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Re:성령칠은 중 의견에대한 성서구절좀 알려주세요 | 카테고리 | 성경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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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이천우 | 작성일2004-06-07 | 조회수2,379 | 추천수0 | 신고 |
견진성사, 성령칠은, 효과, 성령의 성사,7은 견진성사 1. 견진성사의 정의 세례성사, 성체성사와 함께 견진성사는 “그리스도교 입문성사”의 하나이며, 이 입문성사들의 단일성은 지켜져야 한다. 견진성사는 세례 받은 신자가 받는 성사로서, 주교의 안수와 축성 성유의 도유를 통해서 성령의 은혜를 받는 성사이다. 여기서 성령의 은혜란 무엇보다도 세례를 인준하고 세례의 은총을 굳건하게 하는 데 있다. 견진성사는 세례성사의 은총을 완성하기 위해 필요한 성사이다. 견진성사로 신자들은 더욱 완전히 교회에 결합되며 성령의 특별한 능력을 받아 그리스도의 참된 증인으로서 말과 행동으로 신앙을 전파하며 옹호하여야 할 더욱 무거운 책임을 지게 된다. 2. 구원경륜 안에서 본 견진성사 구약성서에서 예언자들은 기다리던 메시아 위에, 그분의 구원 사명을 위해, 주님의 영이 내려오실 것이라고 예고했다. 예수께서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실 때 성령께서 그분 위에 내려오신 것은 그분이 오시기로 되어 있던 바로 그분이며, 하느님의 아들인 메시아라는 징표였다. 성령으로 잉태되신 예수님의 전생애와 사명은 성부께서 그분에게 “아낌없이”(요한 3, 34) 주시는 성령과의 완전한 친교 안에서 실현된다. 그런데 성령의 이 충만함은 오로지 메시아만이 아니라 메시아의 백성 모두에게 전해질 것이었다. 그리스도께서는 성령을 보내시겠다고 여러 번 약속하셨고, 이 약속을 부활날 처음으로 실현하셨고(요한 20, 22), 성령강림일에 더욱 분명하게 실현하셨다. 성령을 충만히 받은 사도들은 “하느님의 위업”(사도 2, 11)을 전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베드로는 성령의 이 주어짐이 메시아 시대의 징표라고 선언한다. 그때 사도들의 설교를 믿고 세례를 받은 사람들은 성령의 선물도 받았다. 그때부터 사도들은, 그리스도의 뜻을 따라, 새 신자들에게 안수하여 세례의 은총을 완성시키는 성령의 특은을 베풀어주었다. 이리하여 히브리서에서 그리스도교 입문의 초보적인 교육 주제들 가운데 세례와 안수의 교리도 언급하게 된 것이다. 가톨릭 전승은 안수를 견진성사의 기원으로 당연히 인정하였으며, 이 견진으로써, 말하자면 성령강림의 은총이 교회 안에 영속되고 있는 것이다. 일찍이 성령의 선물을 더 잘 드러내기 위해 안수에 향유(크리스마 성유)의 도유가 추가되었다. 이 도유는 “기름 부음을 받은 사람”을 의미하는 “그리스도인”이라는 이름을 설명해 준다. 이 이름은 “하느님께서 성령으로 기름 부으신”(사도 10, 38 참조) 분, 바로 그리스도란 분의 이름에서 비롯되었다. 그리고 이 도유 예식은 서방교회와 마찬가지로 동방교회에서도 오늘날까지 계속되고 있다. 그러므로 동방교회에서는 이 성사를 도유성사라고 부르거나 또는 “크리스마 성유”를 의미하는 ‘성유(Myron)’성사라고 부른다. 