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RE:949] 엠마오로 가는 길 | 카테고리 | 성경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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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한시몬 | 작성일2004-04-12 | 조회수5,130 | 추천수0 | 신고 |
주님의 부활을 함께 기뻐합니다.
질의하신 엠마오로 가는 길에서의 예수님과 두 제자들에 관한 성서의 말씀을 살펴 보았습니다. 우선 엠마오로 가는 길의 두 제자가 누구였는지를 아는 것이 좋을 것입니다.
두 제자가 엠마오로 함께 걸어가면서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죽으신 일에 대하여 서로 이야기하고 있었습니다. 그 중 한 사람의 이름만 글레오파로 밝혀진 채 두 명의 제자가 예루살렘에서 엠마오로 가는 도중에 절망만 가득한 상황에서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함께 동행을 하게 된 것은 그들에게 희망을 전하려는 예수님의 마음을 읽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 두 제자 중에 알려진 한 사람의 이름은 글레오파라고 하지만 다른 한 사람은 어디에도 나오지 않습니다. 그래서 성서를 연구해온 신학자들은 그 중의 또 한사람은 우리 자신일 지도 모른다고 나름대로의 신학적 의미를 부여합니다.
루가복음서에 보면 엠마오로 가는 두 제자의 이야기가 나오는 데 주님께서 십자가에 못박혀 돌아가시고 부활하신 사건과 연관하여 자주 쓰이고 있는 이 엠마오는 이스라엘의 어떤 옛 지명의 이름입니다.
루가복음(24, 13-36)은 그 두 사람이 제자들과 함께 있었으며 예수님께서 부활하셨다는 천사들의 말을 여인들을 통해 들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예수님의 죽음으로 실의에 빠진 상황에서 그러한 기쁜 소식도 반신반의합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실의에 빠진 제자들을 위로하고 부활사건을 실재로 보여주기 위하여 엠마오로 가는 두 제자들 앞에 나타나신 것으로 이해합니다. 이 엠마오의 지명은 예루살렘에서 삼십리 (성서 원문인 희랍어에서는 육십 스타디온이라고 말하는데 한 스타디온이 185미터인 것을 고려하면 약 11킬로미터가 됨) 가량 떨어진 곳에 위치한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그러나 엠마오라는 지명도 성서의 다른 어떤 곳에서도 찾아볼 수 없기에 현재 우리는 어디에 위치하는 마을인지 잘 알 수가 없지만 그 장소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예수님께서 부활하시고 엠마오로 가는 길에서 그들과 동행한 사건이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더 중요한 내용인 것입니다. 두 제자는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박혀 돌아가신 사건으로 무척이나 실의에 빠진 상태에서 길을 떠났고, 길을 가는 도중에 자기들도 의식하지 못한 가운데 부활하신 주님과 동행하게 되면서 만나게 된 장소가 바로 이 엠마오라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부활을 믿지 못하는 그들에게 성서 말씀을 인용하여 여러 가지로 설명해 주시기도 하고 날이 어두워졌을 때는 그들과 함께 묵으면서 저녁 식사를 같이 하게 되었는데, 식탁에서 예수님께서는 "빵을 들어 감사의 기도를 드리신 다음 빵을 쪼개어 그들에게 나누어 주셨다"고 루가복음서는 전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러한 엠마오로 가는 길에서 만난 제자들의 이야기가 우리가 참례하는 미사 중의 성찬 전례와 관련지어 전례에서도 자주 이 ’엠마오’란 말을 사용하기도 합니다.
이 엠마오라는 말은 신부님들이 우리들에게 영적 지도를 할 때에도 자주 인용하는 비유로써, 그것은 우리가 신앙생활 가운데 주님을 발견하지 못하는 것은 그 때의 두 사람처럼 주님을 알아 볼 수 있는 영적인 눈을 가지고 있지 못하기 때문이란 식으로 엠마오를 연상시키기도 합니다. 따라서 성서 말씀에 귀를 기울이고 이웃과 우리의 삶을 나눌 때 우리 마음의 눈이 깨끗해져서 형제들 안에 계시는 그분을 알아볼 수 있을 것이라는 가르침으로, 엠마오로 가는 제자들과 예수님의 부활사건과 연관시키면서 우리의 신앙생활에 어떤 영적인 내용을 시사하고 있기도 합니다.
