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Re:367] 어제나 오늘이나 동일하신 하느님 | 카테고리 | 성경 | ||
---|---|---|---|---|
이전글 | [질문]신:구약 성서의 하느님? | |||
다음글 | 예수님의 조부모? | |||
작성자김경민 | 작성일2000-09-08 | 조회수2,736 | 추천수0 | 신고 |
참으로 많은 사람들이 신약과 구약의 하느님의 모습에서 너무나도 다른 두 분을 보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저 역시 성서를 보면서 이해할 수 없었고, 언젠가 친구 중의 한 명이 저에게 이와 동일한 질문을 한 적이 있습니다.
그러나 결코 신약의 하느님과 구약의 하느님은 서로 다른 모습이 아니며, 하느님의 참 모습은 ’사랑’의 하느님이라는 사실입니다. 그런데 구약에서는 우리가 이 측면을 느끼지 못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신약에서도 구약의 이런 하느님의 모습이 더욱 두려운 모습으로 나타나 있습니다.
십자가의 예수님을 보십니까? 예수님은 하느님이셨으며, 아버지 하느님의 하나밖에 없는 외아들이셨습니다. 그 예수님은 하느님께서 기뻐하시며 사랑하는 자라고 부르신 분입니다. 아브라함에게 이사악이 그러했던 것보다 훨씬 더 예수님은 아버지 하느님의 사랑안에서 영원한 친밀함 가운데 계셨던 분입니다. 그런데 그 예수님을 아버지 하느님께서는 어떻게 하셨습니까? 그 예수님이 우리의 죄악을 모두 짊어지시고 있었기 때문에 아무리 사랑하는 아들이었지만, 조금도 에누리 없이 하느님의 저주를 쏟으셨습니다. 이 얼마나 두려운 모습입니까? 어떻게 그렇게 사랑하는 아들에게 그처럼 두렵게 행하실 수 있겠습니까?
반면에 구약에서 하느님은 얼마나 사랑이 넘치는 분으로 나오시는지요... 에집트에서 탈출한 이스라엘 백성이 광야에서 어떤 패역함을 모세에게 보였습니까? 그들은 하느님이 자신들을 죽이기 위해서 광야로 인도했다고 원망하며, 광야 40년 동안을 순종한 적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에게 하느님이 어떻게 행하셨는지요? 하늘에서 만나를 먹이시며, 때로는 바위를 갈라서 물을 내심으로 이스라엘을 먹이셨습니다. 또한 이스라엘의 왕이었던 아합이 얼마나 하느님과 원수로 행했는지요. 그러나 그가 자신의 죄를 알고, 하느님 앞에서 이를 아뢰자 하느님은 그의 잘못을 눈감아 주셨습니다. 이런 모습이 두려우신 하느님의 모습입니까? 얼마나 사랑에 넘치시는 하느님의 모습인지요...
참으로 저는 구약의 하느님의 모습에서도 두려움을 느끼지만, 십자가에서 자신의 외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벌하시는 하느님의 모습에서 더욱 큰 두려움을 느낍니다.
성서에서 하느님의 모습이 두렵게 보이는 모습들은 대개의 경우 하느님이 죄를 얼마나 미워하시는가를 보여주시기 위함입니다. 하느님은 죄를 조금도 용납하실 수 없으십니다. 우리의 죄 역시 그러합니다. 그러나 우리의 죄가 어떻게 되었습니까? 바로 외아들 예수 그리스도에게 모두 전가되어서 그 분이 하나님의 저주아래로 들어가신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하느님의 사랑입니다. 이제 이 하느님 앞에 두렵고 떨림으로 서는 것이 아니라, 우리를 대신해서 어린 양으로 우리 죄를 담당하신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하느님의 사랑으로 말미암아 하느님 앞에 설 수 있는 것입니다.
성서는 전혀 모순되지 않습니다. 그 모순처럼 보이는 것들이 얼마나 은혜로운 것들인지 모릅니다. 계속적으로 이 하느님 앞에서 엎드려지는 삶을 살기 바랍니다....
ps) 더 알기 원하시는 분은 메일 주시기 바랍니다... 솔직히 이렇게 간단하게 말할 성질의 것은 아니라고 생각이 들지만 간단히 적어 보았습니다. |
||||
태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