서방교회에서 사용하는 ‘견진’이라는 이름은 세례를 인준하여 그리스도교 입문을 완성하는 것과 세례의 은총을 굳건하게 하는 것을 함께 시사하는데, 이 둘은 모두 성령의 열매이다. 3. 성령의 성사 견진성사를 집행하는 데는 올리브 기름에 발삼 향료를 섞어서 사용한다. 부득이하면 다른 식물 기름과 향료를 사용해도 괜찮다. 주교는 이 크리스마 성유를 축성할 때에 그 이름이 메시아요, ‘도유 받은 자’인 그리스도에게서 온다는 것을 회상한다. 주교는 견진성사를 받는 사람이 왕적, 사제적, 예언자적 힘을 충족하게 받도록 계속해서 기도한다. 말하자면 그리스도인은 크리스마 성유로써 그리스도화되는 것이다. 견진성사는 성령강림 날에 사도들에게 보내진 성령의 은총을 모든 시대와 모든 장소에 있는 교회에 전파하기 위하여 존재한다. 성령은 그리스도의 선물이다. “나는 아버지께 청하겠습니다. 그러면 아버지께서는 다른 협조자를 여러분에게 붙여 주실 것입니다. 그분은 영원히 여러분과 함께 계실 것입니다. 그분은 진리의 영이십니다…협조자,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 주실 성령께서 모든 것을 여러분에게 가르쳐 주실 것이고 내가 여러분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해주실 것입니다…내가 아버지로부터 여러분에게 보낼 협조자, 곧 아버지로부터 나오는 진리의 영이 오시면 그분은 나에 관한 증언할 것입니다”(여한 14, 16-17). 사도들에게 하신 그리스도의 약속은 성령강림 날에 이루어졌다. “마침내 오순절이 되어 모두 한곳에 같이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하늘에서 세찬 바람이 부는 듯한 소리가 나더니 그들이 앉아 있는 온 집안을 가득 채웠다. 그리고 불같은 혀들이 갈라지면서 그들에게 나타나 각자에게 내려앉았다. 그러나 모두 성령으로 가득 차서 영이 그들에게 일러주는 대로 여러 가지 다른 언어로 말하기 시작하였다”(사도 2, 1-4). 성령께서 오실 때에 신비스러운 바람, 불길 같은 혀, 언어의 은혜, 용감한 선포와 많은 개종 등 경탄스러운 일들이 함께 따라왔다. 그러나 가장 특이한 결과는 놀란 겁쟁이 집단이 주님의 부활에 대해 고무적이고 겁 없는 증인들로 변한 것이다. “그들의 목소리는 온 땅에 퍼졌고, 그들의 말은 이 세상 끝까지 퍼져 나갔다”(로마 10, 18). 견진성사는 사도들과 그 후계자들이 안수와 크리스마 성유를 바름으로써 성령강림 날에 받은 성령의 은총을 모든 교회와 회원들에게 전달하는 성사다. 견진성사는 전세계에 연장되고, 교회 안에서 영구히 재현되는 성령강림이다. 견진성사는 그리스도의 나라와 구원의 메시지를 전파하는 부르심이다. 사정에 의해 교회가 위임을 하면 어느 사제든지 간에 견진성사를 집행할 권한을 받지만, 견진을 줄 특별 권한은 주교에게만 있다. “견진성사의 정상적 집전자는 주교다. 주교 자신이 견진성사를 집전함으로써 성령강림 날의 성령강림을 더욱 명백히 드러낸다. 왜냐하면 사도들이 성령을 가득히 받고 그 성령을 다른 신자들에게 전해 주었기 때문이다. 주교의 집전으로 성령을 받음으로써 견진자들을 교회에 결합시키는 인연이 명백히 드러나고 사람들 사이에서 그리스도를 증거 해야 할 그리스도의 계명도 더욱 명백히 드러난다”(견진성사 예식서 7). 4. 견진예식 견진성사에서 사용하는 재료는 성 목요일에 주교가 축성한 ‘크리스마’라는 성유이다. 크리스마 성유를 바르는 것은 복음에 열렬히 봉사하기 위해 그리스도인의 삶을 강화한다는 의미이다. 