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신약] 마르코와 함께 떠나는 복음 여행: 그러자 곧 닭이 두 번째 울었다(마르 14,72)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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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주호식 | 작성일2024-10-23 | 조회수65 | 추천수0 | |
[마르코와 함께 떠나는 복음 여행] 그러자 곧 닭이 두 번째 울었다(마르 14,72)
두려움에 뒷걸음질 치더니 갑자기 허둥지둥 사람들 사이를 헤집고 도망을 칩니다. ‘내가 도대체 무슨 짓을 한 거지.’ 베드로의 뒤통수로 마치 그를 비웃는 듯 울어대는 새벽닭의 소리. 행여 누가 볼까 봐 자신도 모르게 어두움에 몸을 숨깁니다. 하지만 그때부터 내면의 소리가 그를 짓누릅니다.
“스승님과 함께 죽는 한이 있더라도, 저는 결코 스승님을 모른다고 하지 않겠습니다.”(마르 14,31) 다른 제자들에게 보란 듯이 두 손을 불끈 쥐고서 스승님을 배신하는 일은 절대 없을 것이라 맹세합니다. 그런데… 스승님을 모른다고, 그것도 세 번씩이나 모른다고… 그렇게 스승님을 버렸습니다.
순간, 사람들 틈에 섞여 있다가 갑자기 나타나 예수님께 입을 맞추던 유다 이스카리옷의 모습이 떠오릅니다. ‘그래, 그 녀석이 스승님을 배반한 거야. 그놈이 스승님을 팔아넘긴 거라고!’ 유다의 가증스러운 모습에 화가 났습니다. 이 모든 일은 다 유다 때문이었습니다. 유다만 아니었다면, 스승님은 잡혀가지 않으셨을 것입니다. 하지만, 도망쳤습니다. 수석 사제들과 율법학자들이 보낸 사람들이 무서워, 베드로는 스승님을 내버려두고 도망쳤습니다.
얼마나 달려온 것일까요. 예수님을 처음 만났던 순간이 떠오릅니다. 지금껏 들어보지 못한 권위 있는 말씀. 그분의 놀라운 기적들을 보고 두려움에 사로잡혀 소리를 지르고 눈물을 흘리는 수많은 사람들의 얼굴이 스쳐 지나갑니다. 그렇게 3년이나 되는 시간을 함께 보내면서 스승님이야말로 진정 이스라엘 민족이 그토록 기다려온 메시아라 믿었는데.
베드로는 자신이 왜 도망쳤는지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다시 몸을 일으켜 스승님을 찾아 나섰습니다. 많은 사람이 대사제의 저택에 모여 있는 것으로 보아 분명 스승님이 그곳에 계시리라 생각하고 저택의 안뜰로 들어섭니다. 하지만, 자신을 향한 사람들의 따가운 시선과 수군거림으로 몸을 돌리고 맙니다. “당신도 저 나자렛 사람 예수와 함께 있던 사람이지요?”(마르 14,67) 한 여자가 그에게 따져 묻습니다. 그녀 뒤에 서 있는 사람들과도 눈이 마주쳤습니다. 두려웠습니다. 그분을 가장 가까이 모셨던 터라, 사람들이 자신이 누구인지 이미 잘 알 것이란 생각에 온몸은 굳어지고 입술은 바짝 타들어 갑니다. 아니라고, 난 아니라고. 하지만, 사람들이 점점 몰려듭니다. 이러다가는 모든 게 들통이 나버려 자신도 잡혀갈 것이라는 생각에 사로잡힙니다. 사람들의 집요한 추궁에 그렇게 베드로는 세 번씩이나 스승님을 모른다고 소리를 지르며 대사제의 집을 뛰쳐나옵니다. 그 순간 닭이 웁니다.
“닭이 두 번 울기 전에 너는 세 번이나 나를 모른다고 할 것이다.”(마르 14,30) 내가 고통받을까 두려워, 사람들로부터 온갖 비난과 모욕을 당할까 겁이나 스승님을 모른다고. 주님의 수난 앞에 우리는 누구입니까? 베드로가 흘린 눈물은 우리도 흘려야 할 진정한 회개의 눈물이 아닐까요?
[2024년 10월 20일(나해) 연중 제29주일(민족들의 복음화를 위한 미사 · 전교 주일) 서울주보 4면, 이영제 요셉 신부(문화홍보국 부국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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