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517]에 추가 질문 | 카테고리 | 성경 | ||
---|---|---|---|---|
이전글 | 이전 글이 없습니다. | |||
다음글 | 책갈피 사용법 |1| | |||
작성자김호경 | 작성일2001-04-25 | 조회수2,558 | 추천수3 | 신고 |
+ 찬미 예수님 !!!
흥미있는 질문에 덧붙여 평소에 제가 의문으로 가지고 있었던 몇 가지 질문을 추가로 해봅니다. 무임승차한 것 같아서 대단히 죄송합니다.
1. 하느님의 구원은 결국 인간의 죄 때문이 아닙니까? 하느님의 구원 사업은 결국 죄에 빠진 인간이 그 대상이겠지요. 인간이 죄를 짓게 된 이유를 성서 저자, 특히 야훼스트계 저자는 인간의 "자유의지"에 촛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이 인간의 자유의지가 하느님의 부르심에 응답하게 하면서도, 또 한편으로는 거부하게도 하여 죄의 경향을 지니게 되었고, 마침내 죄(원죄 + 본죄)가 발생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죄에 빠진, 즉 하느님과의 관계가 단절된 인간을 구원하시기 위해 하느님의 구원 의지가 펼쳐집니다. 그런데 짐승에게도 "자유의지"가 있는지요? "자유의지"는 오직 당신이 가장 사랑하시는 피조물인 인간에게만 주신 은총이었습니다. 짐승에게는 이 "자유의지"가 없기 때문에 본능에 따른 행동만을 할 뿐입니다. 따라서 "자유의지"가 없는 짐승에게는 죄에 대한 의식이나 죄를 지을 수 있는 경향, 또 죄 자체가 없다고 볼 수 있는데, 구원의 대상이 되는 죄가 없는 짐승에게 과연 <구원>이라는 낱말이 적용될 수 있겠는지요?
2. 구원과 영혼의 관계는 어떻습니까? 그리스도인들은 인간이 지상에서 생물학적 죽음을 맞이하고 그 육신이 썩어 진흙으로 되돌아 간다고 해도 영혼은 남는다는 믿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종말의 때에 이르러 사람의 아들께서 재림하셔서 인간을 심판하실 때에야 (영적인) 육신의 부활도 일어나겠지만(1고린15,35-58), 그 종말 이전의 구원이란 아무래도 이 영혼에 대한 구원이 될 수 밖에 없으리라 여겨집니다. 그런데 짐승에게는 영혼이 없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다만 짐승에게는 "영혼"(靈魂)이 아니라 "각혼"(覺魂)이 있다고 합니다. 사물에 대한 인식력은 있다는 것이지요. 그렇다면 구원의 대상이 되는 영혼이 없는 짐승에게 과연 <구원>이란 낱말이 적용될 수가 있겠는지요?
3. 성서에서 짐승에 관한 묘사는 어떻습니까? 성서 중에서 하느님과 인간 사이의 계약에 짐승이 참여하는 부분이 몇 군데 나옵니다(창세9,9-17; 에제34,25; 호세2,20). 또한 인간과 짐승들 사이의 밀접한 관계를 강조하는 부분도 있습니다(창세1,28; 2,19-20; 요엘1,18). 그런데 어디를 보아도 짐승이 직접적으로 주인공이 되는 구원의 말씀은 없군요. 당신의 같은 피조물이지만 항상 인간에게 종속된 대상으로만 나타나고 있습니다. 물론 노아의 홍수 이야기에서는 인간과 짐승을 같이 살리시는 하느님의 모습이 등장하기는 합니다. 그러나 아시다시피 창세기의 원역사(태고사) 부분은 성서의 나머지 부분과 같이 실제 역사에 근거한 하느님의 구원 역사가 아니라, 신앙의 선조들이 체험한 하느님에 관한 인식의 일단을 관념적으로 서술한 계시적 구원 역사의 서술입니다. 또한 짐승에 대한 처벌과 구원은 인간에 대한 처벌과 구원에 덧붙여져서 기술되고 있을 뿐 입니다. 오히려 노아의 홍수에 관한 야훼스트계 문헌에서는 각 짐승 1쌍씩만을 살려낸 사제계 문헌과는 달리 홍수 후에 바칠 희생제사의 제물에 사용하기 위하여, 즉 인간의 필요에 의하여 정결한 짐승을 7상씩이나 더 살려두는 의도까지도 드러내고 있습니다(창세8,20-21 참조). 과연 이러한 의도를 지닌 성서의 묘사 속에서 짐승에게 <구원>이란 낱말을 적용시킬 수가 있겠는지요?
4. 구원에 관한 하느님 계시의 대상은 누구입니까? 성서는 인간을 대상으로한 계시의 책입니다. 성령의 감도를 받은 인간이 인간의 언어나 문자로 기록한 책입니다. 그 주제 또한 인간의 구원에 관한 하느님의 구원 역사에 관한 계시라고 할 수 있습니다. 기록된 계시의 대상이 인간인 성서에서 짐승의 <구원>이라는 명제를 쉽게 알아낼 수 있겠는지요? |
||||
태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