성사집전 시초에 성사적 구원 은총의 선물과 과제에 대하여 말하는 하느님의 말씀을 듣게 된다. “왜냐하면 하느님 말씀을 들음으로써 교회의 생활과 세례자와 견진자 각자의 생활에 있어서의 성령의 다양한 활동이 이루어지고 하느님의 뜻을 알게 된다”(견진성사 예식서 13). 강론 중에 집전자는 견진 후보자들과 그들의 부모들과 대부모들, 그리고 공동체 전체에게 견진의 은사와 그 의무에 대해 설교한다. 그 다음 집전자는 견진 후보자들에게 또 부모들과 대부모들도 공동체 앞에서 세례 때에 서약한 그 신앙고백을 각기 인격적으로 따라 하도록 권고한다. 이 고백에는 사탄과 죄악의 포기와 우리가 이미 세례 때에 알고 익힌 삼위일체이신 하느님께 대한 신앙고백이다. 세례의 신앙고백을 갱신하고, 주례자는 견진 받을 사람의 머리에 손을 얹는다. 이는 축복의 의미이다. 주례자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 전능하신 천주여, 여기 있는 교우들을 물과 성령으로 다시 나게 하시고 죄에서 해방시키셨으니 이 교우들에게 빠라클리또 성령을 보내 주시고, 지혜와 깨달음의 성령과 지식과 효경의 성령을 보내 주시며, 주를 두려워하는 경외심의 성령을 보내 주소서”라고 기도한다. 집전자는 크리스마 성유를 견진자의 이마에 십자 표시로 발라 주며 “성령특은의 날인을 받으시오”라고 말한다. 이로써 견진성사가 이루어져서 하느님의 인호가 그들에게 날인되며 성령의 보다 큰 선물에 의해서 그들 안에 하느님의 인호가 새겨진다. 물론 이때도 대부모를 세워야 하며 집전자의 마지막 강복을 받게 된다. 5. 견진성사의 효과 견진성사는 성장을 의미하며, 견진자가 성장하도록 요구하는 계속적인 도전이다. 이러한 성장을 위해서도 생명이 요구되며, 견진자는 은총 상태에 있어야만 한다. 그러나 견진이 순간적인 성장을 가져올 것이라고 기대할 수도 없고 또한 그 자체가 즉각적인 성장을 위한 것도 아니다. 견진은 한 사람에게 한 번만 주어지고, 영구적 결과를 내는 성사 가운데 하나로서 영구적 인호를 준다. 견진성사가 집행될 때에 사용되는 “성령의 은총으로 도장 찍혀지고”라는 말이 그것을 나타낸다. 성바오로가 이 도장에 과하여 말하는 것을 들을 수 있으며, 아래에 인용된 고린토 후서의 말씀이 견진성사에 잘 적용되는 것 같다. “하느님은 우리를 여러분과 함께 그리스도 안으로 이끌어 굳건하게 하시고 또 우리에게 기름을 부어 주셨습니다. 또한 그분은 우리에게 인증의 날인을 하셨고 우리 마음 안에 그 보증으로 영을 주셨습니다”(2고린 1, 21-22). “기름의 향기를 풍기며 주교의 손으로 날인됨으로써 영세자는 지워지지 않는 인호, 즉 주님의 날인을 받고 자신을 그리스도와 닮게 만드시는 성령의 특은과 사람들 사이에서 ‘좋은 향기를’ 풍길 수 있는 은총을 받는다”(견진성사 예식서 9). 1) 성령 안에 성장 성령강림이 부활주일 다음에 오며, 파스카 신비의 결과이듯이 견진성사는 교회와 신자들의 생활 안에 성령강림을 영구화하는 성사다. 성령은 하느님의 유쾌한 선물이며, 그것을 받는 사람은 “성령의 성잔”(1고린 6, 19)이 된다. 사람이 교회에서 떠난다 해도 도장은 남아 있어 항존하는 귀환 초대장이 된다.
