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구약] 성지에서 만나는 성경 말씀: 모압 여자 룻의 속량과 수숙혼(嫂叔婚)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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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주호식 | 작성일2024-08-13 | 조회수86 | 추천수0 | |
[성지에서 만나는 성경 말씀] 모압 여자 룻의 속량과 수숙혼(嫂叔婚)
룻기는 구약성경에서 드물게 이방인의 이름을 제목으로 붙인 책입니다. 여기엔 베들레헴의 기근을 피하여 모압으로 이주했다가 남편과 두 아들을 잃은 나오미와, 귀향하는 시어머니 나오미를 끝까지 버리지 않고 봉양한 모압 며느리 룻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이 둘의 운명을 반전시켜준 배경은 옛 이스라엘에 존재했던 속량 제도(레위 25,23-31)입니다. 속량 제도는 ‘백성이 가난 등의 이유로 가산을 팔았어도 언제든 되살 수 있다.’는 원칙을 골자로 합니다. 본인에게 능력이 없으면 형제나 친족이 대신 대가를 치러줄 수 있었는데요, 이런 대속자를 성경에서는 “구원자”(레위 25,25; 룻 4,3-4 등)라고 칭합니다. 룻은 나오미의 조언에 따라 위험을 무릅쓰고 보아즈 곁으로 가 “어르신은 저의 구원자이십니다.”(룻 3,9)라며 자신을 거두어 줄 것을 청하지요.
룻기에는 나오미의 밭과 룻의 수숙혼이 모두 속량의 대상으로 나오지만(4,3-6), 사실 수숙혼이 속량 문제와 관련되는 건 룻기에만 등장합니다. 밭의 속량은 레위 25,23-31에 규정되어 있으나, 과부의 속량에 관한 율법은 오경에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신명 25,5-10의 수숙혼도 방계 친족이 아닌 직계 형제 간에 적용되던 율법입니다. 그런데 룻에게는 보아즈보다 “더 가까운 구원자”(룻 3,12)가 있었기에, 율법에 의하면 보아즈는 첫 번째 대상자가 아니었습니다. 또한 고인의 형제가 수숙혼을 거절한다 해서 그 의무가 다음 형제나 친족에게 자연스레 넘어갈 수 있는 것도 아니었습니다. 창세 38장에 등장하는 유다의 며느리 타마르의 경우는 직계 형제들이 차례로 수숙혼을 한 뒤 세상을 떠났기에 그 의무가 계속 넘어갔던 것입니다. 만약 그 의무가 한 형제의 거절로 다음 형제나 친족에게 쉽게 넘어갈 수 있는 거였다면, 그 의무를 거절한 형제에게 침을 뱉어 수치를 주게 한 신명 25,9의 조치는 애초에 정당한 게 아니었을 터입니다. 더구나 신명 25,7에 따르면, 과부가 나서서 시숙의 의무 이행을 촉구할 수 있는데, 룻기에서는 룻도 나오미도 보아즈에게 그런 촉구를 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이들은 ‘밤을 틈 타’ 보아즈의 구원자 권리 수행을 유도하는데, 보아즈가 스스로 그리 하리라고는 기대하기 어려운 상황이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보아즈보다 우선권을 지녔던 다른 친족은 밭의 속량과 함께 ‘과부의 속량’, 곧 룻을 구원해야 한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었습니다(룻 4,5-6).
그러므로 룻의 수숙혼은, 전적으로 유다인 시어머니와 이방인 며느리 사이에 형성된 특별한 고부 관계에 감동한 보아즈가 자비심으로 행한 결과입니다. 보아즈는 밭의 속량권에 룻의 수숙혼이 포함되지 않는다는 걸 알면서도, 친족으로서 도덕적 의무감에 이 둘을 묶은 듯합니다. 말하자면, 법적 강제력은 없지만 그 임무를 행하여 고인이 된 나오미의 남편 엘리멜렉의 이름을 잇고 나오미에게는 며느리와 자손을, 룻에게는 보호막을 제공해주려 한 겁니다.
이렇게 상대방에 대한 연민과 자비의 마음은 사랑으로 발전하여 이후 룻과 보아즈의 후손은 다윗 가문으로 이어졌습니다. 그리고 결국엔 죽음보다 강한 사랑으로 인류를 위하여 스스로 희생하신 구세주의 계보로 성화되기에 이르렀습니다.
* 김명숙 소피아 - 예루살렘 히브리대학교 박사, 광주가톨릭대학교 구약학 교수, 전 한님성서연구소 수석연구원. 저서 「에제키엘서」 「예레미야서 1-25장」 「예레미야서 26-52장」 「구세사 산책: 에덴에서 약속의 땅까지」
[2024년 8월 11일(나해) 연중 제19주일 의정부주보 2면, 김명숙 소피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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