엠마오와 함께 엠마우스란 말도 쓰이는데 이에 대하여도 함께 아시는 것이 좋을 것입니다. ’엠마오’를 라틴어로 표기하면 ’Emmaus’라고 합니다. 따라서 두 단어의 발음 상의 차이지요. 라틴어로는 엠마오, 영어식 발음으로는 엠마우스라고 발음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이 엠마우스란 말은 특별히 신부님들께서 잠시 동안의 휴식을 가지는 휴가를 의미하는 뜻으로도 사용되고 있다고 합니다. 축복의 기간인 부활 휴가 ‘엠마우스’라고 해서 부활을 맞이하는 모든 전례와 행사를 마치고 난 뒤에 지친 심신을 쉬게하는 약간의 휴식 기간 내지는 잠깐 동안의 휴가를 가리켜 ‘엠마오’ 또는 ‘엠마우스’라고 표현하기도 합니다. 그래서 우리 신자들도 어떤 휴가나, 여행, 휴식을 위한 피정이나 청소년 수련 프로그램에서도 이러한 엠마우스란 용어를 사용하기도 합니다.
왜냐하면 제자들은 주님을 잃은 큰 슬픔과 좌절에 빠져있었고 더 이상 아무런 희망이나 기대감도 갖지 못하고 앞으로 살 길을 걱정하며 엠마오를 통하여 고향(?)으로 돌아가고 있을 때에, 예수님께서는 영광스럽게 부활하신 뒤 제자들에게 나타나셔서 부활의 참 기쁨을 알려주셨기 때문에 그들은 부활하신 주님께서 베푸신 참 평화와 위로를 얻었고, 제자들이 체험한 부활의 참 기쁨을 세상 모든 사람에게 전할 용기와 힘을 갖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이런 면에서 본다면 신부들님이나 수도자들의 ‘엠마우스’는 나름대로의 부활 체험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저마다 열심히 준비하고 노력한 끝에 부활을 맞이하지만, 아마도 그들은 지친 몸과 마음으로 주님 부활의 기쁨을 온전히 느낄 수 없을 때 잠시의 휴식으로 부활하신 주님께서 함께하심을 느낄 수 있다면 그것 또한 부활하신 주님의 은총일 것입니다. 부활하신 주님을 만나뵙고 그제서야 부활의 벅찬 감동을 느낄 수 있었던 두 제자들처럼, 미처 깨닫지 못하고 느끼지 못했던 주님 부활의 참 기쁨을 누릴 수 있는 ‘엠마우스’는 신부님들이나 수녀님들에게는 축복의 시간이라는 것입니다.
이상의 내용이 질의하신 엠마오로 가는 길의 예수님과 두 제자에 대하여 어느정도 도움이 되었으라고 믿으며 주님의 말씀을 직접 들으며 이해를 더 넓히기 위하여, ’엠마오로 가는 길에서’란 이 성서구절 루가복음(24, 13-36)을 조용히 읽고 묵상해 보시기를 권고하여 드립니다.
참고로 미사전례와 관련하여 이 엠마오의 이야기에 대한 한 가지 해설 자료를 다른 사이트에서 복사하여 아래에 올려 드리오니 함께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해설 기사)
우리는 루가복음 24장의 ’엠마오로 가는 길에서’란 성서기사를 미사의 순서에 맞추어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물론 이 성서기사가 미사의 형태를 의미하기 위해 씌여진 것은 아니지만 우리는 이 기사에서 미사의 의미를 쉽게 발견할 수 있습니다.
첫째, 우리는 이 기사에서 우리에게 대한 주님의 지극한 사랑을 느끼게 합니다. 주님은 동틀 무렵 여자들에게 나타나신 후, 바로 이어 엠마오로 가는 제자들에게 나타나셔서 당신 자신을 성서의 말씀과 연관시켜 설명해 주시고 빵의 나눔을 통해 깨닫도록 하십니다. 이렇게 아침부터 저녁 늦게까지, 하루 종일, 제자들을 직접 가르쳐주시고 먹여주시면서 키우시느라 애쓰십니다. 똑같이 우리는 십자가상 제사를 기억하고 재현하는 미사 성제를 통해 이 사랑의 절정과 완성을 볼 수 있는 것입니다.
