.
◦ 마태오: 일으켜지셔야 한다(16,21); 일으켜지실 것이다(17,23); 일으켜지실 것이다(20,19) ◦ 마르코: 일어나셔야 한다(8,31); 일어나실 것이다(9,31); 일어나실 것이다(10,34) ◦ 루카: 일으켜지셔야 한다(9,22); 해당 단어가 없음(9,44); 일어나실 것이다(18,33)
이제는 빈 무덤 이야기에서 언급된 표현을 보겠습니다.
◦ 마태오: 일으켜지셨다(28,6); 일으켜지시다(26,32) ◦ 마르코: 일으켜지셨다(16,6); 일으켜지시다(14,28) ◦ 루카: 일으켜지셨다(24,6) ◦ 요한: 일어나시다(20,9)
위에서 살펴본 결과, 부활에 대한 예고에서 마태오에서는 모두 “에게이로”(일으키다)라는 단어가, 마르코에서는 “안이스테미”(일어나다)가, 루카에서는 반반, 그런데 빈 무덤 이야기에서는 요한을 제외하고는 모두 “에게이로”가 사용되고 있습니다. 즉 부활 전과 부활 후의 표현이 달라지고 있는데, 공관복음에서의 예수님 부활은 스스로 일어나신 것이 아니라, 하느님에 의해서 일으켜지셨다는 것을 더 부각하고 있습니다. 즉 하느님과의 긴밀한 관계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런데도 요한은 예수님께서 일어나셨다고 합니다(요한 20,9). 즉 예수님은 신이시기 때문에 스스로 일어나실 수 있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고, 그분을 가장 가까이 모셨던 제자로서 그분을 누구보다도 잘 아시는 사람의 증언이라는 것을 생각한다면, 그 표현에 더 신빙성이 있을 수 있고, 제자이기에 스승을 더 높이고 싶은 마음도 있으리라 생각됩니다.
마지막으로 부활에 대한 이해를 돕는 표현으로는 동사 조오포이오(ζωοποιω)입니다. 뜻은 “생명을 만들다”입니다. 주로 동명사(동사인데 명사로 됨) 형태로 10번 정도 사용되고 있습니다. “사실 그리스도께서는 …고난을 겪으신 것입니다. 그러나 육으로는 살해되셨지만 영으로는 다시 생명을 받으셨습니다.”(1베드 3,18) 다시 말하면 육으로는 살해되어 더 이상 볼 수 없지만, 영으로는 “생명이 만들어지신 분”(ζωοποιηθεις)으로 살아계시고 활동하신다는 뜻입니다.
[2024년 6월 2일(나해) 지극히 거룩하신 그리스도의 성체 성혈 대축일 가톨릭마산 8면, 황봉철 베드로 신부(성사전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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