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성경] 성경, 다시 보기: 비천함=낮음 / 낮추심=겸손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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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주호식 | 작성일2024-10-09 | 조회수41 | 추천수0 | |
[성경, 다시 보기] 비천함=낮음 / 낮추심=겸손
레지오 단원들이 매일 같이 기도하는 “까떼나”에 “마리아의 노래”(루카 1,46-55)인 “마니피캇”이 있습니다. 그 가사 가운데 “그분께서 당신 종의 비천함을 굽어보셨기 때문입니다”라는 말씀에서 “그분”은 하느님을, “당신 종”은 성모 마리아를 가리키는 것인데, 그러면 성모님께서 비천(卑賤)하다는 것은 무슨 의미일까요? 사전에는 “지위나 신분이 낮고 천하다”라고 합니다. 그런데 신약성경에서 성모 마리아의 지위나 신분에 대해 낮고 천하다는 것이 분명히 드러나고 있을까요? 목수인 요셉과 약혼하였고 혼전에 임신하신 것이 밝혀져 요셉이 파혼하려고 한 얘기와 아기를 낳은 후 요셉과 함께 이집트로 피난 간 얘기, 그리고 그 후 헤로데가 죽자 귀국하여 갈릴래아 나자렛으로 자리를 잡아 살았기에 예수님을 “나자렛 예수”라고 불렸다는 정도의 얘기밖에 우리는 모릅니다.
“비천하다”라는 이 단어는 신약성경에서 명사로는(ταπεινοσις-타페이노시스) 4번, “비천함” “굴욕” 등으로, 형용사로는(ταπεινος-타페이노스) 8번, “겸손” “비천한” 등으로, 동사로는(ταπεινοω-타페이노오) 11번 나오는데, 주로 “낮추다” 수동태인 “낮아지다”로 번역되고 있습니다.
이 세 단어의 쓰임새가 일관되지 않고 다양해서 우리의 이해를 흐리게 하고 있습니다.
성모 마리아에 대해서는 그분의 “비천함”(명사로 쓰임)을 언급하고(루카 1,48), 예수님께 대해서는 “겸손하신”(형용사로 쓰임) 분으로(마태 11,29):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내 멍에를 메고 나에게 배워라. 그리고 동사로 사용된 필리 2,8에서는 “당신 자신을 낮추시어 죽음에 이르기까지 십자가 죽음에 이르기까지 순종하셨습니다”
여기까지는 새 번역인 “성경”안에서 살펴 보았지만, 이제 다른 번역본을 살펴 보겠습니다.
- 루카 1,48의 명사인 타페이노시스(ταπεινοσις)의 우리말 번역은(가톨릭, 개신교) 대부분 “비천함”으로, 그런데 영어나 독어 번역에서는 “낮추심” “낮은 처지”로, 일어와 중국번역에서도 주로 신분의 비천함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 마태 11,29의 형용사인 타페이노스(ταπεινος)는 우리말 번역, 영어나 독어 번역 그리고 일어나 중국어 번역들은 모두 “겸손하다”로 하고 있습니다.
- 필립 2,8의 동사인 타페이노오(ταπεινοω)는 모두(우리말, 영어, 독어, 일어, 중국어) “낮추다”라는 단어로 번역하고 있답니다. 여기서 알 수 있는 것은 “자신을 낮춘다”는 것이 겸손을 의미한다면, 이 겸손은 순종을 의미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이제 종합해 보겠습니다.
루카 1,48의 마리아의 “타페이노시스”는 성모님의 당시의 신분이나 지위를 나타내는 것이 아니라, 그 앞의 이야기인 예수님의 탄생 예고와(루카 1,26-38) 연결하여 생각해 보아야 할 것입니다.
가브리엘 천사가 마리아에게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라고 하자, 마리아는 처녀로서 남자를 알지 못하는데 어떻게 아기를 낳을 수 있냐고 반문하였다. 그러자 그 천사는 하느님께서 하시는 일이라고 알려주었고, 마리아는 이내 순종하는 말투로 대답합니다. “저는 주님의 종입니다 말씀하신 대로 저에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루카 1,38) 이는 자신의 주장이나 자존심을 내세우는 것이 아니고, 천사의 말씀에 순종하는 자세를 취하고 있습니다. 부언하면 자신을 낮추는 자세이니 겸손한 자세이고 순종하는 자세입니다. 예수님께서 자신을 낮추시어 죽음에 이르기까지, 십자가 죽음에 이르기까지 순종하셨다는(필리 2,8 참조) 자세와 같은 모습입니다.
그래서 루카 1,48의 “타페이노시스”는 신분의 낮음을 뜻하는 “비천함”이라고 할 것이 아니라 자신의 처신이나 태도를 드러내는 “낮추심”으로, 즉 순종의 자세로 알아들어야 할 것입니다.
[2024년 10월 6일(나해) 연중 제27주일 가톨릭마산 8면, 황봉철 베드로 신부(성사전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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