한편 성령강림 축일이 전례력의 일부를 완료하고 그 다음 전례력 부분까지 지배하는 것처럼, 성령은 하느님의 이 첫 번째 은총을 받는 사람의 생활을 지배한다. ‘그 신비에서’ 나오는 성장 과정을 성 바오로가 묘사하였다. “하느님께서는 이방인들 가운데 나타난 이 신비의 영광이 얼마나 부요한지 성도들에게 알려주시기를 원하셨습니다…우리는 모든 사람에게 권고하고 지혜를 다해 모든 사람을 가르치면서 그분을 알립니다. 그것은 우리가 모든 사람을 그리스도 안에 완전한 이로 세우기 위함입니다”(골로 1, 27-28). 예수님 자신이 우리의 성장을 요구하신다. 그분은 당신의 가르침을 포도나무, 수확을 내는 씨, 큰 나무가 되는 겨자씨 등에(요한 15, 1-8) 비교하신다. 예수님은 무화과 계절이 아닌데도 열매 없는 무화과 나무를 저주하셔서 사도들을 놀라게 하셨다(마태 25, 26). 달란트에 관한 비유에서도 양식이 다르지만 같은 주장을 하셨다. “악하고 게으른 종아, 너는 내가 심지도 않은 데서 거두고 뿌리지도 않은 데서 모은다는 것을 알고 있었단 말이지?”(마태 25, 26). 그분은 당신 제자들에게 “여러분의 하늘의 아버지께서 완전하신 것같이 여러분도 완전해야 합니다”(마태 5, 48)라고 하셨다. 견진의 인호는 이 도전과 목표를 잊어버리게 놔두지 않는다. 그리스도교적 생활도 하나의 생명이므로 계획대로 진행되지 않는다. 견진성사를 성숙한 투신의 예식으로 보기 어려운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은총은 진정한 성장을 초래하지만, 하느님의 자녀이고 성령의 성전이 의미하는 것을 실현하는 성장은 많은 개인적 요인과 심지어는 영신적 위기의 체험에도 달려 있다. 견진의 은총은 완전한 개인적 실현을 즉각 이루지는 않지만, 그 실현을 도울 수는 있다. 그러나 슬픈 것은 세례를 받고 견진성사까지 받은 사람이 성장하지 못하고 그리스도교적 소명을 지니면서도 평범하게 살아간다는 것이다. 2) 증언과 신앙의 옹호 그리스도 친히 성령의 은총을 그리스도인의 사도적 사명과 연결시키셨다. “여러분은 여러분에게 내릴 성령의 능력을 받아, …땅 끝에 이르기까지 나의 증인들이 될 것입니다”(사도 1, 8). 견진으로써 성령의 이 특수한 힘을 받은 사람은 그리스도의 참된 증인으로서 말과 행동으로 신앙을 전파하며 옹호할 보다 무거운 책임을 지게 된다. 현세에서의 사도적 임무를 위한 평신도의 소명과 지상에 천국을 건설할 평신도의 역할은 견진성사와 관련되어 있다. 평신도는 성령의 힘을 받아 강해졌으며, 주님으로부터 사도직 수행의 사명을 받았다. 6. 견진성사의 필요성 역사적으로 세례와 견진이 그리스도교의 입교성사에 속하고, 견진은 세례의 완성과 확인으로서 세례와 밀접한 연관을 이룬다는 것을 생각한다면 견진성사는 꼭 받아야 한다는 결론이 나온다. 왜냐하면 견진성사를 받지 않고서는 그리스도교에의 입교가 미완성의 상태로 남아 있기 때문이다. 그리스도교에의 입교가 완성되기 위해 다른 말로 하면 신앙 성숙을 위해 견진성사는 분명 큰 의미가 있다. 사람이 살아가는 데에도 신체적, 정신적인 성장이 있듯이 신앙에도 성장이 있다. 비유로 얘기하면 세례를 통해서 신앙의 씨앗이 심어졌고, 그 씨앗은 싹트고 튼튼하게 자라나야 한다. 뿌려진 신앙의 씨가 싹트고 튼튼한 나무로 자라날 수 있도록 돕는 것이 바로 견진성사이다. 혼인성사 때 신랑과 신부는 일생 서로 사랑하고 존경하며 신의를 지키겠다고 약속한다. 그러나 이런 약속은 단 한 번에 끝나는 것이 아니다. 일생 동안 거듭해서 결혼 때의 약속을 확인해야 하고 이에 대한 재결단이 요구된다. 이런 과정 속에서 서로에 대한 사랑, 존경, 신의의 약속이 굳어지고 깊어진다. 마찬가지로 세례성사를 통해 하느님께 신앙의 충실을 약속했지만 우리의 나약함과 소홀함으로 그 약속이 흐지부지되는 경우가 많다. 따라서 견진성사를 통해 세례 때의 결단을 새롭게 하고, 세례성사를 통해 주어진 소중한 은혜를 다시 확인하며 강화한다는 것은 분명 의미가 있는 일이다. 