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최상위법은 사랑 [Re : 795 ] | 카테고리 | 성경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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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김호경 | 작성일2003-01-29 | 조회수2,049 | 추천수0 | 신고 |
+ 찬미 예수님 !!!
죄에 따른 벌의 3~4대 후손까지의 대물림, 이것이 히브리인의 전통적인 사고방식이었습니다(출애20,5; 민수14,8; 신명5,9; 예레32,8). 그래서 이방인(헬라계) 그리스도인들을 대상으로 저술한 다른 복음서의 병행구(마르15,6-15; 루가23,13-25; 요한18,39-19,16)에는 없지만, 유독 유다계 그리스도인을 대상으로 저술한 마태오 복음서에만 이 문구, 곧 "그 사람의 피에 대한 책임은 우리와 우리 자손들이 지겠습니다."라는 대목이 들어 있습니다. 유다인들은 이 문구의 의미를 충분히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마태오 복음사가가 왜 이 말은 여기에 보충하여 삽입시켰는가에 대한 이유에 대해서 해설서를 찾아 보면 이렇습니다. 기원 후 70년, 로마의 티투스 장군에 의해 예루살렘이 정복되고 성전이 완전히 파괴된 사건을 이미 알고 있었던 복음서 저자는 이 참변을 바로 유다인들이 무죄하신 예수님의 피를 요구한 벌로 인해 하느님께서 유다인들을 버리셨고 (마태21,41.43), 그래서 로마에 의해 예루살렘과 성전이 파괴되었음(마태22,7; 23,38)에 대입하고자 했다는 것입니다. 즉 예수님을 죽인 죄로 유다인들은 벌을 받아 로마에 의해 멸망했음을 상기시키고자 했다는 것입니다. 이는 곧 예수님의 무죄하심을 강조하기 위한 대조적 표현 방법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복음사가가 이 구절에서 말하고자 하는 점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점을 이유로해서 독일의 유다인 학살과 같은 반유다주의 운동을 벌인다는 것은 잘못된 것입니다. 유다인들의 "죄의 대물림"의 개념보다도 더 상위의 하느님 법은 바로 "사랑"이기 때문입니다. 모든 율법과 규정의 최상위의 법이 바로 "사랑"이기 때문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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