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Re:예수님의 탄생은 자연계시에 포함되나요? | 카테고리 | 천주교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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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하경호 | 작성일2022-05-20 | 조회수1,539 | 추천수0 | 신고 |
교리공부를 하다가 계시 부분에 궁금함이 올라와서요^^ . 예수 그리스도는 '공적계시'라고 하는데, 또한 자연계시(창조된 자연 세계와 우리의 이성을 사용함으로써 우리에게 드러나는 것)에도 포함되는 건가요? 아니면 공적계시로 구분해야 하는건지 알고 싶습니다. .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포함됩니다. 다만 예수님은 창조주시기에 문이 열리고 보여야 합니다. 더불어 자연계시론은 불교쪽에 가깝기도 합니다. . 천주교인은 하느님 말씀을 믿고 닮고 따르는 계시종교인으로 불교인은 깨달음(붓다=요사팟이란 속담도 있음)으로 구하는 자연종교인이기 때문입니다. 성모님께서 천주성부의 딸이며 어머니이신 안의 해 또는 달빛 사랑으로 묵상과 궤를 같이하시기에 관세음(觀世音)으로 앉은자리가 꽃자리이기 때문입니다. . 그렇다면 계시라는 것은 무얼까요? 지금처럼 말하기 5점 듣기 10점 쓰기 15점 활주로 지남과 외우기 100점 전하기 200점 실천하기 300점 날개 펴는 실천인데 여기에 지상 길(시노드) 하나로 나타날 것입니다. 공적계시는 믿을교리라고도 하는데 이는 성모님 손잡고 성부께 가는 성자의 마음으로 임할 때 삼위일체 하나 되는 한마음 한 몸 성사의 사적 계시들 하나 되는 거룩한 주님의 침묵에 안기는 강물같은 평화의 침묵으로 홀로이 머물며 다른 사람이 되어 나가는 것으로 말을 말씀으로 사를 공으로 진화시켜주시는 성령의 힘같은 것입니다. 이때의 어머니같은 바다 마음에 홀딩들도 흐르는 물처럼 결코 뒤돌아보지 않으며 다음 일과 손잡고 행해질 때 우리는 더욱 행복해집니다. 혹자는 이때에 하느님을 본 사람은 누구나 죽는다고 했는데 이는 두려움이나 혼란을 야기하는 언어가 아닙니다. 어차피 죽는다는 말씀으로 사도신경에도 열 두 제자가 뿅!하고 승천하며 짠!하고 부활하신다는 계시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 공적계시와 사적계시의 예를 든다면 레지오 마리애(성모님의 군대)와 레지오 크리스티(그리스도의 병사)의 인사, 정보, 작전, 군수에도 나타날 수 있겠는데 두 팀 역시 성모자 지간으로 천주교인은 다윈의 진화론과 사제의 창조론에서도 비교적 자유롭습니다. 이는 자유시급 가요 등을 통해서도 여인들의 청음과 남성들의 시음을 통한 시청각 계시로도 접할 수 있고 가곡의 서정시들과 시편을 주로 부르는 성가의 순수시 또한 삼위일체 여정으로 부르심을 경험하는 것과도 같은 순리입니다. 계시라는 것은 부름으로서 부르심을 만나고 함께 부르시고 다시 부르며 함께 쉬는 것으로 평생 공부라는 인생에도 보석처럼 빛나는 보물같은 말씀이지요. . 이에 지혜 자매님도 준성사와 성사 마라톤 반환점을 돌 때 하늘 은행 적립된 기도생활과 공부생활과 봉사생활과 성사생활이 함께하는 세속 아닌 그분의 부활을 믿는 속지 공동체 생활에서 지금 원하는 나와 재회 할텐 대(과거형은 '데'를 미래형은 '대'로 표기함도 이정표로 수많은 시가 담겨있기에 지혜님도 경건한 시인입니다.) 그만큼 사람과 사람의 깊은 너와 깊은 나의 살아있는 대화를 나누는 것입니다. . 흰 눈 속 빨간 꽃 아름다움을 보며 뽐내고 있는 저 튤립마저 아름답다는 후배셨던 이태석 신부님 추모시를 작시한 어느 수도자의 고백처럼 육신의 기쁨으로 회복되는 영혼의 기쁨으로 더욱 아름다워진다는 이야기지요. 이는 계시를 통한 영의 소중함을 누리며 육도 다시 미소짓게 만드는 제자들의 도리로서 이로써(써는 기구격, 서는 자격격) 과정의 불가는 비움, 그리스도가는 채움이는 계시를 전하게 됩니다. 보호본능 여심의 귀소본능 남자들 심리를 통한 사회 현상들을 통해서도 어렵지 않게 계시로 이어지고 받을텐데 우리가 기도할 때 하느님 현존을 느끼고자 먼저 평화를 누림으로서 보여지는 말씀입니다. . 이상 지론은 생각으로는 절대적인 사랑이시고 자비로우신 하느님을 의심하지 않았지만 등잔 밑이 어두워 말과 행위로는 내가 신천지 사람인지 섞갈리는 시행착오의 고백이기도 한데 우리가 자기 머리 깎기 어렵듯 고백과 고해의 차이, 선교와 전교의 차이, 흑백 웨딩드레스와 턱시도가 왜 하늘과 땅 잇는 십자가의 사다리 무지개로 이어지는지 등에 계시라는 숨겨진 보물찾기 여정 이어지고 있는데 빛과 어둠 모두를 사랑할 수 있는 준비 순간 만으로도 계시라는 영원이 담겨있을 것입니다. . 이에 오늘의 계시로 즐기는 오후 되시고 필자는 지니가 알람으로 부르기에 일단 수다를 여기서 멈추고 나중 자연 계시가 왜 성모님 몫이고 공적 계시가 왜 성부 말씀인지 자매님 질문 취지에 맞춰 보완토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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