또한 유아세례를 받은 사람들에게 견진성사는 특별한 의미를 지닌다. 즉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신앙을 자신의 신앙으로 받아들이는 결단을 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된다. 7. 성령의 일곱 가지 은혜 슬기 : 구원에 필요한 일에 이끌리어 맛들이게 하는 은혜 의견 : 하느님의 뜻을 따라 마땅히 행해야 할 선과 피해야 할 악을 분별케 하는 은혜 통달 : 지력이 미치는 데까지 믿음의 오묘한 이치를 깨닫게 하는 은혜 굳셈 : 유혹을 이기고 복음의 가르침을 따라 순교까지 할 수 있는 은혜 지식 : 믿어야 할 것과 믿어서는 안 될 것을 분별케 하는 은혜 효경 : 하느님을 참 아버지로 알아 사랑하게 하는 은혜 두려움 : 하느님께 대한 경외심과 죄를 범하여 하느님의 뜻을 거스를까 두려워하게 하는 은혜
슬기 : 이 은사는 하느님과 하느님에 관한 것들을 올바로 판단하고 맛들이며 실천하도록 돕는 은혜이다. 일상 생활의 모든 것을 판단할 때 인간적 판단 기준을 버리고 하느님의 관점에서 보며 판단하게 해 준다. 또 신앙을 실천하도록 해주고 삼위 일체 하느님이 자신 안에 머물러 있음을 체험하게 해주며, 관상과 활동이 조화를 이루도록 해준다. 그리고 이기심 없이 순수한 사랑으로 하느님을 사랑하고 하느님을 위해서라면 무슨 일이라도 하게 해주며 이웃에 대한 사랑을 탁월하게 완성시켜 준다. 즉 경천애인의 덕을 실천하게 해준다. 지혜의 은사로 완성된 애덕은 다른 모든 덕에도 영향을 주어 성덕을 갖추게 하고 오직 하느님의 영광만을 앞세우게 한다. 이 지혜의 은사를 활성하려면 개인의 이익이나 욕구에 의해 사물을 보지말고, 신앙의 가르침과 하느님의 입장에서 모든 사물을 보고 판단하려 해야 한다. 또한 세속적인 눈으로는 어리석게 보일지라도 신앙의 가르침에 따라 행동하는 습관을 길러야 하며, 아무리 선하고 유익한 것이라도 이기적인 마음으로 집착하지 않고 현세의 사물에서 이탈하도록 노력해야 한다. 아울러 영적 위안에 너무 빠지지 않도록 영성 생활을 의지적으로 꾸준히 해나갈 때 지혜의 은사가 활성화된다. 통달 : 이 은사는 계시 진리를 직관적으로 깊이 통찰하여 잘 깨닫도록 도와준다. 이 은사로 인간의 지성은 성령의 비춤을 받아 계시 진리를 직관하고, 초자연적인 목적에 관련되는 자연 진리도 쉽게 깨닫게 된다. 결국 통달의 은사는 신앙의 덕을 완성시키는 결과를 가져온다. 이 은사는 여러 가지 효과를 주는데, 성서의 숨은 의미를 밝혀 주고 교리를 깊이 깨닫도록 도와주며, 상징과 표상의 의미를 밝혀 주고 상징과 감각적 표지 안에 감추어진 영적 실재를 보게 함으로써 전례에 대한 이해와 깊은 존경과 경의를 표하게 된다. 그리고 기도와 묵상 중에 성령의 인도를 받아 진리를 깨닫게 해주고 성숙한 신앙인에게 신앙을 통해 세상의 일을 보게 해주며 믿음과 행동이 일치된 삶을 살게 해준다. 그래서 성 토마스 아퀴나스는 “영의 눈이 통달의 은혜로 정화 될 때 지상에서도 어느 정도 하느님을 뵈올 수 있다.”고 하였다. 통달의 은사를 활성화하려면 오순절 성령 강림을 위해 사도들이 성모 마리아와 함께 기도하였던 것처럼 신자들도 성령으로 더욱 충만해지도록 성모 마리아와 함께 기도해야 한다. 또한 성령이 이끄는 대로 은총에 충실히 협력하는 생활을 하고 덕행의 실천에 힘써야 한다. 그리고 내적 고요함 속에서 생활하며 영혼과 육체의 정결에 힘써야 한다.
