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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성경] 성경 입문15-16: 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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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주호식 쪽지 캡슐 작성일2025-11-05 조회수301 추천수0

[성경 입문] (15) 필사 ①

 

 

한글날이면 종종 들리는 말 가운데 하나는 ‘한글과 한국어는 다름’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한국어, 한국말은 한반도에서 통용되는 언어를 말하며, 한글은 그 한국어를 시각화해서 표현하기 위해 고안해 낸 문자 체계를 가리킵니다. 문자의 발명은 인류 문명을 획기적으로 발전시킨 대전환의 발판이 되었습니다. 말이 일회적이고 휘발성이 강한 반면, 문자는 그 말을 저장하고 전파할 수 있는 최고의 수단이었습니다. 시청각 정보를 녹음이나 녹화를 통해 더욱 생생하게 저장, 공유할 수 있게 만들어 준 현대의 전자 혁명 이전, 글은 생각과 말을 전달하는 가장 효율적인 수단이었습니다. 문자를 쓰고 읽는 과정을 통해 다른 이와 생각을 공유할 수 있게 됨으로써 시공간의 제약을 뛰어넘는 소통이 가능하게 되었습니다.

 

한 공동체에서 정경으로 받아들여진 글들은 중요한 전승의 매개체가 되었고, 같은 신앙을 공유하는 사람들에게 보편적이고 권위있는 기준으로 자리잡게 됩니다. 그러나 문제는 이렇게 문자화된 ‘보편적 기준’도 물리적 한계를 지녔다는 점입니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문서들이 낡고, 훼손되는 것을 피할 수는 없습니다.

 

오래된 글자는 희미해지고, 글자를 담고 있는 소재 역시 낡고 닳아서, 오래될수록 식별하기 어려운 지경에 이르게 됩니다. 정보의 보관과 소통의 도구로서의 기능에도 유효기간이 있었던 셈입니다. 돌이나 금속, 도기에 새겨 넣은 문자들은 훨씬 오래 지속되지만, 파피루스나 양피지, 섬유와 같은 고대의 소재들뿐 아니라 현대에도 가장 널리 통용되는 종이에 이르기까지 문자를 담고 있는 재료들은 상대적으로 내구성이 떨어집니다. 대신에 펜이나 붓에 잉크나 먹물을 묻혀 문자를 기록하는 것은 정이나 철필로 돌이나 쇠에 새기는 것보다는 훨씬 수월한 장점이 있었습니다. 필사본의 재료는 점차 파피루스에서 양피지로 변화하는데 처음에는 두루마리 형태가 일반적이었으나 오늘날 책의 모양인 낱장을 겹쳐 묶은 코덱스(codex) 형태가 보편화됩니다.

 

유효기간이 지나 문서로서의 기능이 현저히 떨어진 기록들은 보다 선명한 기록으로 옮겨 보존할 필요가 생깁니다. 중요한 것은 글의 내용입니다. 글을 담는 재료는 새것이어야 하지만 글의 내용은 옛 것을 지켜내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그 글에 담긴 권위가 훼손됩니다. 그 권위를 만들어낸 것은 개인의 능력이 아니라 오랜 시간을 통해 축적된 공동체의 신앙경험이었기 때문입니다.

 

구약성경의 경우 코덱스 형태 이전, 두루마리 형태의 필사본은 오른손으로 두루마리를 붙들고 왼손으로 펼쳐 읽습니다. 근동의 문자들은 대체로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기록하기 때문에 글의 진행 방향도 오른쪽에서 왼쪽을 향해갑니다. 보통 한번 읽을 때 40-50cm 정도의 넓이로 펼쳐 읽게 되는데 그렇게 펼쳐진 두루마리에는 대략 10-12cm 넓이의 3단 기록이 시야에 들어오게 됩니다.

 

두루마리의 높이는 30-40cm로 위아래에 3-4cm 정도의 여백을 제외하면 대략 한 단에 35-45행 정도를 기록할 수 있었습니다. 보통 하나의 문학 작품은 하나의 두루마리에 기록되었는데 쿰란의 대이사야서 두루마리의 경우 7.34m의 길이에 이사야서 전체의 내용이 필사되었습니다. 그러나 규모가 큰 작품들은 여러 두루마리로 나누어 기록하기도 합니다. 토라(율법서)가 다섯 권으로 구분되는 이유도 하나의 두루마리로 사용하기에는 효용성이 떨어지기 때문일 것입니다. 원하는 대목을 찾아 읽으려면 오른손으로 돌려 감아가며 왼손으로 펼쳐야 하는데, 이런 방식으로 사용하다 보면 그만큼 잘 마모되어 자주 새로운 필사본을 만들어야 하는 번거로움을 피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2025년 11월 2일(다해) 죽은 모든 이를 기억하는 위령의 날 전주주보 숲정이 3면, 이정석 라파엘 신부(전주가톨릭신학원)]

 

 

[성경 입문] (16) 필사 ②

 

 

문자의 사용은 의미의 전달과 보존이라는 측면에서 문명의 발달에 기여한 바가 큽니다. 여전히 문자와 문서의 주된 쓰임은 이 두 가지 중요한 목적을 수행합니다. 거꾸로 말하면 문장과 문서는 그것으로 표현된 ‘말’을 재생함으로써 공간과 시간의 제약을 극복합니다.

