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195답] 더 많은 열매를 | 카테고리 | 성경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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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임용학 | 작성일1999-12-29 | 조회수3,271 | 추천수3 | 신고 |
† 찬미 예수님
무화과나무의 저주가 마지막의 가까움을 예고하는 종말론적인 말이었다는 추측은 가능합니다. 그러나 저는 개인적으로 ’종말’이라는 말을 싫어합니다. 오히려 ’해방’이라는 표현이 더 적절하지 않나 생각합니다. 모세를 따라 홍해를 건널 때의 종말의 두려움보다 해방을 향해 가는 희망과 기쁨, 주님과 함께 그리고 그를 따르는 이들과 함께 하는 기쁨 말입니다.
이 비유에 관한 여러 가지 설이 있습니다만 예수님 비유들의 원래의 의미를 되찾으려고 하면, 무엇보다 분명하게 되는 것이 하나 있습니다. 예수님의 모든 비유는 예수님 자신과 그의 사명에 대해 어떤 태도를 취할 것을 청중에게 강요하고 있습니다. 예수님 비유들은 모두 하느님 나라의 비밀 즉 완성의 시간이 왔음을 의미합니다. 강한 자는 무력하게 되고, 문둥병자들은 깨끗해 지고, 큰 빚은 탕감되고, 잃은 양은 집으로 돌아오게 되며, 아버지집의 문은 열려있고, 가난한 이는 잔치에 초대되는 하느님의 은혜의 시대가 동텄다는 것입니다. 모든 비유의 배후에서 빛나고 있는 구세주가 나타났기 때문입니다.
마르코 복음서에서는 예수님의 무화과나무 저주효과가 즉시 나타나지 않습니다(11,14,20). 그러나 마태오는 효과를 즉시 나타나게 함으로써 이 기적을 인상깊게 만들었습니다. 예수님의 행위는 심술궂고 횡포한 것처럼 보이지만, 구약 예언자들이 자신들의 가르침 일부를 생생하게 상징화한 행위들과 유사한 행위입니다.(에제 12,1-20참조). 이것은 겉으로는 신심이 있어 보여도 좋은 열매(3,10)를 맺지 못하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머지 않아 열매를 맺지 못한 데 대한 벌을 감수해야할 (43절), 심판의 표징이 되고 있습니다. 당황한 제자들의 질문(20절)에 대한 예수님의 대답은 이 기적을 흔들림이 없는 믿음(21-22절)에서 나오는 기도의 힘을 보여 주기 위한 본보기로 만들어 놓고 있습니다.
우리의 믿음은 어떠한 지요? ’사랑은 모든 것을 이겨냅니다’ 하셨기에 불우이웃 돕기 성금 납부로 온갖 생색을 내시지는 않는 지요? ’주일을 거룩하게 지내라’는 계명이 마음에 걸려 어쩔 수 없이 교회에 나가고도 구원받았다고 좋아하시지는 않는지요?
요즘 초미의 관심이 되고 있는 Y2K 문제도 대희년과 관련지어 엉뚱한 생각을 갖게 합니다. 자식의 대학 등록금을 마련하기 위해 빚을 진 우리 서민들과, 가족의 병원비 때문에 급전을 꾸어다 쓴 우리 이웃들과, 딸아이 시집 보내고 지하 전세방으로 이사할 돈 마련하느라 카드대출을 받는 노동자들의 빚이 Y2K로 인해 상환되는 문제가 무화과나무의 비유처럼 발생되기만을 고대해 봅니다.
가진 것을 감추며 열매를 숨기는 나무는 주님의 저주를, 나누어야 할 곳이 너무 많아 아픔을 참고 자꾸만 열매를 만들어 가는 나무는 주님의 축복을 받게 될 것이라는 비유로 묵상해 봤습니다. 주님안에 행복하십시오
참조 : 성서주석 : 성요셉출판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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