의견 : 이 은사는 초자연적 궁극 목적인 하느님과 구원과 개인의 성화라는 관점에서 신자들이 마땅히 해야 할 것과 피해야 할 것이 무엇인지를 올바로 판단하게 하는 초자연적인 은혜이다 이 은혜는 거짓 양심에서 신자들을 보호해 주므로 영성 지도자들과 고해 사제들에게 특별히 필요하다. 이 은혜는 인간적으로 문제를 해결하기 어려울 때나 예상하지 못했던 위급한 상황에서 성령의 인도를 받아 올바로 판단하게 하며 그 상황과 문제들을 해결하도록 도와 준다. 또 이 은혜는 남을 지도하고 일깨우는 데 가장 적합한 방법을 깨우쳐 주므로 장상과 지도자 또는 부모의 역할을 잘하도록 도와 준다. 그리고 합법적인 장상들에 대한 순종심을 키워 준다. 이 은사가 활성화되도록 하려면 먼저 깊은 겸손으로 자신의 나약함이나 무지를 인식하고 성령에게 빛과 안도를 청해야 한다. 또한 하느님의 목소리를 알아들을 수 있는 은혜를 청하고 성령의 인도함을 유순함과 인내로써 기다려야 하며, 성령의 감도에 순종하는 습관을 길러야 한다. 지식 : 인간의 지성이 성령의 작용으로 영원한 생명이나 완덕에 관련된 피조물에 대하여 합당하게 판단하는 초자연적인 습성이 지식의 은사이다. 따라서 이 은사는 피조물과 초자연적인 궁극 목적 사이의 연관성을 성령의 빛으로 올바로 판단할 수 있는 초자연적 지식이나 신적 직관에 관한 것이다. 그러므로 지식의 은사를 받은 사람은 성령의 특별한 비춤을 받아 초자연적인 목적과 관련되는 피조물에 관해 올바로 판단하고, 피조물을 하느님과의 일치의 도구로 사용하게 된다. 이 은사는 피조물의 공허함을 깨닫고 창조주 하느님께로 마음을 향하게 해주며 피조물에서 이탈하여 피조물을 거룩하게 사랑하는 법을 알려 준다. 또 믿어야 할 것과 믿지 말아야 할 것에 대한 확신을 주고 영혼이 처한 상태를 신속하고 분명하게 알게 하며, 영생에 관한 최선의 처신 방법을 알게 해준다. 그래서 설교자는 청중들에게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또 무엇을 강조해야 할지 알게 되고, 영적 지도자는 지도 받는 영혼들의 상태와 그 영혼들이 영적으로 필요로 하는 것과 결점을 고치는 방법 등을 알게 된다. 그리고 장상은 수하 사람을 다스리는 방법을 알게 되고 부모는 올바른 자녀 교육 방법을 알게 된다. 또 지식의 은사는 선악을 쉽게 식별하여 잘못을 뉘우치고 영혼에 해가 되는 것을 멀리하며 피조물을 적절하고 거룩하게 사용하는 방법을 가르쳐 준다. 지식의 은사를 활성화하려면 피조물의 헛됨을 자주 묵상하여 창조주와 피조물의 관계를 확실하게 깨닫고 영적인 진보에 힘써야 한다. 또 모든 사건 안에서 하느님의 섭리를 보며 피조물 안에 머무르지 않고 모든 피조물을 통해서 하느님께로 향하는 습관을 길러야 하며, 피조물 안에서 참 행복을 찾으려는 세속의 정신을 멀리하고 순박한 마음을 길러야 한다. 굳셈 : 이 은사는 신앙 생활 중에 일어날지도 모르는 어떤 위험이나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다는 확고 부동한 신뢰심을 지니고 덕을 실천하도록 성령이 영혼에게 주는 힘이다. 이 은사가 작용할 때 신자들은 성령으로부터 직접 나오는 내적 충동에 의해 행동하게 되고 다른 덕행들도 영웅적으로 실천할 수 있는 힘을 지니게 된다. 따라서 어떤 덕행이건 그것이 완성되려면 용기의 은사가 필요하고, 은총의 상태에 항구하기 위해서도 이 은사가 필요하다. 용기의 은사는 하느님을 섬기는 데 있어서 미지근함을 극복하고 열렬히 하느님을 섬기게 하며, 유혹이나 장애물을 극복할 수 있는 용기를 주고 덕의 실천에도 놀라운 활기를 준다. 