 

무선 통신이 없던 시대, 멀리 떨어져 있는 두 사람 사이의 소통을 상상해 봅시다. 이때 ‘갑’과 ‘을’ 사이에는 다음과 같은 절차가 진행됩니다. 갑은 을에게 하고자 하는 말을 문자로 변환해서 기록하여 송달하고, 을은 갑이 보낸 문서에 쓰인 정보를 읽어내는 과정을 거칩니다. 이 과정을 통해 을은 갑이 자기 앞에서 말을 건넬 때와 마찬가지로 갑이 전달하고자 하는 정보를 받아들이고 해석하고 이해하게 됩니다. 글은 말과는 달라서 동시에 양방향으로 의사소통이 이루어질 수 없는 단점을 지니지만, 보다 정확하고 객관적인 의사소통이 가능합니다. 잘못 듣거나 오해를 살만한 ‘말’(청각정보)을 통한 소통의 한계를 ‘글’(시각정보)로써 상쇄시킬 수 있기 때문입니다. 때문에 모든 공적 소통은 대체로 문서를 통해서 이루어집니다. 의사결정과 실행에 대한 과정을 보다 객관적으로 파악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단점도 있습니다. 말을 통한 소통의 경우, 말하는 사람의 표정과 성량, 소리의 고저장단 등 음성 신호가 지닌 다양한 특성을 통해 말하고자 하는 바가 생생하게 전달되는 반면, 문자는 훨씬 밋밋합니다. 그래서, 자칫 오독을 하게 되는 경우 말로써 전달할 때와는 사뭇 다른 오해를 일으킬 수도 있습니다.

 

기억의 보존이라는 측면에서도 문자 정보인 글은 시간의 장벽을 극복하게 만듭니다. 인간의 기억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흐릿해지게 마련이지만 글로 적어둔 정보는 그러한 시간의 한계를 넘어서게 만들어 줍니다.

 

글이 지닌 여러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고안된 장치가 있습니다. 문장부호가 대표적인 예입니다. 마침표, 쉼표, 따옴표, 느낌표, 물음표 등등의 문장부호 덕분에 독자는 저자가 전달하고자 하는 바를 좀 더 생생하게 재현하며 저자의 의도를 파악할 수 있습니다. 때로는 아무것도 없는 빈 공간 역시 훌륭한 소통의 도구가 됩니다. 띄어쓰기나 줄 바꿈, 혹은 같은 줄 안에서의 긴 여백 등은 소통에 활력을 불어넣습니다. 페이지 전체의 여백 역시 독자의 독서흐름을 돕는 중요한 구성요소입니다. 여백이 좁거나 없으면 그만큼 독자는 독서에 어려움을 격게 됩니다.

 

성경 기록의 역사 속에서도 이러한 문자, 문장, 문서의 특성이 그대로 반영되어 있습니다. 오래된 문서일수록 덜 정교한 체계를 갖추어서 해독에 어려움이 있습니다. 반면에 후대에 필사된 기록일수록 좀 더 발전된 기록 체계를 통해 보다 정확한 정보를 전달하고자 한 흔적들을 발견하게 됩니다. 구약성경의 주된 언어인 히브리어, 아람어 기록의 경우 본래 존재하지 않거나, 부분적으로 존재했던(때로 자음이면서도 모음의 장단을 구별하기 위한 수단으로 쓰인 자음들이 있습니다) 모음체계가 고안된 것이 대표적입니다. 마소라 학자들에 의해 고안된 이러한 기록 체계에는 모음기호뿐 아니라 띄어 읽거나 붙여 읽을 단어들의 조합, 문장 기호나 강세 표시 등, 보다 생생하게 ‘글’로 쓰인 정보를 ‘소리’ 정보인 “하느님의 말씀”으로 재현하고자 했던 전승 전달자들의 노력이 배어 있습니다. 신약의 필사본들 역시 소문자 체계나 띄어쓰기, 문장 기호 등등 시대를 거듭하며 새롭게 고안된 변화들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2026년 1월 4일(가해) 주님 공현 대축일 전주주보 숲정이 3면, 이정석 라파엘 신부(전주가톨릭신학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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