엠마오의 이 기사는 바로 ’왜 예수님이 십자가상에서 돌아가셔야 했는지’ 그리고 ’그렇게 처참하게 돌아가신 의미가 무엇인지’, ’돌아가심으로써 어떤 일이 생기게 되었고,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 ’돌아가신 후 사흘만에 부활하셨다’는 내용을 이해시키고 믿게 하려고 주님께서 직접 제자들에게 설명해 주는 사랑의 수고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이처럼 미사 역시 주님의 십자가상 제사를 전례의 형식으로 기념하고 재현하는 것입니다.
둘째, 제자들은 주님께서 빵을 떼어 나누어 주실 때, 눈이 열려 주님을 알아봅니다. 주님은 빵의 나눔이라는 표징을 통해 자신을 알아보도록 계시하십니다. 우리는 지금 미사 성제(성체성사)를 통해 주님을 만납니다. 엠마오로 가는 길에서 주님은 제자들의 눈을 열어주심으로써 신앙의 신비를 알려주셨습니다. 제자들은 빵의 나눔을 통해 성서에서 언약되고 해석되고 증거되어 우리가 알게 된 주님을 만나게 된 것입니다. 이러한 깨달음과 만남이 바로 미사에서 얻게 되는 생명의 양식이며, 이 생명의 양식이 우리의 힘인 것입니다. 우리는 그 힘으로 세상 속에 살면서도 세상의 흐름에 휘말리지 않고 주님의 가르침을 지키고 따를 수 있게 되고, 거듭 생명의 양식을 얻기 위하여 깨어 기도하면서 미사에 참례함으로써, 우리 삶의 방향과 방법을 교정하고 주님의 안배하심과 보호하심과 이끄심 안에서 주님과 점점 일치되어 갑니다.
셋째, 우리가 주님을 만난다는 표현은 주님을 알아보게 되었다는 사실적인 현상("눈이 열려 예수를 알아보았는데")에 그치지 않고 주님께 대한 ’기억이 나고’, ’생각이 나며’, ’느낌이 들고’ ’깨달음을 얻는다’는 것까지 포함합니다. 또한 우리가 "미사 중에 주님을 만난다!"는 표현 역시 주님과 주님께 대한 직접적인 대면만을 의미하는 것에 그치지 않습니다. 즉, 자신의 현실을 일어난 사건과 현상 그대로만 알고 있는 우리가 그 사건과 현상 너머에 담겨져 있는 의미를 미사를 통해 알게 되었을 뿐더러, 그 깨달음을 지식이나 지적인 흥분에 그치지 않고, 받아 들이며, 믿고, 그것을 실제로 실천하며 살 수 있도록 성체성사를 영함으로써 확고히 심게 됩니다. 성체성사는 바로 십자가상의 제사로서 "하느님이 우리를 사랑하신다는 주님의 말씀이 그대로 주님을 통해 이루어진 사건입니다." 그러므로 미사가 우리 생명의 양식인 것입니다.
이는 바로 ’하느님 아버지께서 우리를 사랑하신다’ 는 사실이, ’주님께서 십자가상 제사를 바치심으로써’ 명백히 드러났고 또 이루어졌다는 사실을 ’성령께서 성체성사(미사)를 통해 일러주시고 심어주셔서 우리를 살리시는’ 생명의 양식입니다. 뿐만 아니라 이런 우리 생명의 양식을 얻게 됨으로써 우리는 신앙의 신비를 살 수 있습니다. 비록 지금은 우리에게 주어진 하느님의 사랑이 우리가 받아들인 만큼밖에 숨쉬지 못하지만, 지속되는 우리의 활동과 미사 참례를 통해 교정되고 다시 심화된 우리의 활동 속에서 완전해 지는 것입니다. "내가 어렸을 때에는 어린이의 말을 하고 어린이의 생각을 하고 어린이의 판단을 했습니다. 그러나 어른이 되어서는 어렸을 때의 것들을 버렸습니다. 우리가 지금은 거울에 비추어 보듯이 희미하게 보지만 그때에 가서는 얼굴을 맞대고 볼 것입니다. 지금은 내가 불완전하게 알 뿐이지만 그때에 가서는 하느님께서 나를 아시듯이 나도 완전하게 알게 될 것입니다."(1고린 13,12)
그러므로 미사는 우리가 주님과 만나고 주님으로부터 힘을 얻는 신앙의 원천이며, 주님은 세상을 하느님 나라로 변화시키는 일을 함께 하자고 미사를 통해 우리를 부르시고 파견하고 계십니다.
