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이집트로 팔려간 요셉/창세기 37장 25절~36절에 나오는 이스마엘인들과 미디안 상인들 | 카테고리 | 성경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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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박윤식 | 작성일2020-08-08 | 조회수4,361 | 추천수0 | 신고 |
4. 이집트로 팔려간 요셉 ■ 이집트로 팔려간 요셉[4] / 요셉[4] / 창세기 성조사[89] 형제들의 이런 음모를 알 리가 없는 요셉이 형들에게 다가갔다. 이윽고 요셉이 형들에게 다다르자, 그들은 그의 저고리, 곧 그가 입고 있던 긴 저고리를 벗기고, 그를 잡아 구덩이에 던졌다. 그것은 물이 없는 빈 구덩이였다. 다행히 건기인 여름인지라 메말랐다. 그의 긴 저고리 옷은 야곱의 요셉 사랑이 배어 있는 각기 다른 색깔의 여러 천으로 만들어져, 긴 소매가 달려 있었고 형제들의 증오의 대상이었던 바로 그 옷이었다(37,3-4).
아무튼 르우벤의 의견대로 요셉은 목숨만은 건질 수 있었다. 동생을 죽음의 구덩이로 내민 형들은 앉아서 태연히 빵을 먹는다. 어쩌면 그것은 요셉이 아버지에게서 가져온 빵인지도 모른다. 어떻게 동생을 구덩이에 던져놓고는 능청맞게 빵이 입으로 들어갈까? 모르긴 몰라도 요셉의 살려달라는 애절한 소리가 그들의 귓전에 수도 없이 분명히 들렸으리라. 그런데도 그들은 형제간의 최소한의 정에도 아랑곳없이 그들만의 배를 채웠다. 훗날 형들이 곡식을 사러 이집트로 갔을 때, 그들이 재상이 된 요셉 앞에서 자기들끼리 주고받는 대화에서도 요셉의 그 절규의 외침이 형들의 뇌리에 그대로 박혀 있었다. ‘그들이 서로 말하였다. “그래, 우리가 아우의 일로 죗값을 받는 것이 틀림없어. 그 애가 우리에게 살려 달라고 애원할 때, 우리는 그 고통을 보면서도 들어 주지 않았지. 그래서 이제 이런 괴로움이 우리에게 닥친 거야.”(42,21)’ 바로 그때 그들이 눈을 들어 보니, 길앗에서 오는 이스마엘인들의 대상이 보였다. 그들은 여러 낙타에 향고무와 유향과 반일향을 싣고, 이집트로 내려가는 길이었다. 이스마엘인들은 아브라함의 소실 하가르의 아들이자 파란 광야에서 살기 시작한 이스마엘의 후손들이다. 그들은 길앗 산악 지역에서 이즈르엘 평야로 내려가는 중이었다. 길앗 산악 지방은 향료의 산지로 유명하며, 야곱이 하란을 외숙 라반 몰래 빠져나올 때 그가 머물면서 쫓아온 외숙과 담판을 벌인 곳이기도 하다(31,25). 그때 유다가 형제들에게 말하였다. “우리가 동생을 죽이고 그 아이의 피를 덮는다고 해서, 우리에게 무슨 이득이 있겠느냐? 자, 그 아이를 이스마엘인들에게 팔아 버리고, 우리는 그 아이에게 손을 대지 말자. 그래도 그 아이는 우리 아우고 우리 살붙이가 아니냐?” 이번에는 유다가 나서서 요셉을 죽이지는 말잔다. 대신 이집트로 장사하러 가는 저들에게 팔아버리자는 거다. 그때까지만 해도 그들은 맏형인 르우벤이 죽이지는 말자는 말을 아예 근성으로 듣고는 죽일 마음이었던 것 같다. 그것은 ‘동생을 죽인 후 피를 덮는다고 해서 별로 이득도 없다,’라는 유다의 말에서도 분명히 그들의 의도를 알 수가 있다. 그만큼 르우벤의 말발은 어쩌면 좀 체면이 떨어진 것 같다. 형제간에도 그 서열이 이제 새롭게 재편되는 과정인지도 모른다. 그들은 유다의 제안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그들이 이렇게 동생 요셉의 처리 방안을 끝내려는 바로 그때에, 미디안 상인들이 지나가다 요셉을 구덩이에서 끌어내었다. 