또한 이 은사는 인내심을 갖고 고통을 갖가지 위험이나 적을 만났을 때 담대하고 굳세게 처신하도록 해주고 크고 작은 일들을 충실히 영웅적으로 수행하게 한다. 용기의 은사를 활성화하려면 아무리 싫증이 나더라도 자신의 의무를 충실히 이행하는 습관을 기르면서 성인들처럼 영웅적인 행위를 할 수 있도록 용기의 은사를 간청해야 한다. 또한 자신으로부터 십자가를 치워 주도록 청하지 말고 오히려 수난과 부활의 신비를 묵상하면서 십자가를 지고 감으로써 이를 극복할 힘과 용기를 주시도록 청해야 한다. 그리고 자발적으로 고행을 실천하여 십자가의 가르침을 깨닫고 사욕편정을 이기도록 힘써야 한다. 효경 : 이 은사는 성화 은총과 함께 주입되는 초자연적인 습성으로서 성령의 활동을 통하여 하느님 아버지께 대한 자녀다운 사랑과 하느님의 자녀인 모든 사람들에 대한 보편적인 사랑의 정을 의지 안에 불러일으키는 은혜이다. 이 은혜는 의덕 및 의덕과 관련된 덕행들을 닦도록 해주고 모든 사물 안에 감추어진 신앙적인 의미를 발견하게 해준다. 이 은사는 천상 아버지께 대한 자녀다운 사랑과 신뢰심을 영혼 안에 불어넣으며 삼위 일체 안에 내재하는 신적 부성에 대한 형언할 수 없는 신비를 흠숭하게 한다. 또 이 은사는 모든 사람을 하느님의 자녀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형제 자매로 보고 사랑하게 해준다. 그리하여 선교 사업이나 자선 사업에 힘쓰게 해주며, 한걸음 더 나아가 성모 마리아를 모든 이의 어머니로 공경하고 장상들을 합당하게 예우하고 존경하게 한다. 효경의 은사를 활성화하려면 하느님 아버지에 대한 자녀다운 신뢰심과 의탁하는 정신을 길러야 하며, 모든 사람이 하느님의 자녀이고 우리는 다 같은 형제 자매임을 의식하면서 이웃을 대하도록 힘써야 한다. 그리고 우주 만물은 하느님의 작품이므로 존중하고 잘 사용하며 자연 보호와 환경에도 관심을 갖고 하느님의 창조물의 사랑하고 잘 돌보아야 한다. 두려워함 : 하느님에 대한 두려워함의 은사는 하느님께 대한 경외심으로 죄를 피하게 하여 영생에 대한 희망을 갖게 하는 은혜이다. 이 은사는 인간에게 일어나는 각종 감각적인 무절제를 피하게 하여 정욕을 제어하는 절제의 덕을 실천하게 한다. 두려워함의 은사에서 뜻하는 두려움은 노예적인 두려움이나 지옥 벌에 대한 두려움이 아니라 하느님의 자녀로서 하느님의 마음을 상하게 하지 않고자 하는 경외심에서 나온 자녀다운 두려움이다. 이 은사는 수덕 생활에 힘쓰는 이들에게는 감각적인 욕구를 능동적으로 정화시키는 데 큰 도움을 주고, 수동적인 정화의 길도 마련해 준다. 이 은사는 하느님의 거룩함과 순수함에 대한 생생한 인식을 주어 모든 방법으로 하느님의 영광만을 드러내게 하고, 피조물에 대한 애착을 끊게하고 쾌락에 대한 관심을 잃게 하며 하느님에 대한 것으로만 기쁨과 만족을 찾게 한다. 그리고 하느님을 하느님으로 섬기게 하는 이 은사는 하느님 앞에 겸손한 자세를 취하고 진심으로 무릎을 꿇게 하며 겸손의 높은 단계에 이르게 한다. 아울러 은총으로 사는 영성 생활의 아름다움을 깊이 깨닫게 하고 절제의 덕을 완성시킴으로써 순결의 덕을 닦게 한다. 두려워함의 은사를 활성화하려면 모든 것을 영혼의 구원과 하느님의 영광만을 위하여 열심히 하도록 해야 한다. 또한 감각을 적절히 제어하면서 절제의 삶을 살도록 노력하고 하느님께 대한 사랑을 행동으로 옮겨야 한다. 그리고 고독과 잠심을 사랑하며 묵상 기도를 열심히 해야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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