(성서 검색 - 루가 24, 13-36 내용입니다)
24. 13바로 그 날 거기 모였던 사람들 중 두 사람이 예루살렘에서 한 삼십 리쯤 떨어진 곳에 있는 엠마오라는 동네로 걸어 가면서 14이 즈음에 일어난 모든 사건에 대하여 말을 주고 받고 있었다. 15그들이 이야기를 나누며 토론하고 있을 때에 예수께서 그들에게 다가 가서 나란히 걸어 가셨다. 16그러나 그들은 눈이 가리워져서 그분이 누구신지 알아 보지 못하였다. 17예수께서 그들에게 "길을 걸으면서 무슨 이야기들을 그렇게 하고 있느냐?" 하고 물으셨다. 그러자 그들은 침통한 표정인 채 걸음을 멈추었다. 18그리고 글레오파라는 사람이 "예루살렘에 머물러 있던 사람으로서 요새 며칠 동안에 거기에서 일어난 일을 모르다니, 그런 사람이 당신 말고 어디 또 있겠습니까?" 하고 말하였다. 19예수께서 "무슨 일이냐?" 하고 물으시자 그들은 이렇게 설명하였다. "나자렛 사람 예수에 관한 일이오. 그분은 하느님과 모든 백성들 앞에서 그 하신 일과 말씀에 큰 능력을 보이신 예언자였습니다. 20그런데 대사제들과 우리 백성의 지도자들이 그분을 관헌에게 넘겨 사형선고를 받아 십자가형을 당하게 하였습니다. 21우리는 그분이야말로 이스라엘을 구원해 주실 분이라고 희망을 걸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분은 이미 처형을 당하셨고, 더구나 그 일이 있은 지도 벌써 사흘째나 됩니다. 22그런데 우리 가운데 몇몇 여인이 우리를 깜짝 놀라게 하였습니다. 그들이 새벽에 무덤을 찾아 가 보았더니 23그분의 시체가 없어졌더랍니다. 그뿐만 아니라 천사들이 나타나 그분은 살아 계시다고 일러 주더라는 것이었습니다. 24그래서 우리 동료 몇 사람이 무덤에 가 보았으나 과연 그 여자들의 말대로였고 그분은 보지 못했습니다." 25그 때에 예수께서 "너희는 어리석기도 하다! 예언자들이 말한 모든 것을 그렇게도 믿기가 어려우냐? 26그리스도는 영광을 차지하기 전에 그런 고난을 겪어야 하는 것이 아니냐?" 27하시며 모세의 율법서와 모든 예언서를 비롯하여 성서 전체에서 당신에 관한 기사를 들어 설명해 주셨다. 28그들이 찾아 가던 동네에 거의 다다랐을 때에 예수께서 더 멀리 가시려는 듯이 보이자 29그들은 "이젠 날도 저물어 저녁이 다 되었으니 여기서 우리와 함께 묵어 가십시오" 하고 붙들었다. 그래서 예수께서 그들과 함께 묵으시려고 집으로 들어 가셨다. 30예수께서 함께 식탁에 앉아 빵을 들어 감사의 기도를 드리신 다음 그것을 떼어 나누어 주셨다. 31그제서야 그들은 눈이 열려 예수를 알아 보았는데 예수의 모습은 이미 사라져서 보이지 않았다. 32그들은 "길에서 그분이 우리에게 말씀하실 때나 성서를 설명해 주실 때에 우리가 얼마나 뜨거운 감동을 느꼈던가!" 하고 서로 말하였다. 33그들은 곧 그 곳을 떠나 예루살렘으로 돌아 갔다. 가 보았더니 거기에 열 한 제자가 다른 사람들과 함께 모여서 34주께서 확실히 다시 살아나셔서 시몬에게 나타나셨다는 말을 하고 있었다. 35그 두 사람도 길에서 당한 일과 빵을 떼어 주실 때에야 비로소 그분이 예수시라는 것을 알아 보게 되었다는 이야기를 들려 주었다. 36그들이 그런 이야기를 하고 있을 때에 예수께서 나타나 그들 가운데 서시며 "너희에게 평화가 있기를!" 하고 말씀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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