아마도 그들은 형들이 듣고도 모른 체하는 요셉의 비명을 들었으리라. 드디어 요셉을 두고 그의 형들과 상인들 간에는 추잡스러운 거래를 하였을 게다. 이 얼마나 비정한 상거래일까? 창세기 성조사의 여러 행적을 묵상하면서 이러한 상상하기도 싫은 야만적인 장면을 묵상하자니 인간의 추악한 정도가 어디까지 드러날지 몸이 떨릴 지경이다. 몇 번이나 읽고 또 읽은 이 대목을 그저 아무 생각도 없이 일고 지나쳤다는 게 의아하기까지 하다. 이런 거래는 사람을 사고파는 거다. 그것도 한집에 사는 동생을 낯선 상인에게 팔겠다는 거다. 형들을 보기 위해 아버지 심부름으로 달려 온 피붙이 동생 아닌가? 그것도 동생을 그들 사이에 두고 흥정을 하는 것이다. 요셉은 형들에게 제발 살려달라고 빌고 또 빌며 애걸복걸했으리라. 그러나 이미 형들의 완고한 마음을 꺾지를 못했다. 요셉은 두고두고 이 형들의 야만적이고 비정한 행동을 깊이깊이 새기고 또 새겼을 게다. 그들은 결국 요셉을 이스마엘인들에게 은전 스무 닢에 팔아넘겼다. 우리는 여기에서 우리가 간과한 성경 속의 주요 등장인물에 대해 살펴볼 필요가 있다. 길앗에서 오는 이스마엘인들의 대상, 지나가다 요셉을 구덩이에서 끌어낸 미디안 상인들, 그리고 요셉의 형들이다. 과연 요셉을 두고 누구들이 흥정했을까? 성경은, ‘그들은 결국 요셉을 이스마엘인들에게 은전 스무 닢에 팔아넘겼다(37,28ㄴ). 그렇다면 여기서 ’그들은‘ 누구를 지칭할까? 요셉의 형들일까, 요셉을 구덩이에서 끌어낸 미디안 상인들일까? 이 부분 성경의 구조상으로 보면, 미디안 상인들이 구덩이의 요셉을 끌어내어 지나가는 이스마엘인 대상에게 은전 스무 닢에 팔아넘겼다고 봐야 한다. 그러나 여기에 해석상의 지나쳐서는 안 되는 오류가 있다는 거다. 그것은 요셉을 이집트로 데리고 가서는 파라오의 내신으로 경호대장인 포티파르에게 팔아넘긴 이들은 미디안들이라는 거다(37,36). 이스마엘인들이 아니라는 거다. 그리고 미디안이들이 이스마엘인들에게 팔았다면, 동생의 몸값인 ’은전 스무 닢‘을 알 수 없었다는 거다. 더구나 형들이 직접 미디안이들에게 거래하지 않았다면, 다시 돌아올지도 모를 동생을 감히 죽었다고 야곱에게 이야기할 수도 없었다는 게 중론이다. 그래서 대부분의 성경학자는 이 점에서 처음부터 형들이 빵을 먹다가 본 상인들은 이스마엘인들이 아닌, 미디안들이라는 거다. 아무튼 요셉은 은전 스무 닢에 팔려 이집트로 떠나는 신세가 되었다. 어쩌면 죽음을 면한 다행스러운 결과일지도 모른다. 그의 꿈대로라면 언젠가 그 야속한 형들이 찾아와 큰절을 할 날이 있을 게다. 요셉의 먼 훗날 여정이 하느님께서 꿈으로 미리 보여 준 것이라면, 우리는 그저 기억하시는 하느님, 약속을 지키시는 하느님으로 다시금 다짐할 기회를 얻게 될 수도. 아무 영문도 모르고 어디 다녀온 맏형 르우벤이 구덩이로 돌아와 보니, 그 구덩이 안에 요셉이 없었다. 그는 자기의 옷을 찢고, 형제들에게 돌아가 말하였다. “그 애가 없어졌다. 난, 나는 어디로 가야 한단 말이냐?” [계속] [참조] : 이어서 '형들의 거짓말과 야곱의 애도‘ / 요셉[4] 가 소개될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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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마엘,미디안,요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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