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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Re: 천주교회(로마가톨릭교회)가 정통 가톨릭이 아니다??(1) 카테고리 | 성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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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조정제 쪽지 캡슐 작성일2005-01-01 조회수1,175 추천수0 신고

아래 글은 개신교 자유게시판에서 가톨릭교회가 정통 가톨릭이 아니고 정교회나 개신교가 정통 가톨릭이라는 주장에 한 하나 반박한 것입니다.

 

질문의 범위가 너무 커서 특정 개신교인들이 님의 질문과 비슷한 것들을 가지고 공격한 것들을 추려서 올려드리겠습니다.   

 

 

들꽃 wild306@catholic.or.kr

  104

 

  Dr.Oh™ 님의 덧글에 대한 소고(보충)


Dr.Oh™님께 우선 평화를 빕니다.^^

제 글에 대한 님의
덧글을 덧글로 해명하고자 하였으나
이왕이면 공개적으로 답변을 하여 다른 분들도 함께 고찰하여 보심이 나아 보여 덧글을 옮겨 옵니다.

님의 글을 하나 하나 보고자합니다,

+++++++++++++++++++++++
허허...;; 잠시 딴지는 아니지만..글에 이의가 있어서 그러는데요...
(방금 읽어보니 이곳님이 올리신 글에도 얘기가 있습니다만 다이제스트 본으로 정리해서 말씀드리죠) 분명 일반적인 개신교에서 사용하는 사도신경에는 "거룩한 공회, 즉 Holy Catholic Church"라는 말이 등장합니다..
그럼 그것이 곧 로마 가톨릭을 위시로한 모든 교회를 말하는가? 아니오...틀리셨습니다~ 논지전개에는 동의합니다만(가톨릭과 개신교는 하나의 목표를 지향한다는 점에서 형제이죠- 세부사항이 다를지라도..)
그러나.. 거기에서 말하는 Catholic은 로마 가톨릭이 아닙니다.. 아시다시피, 초대에 지중해권에 대주교가 있는 대교회가 몇개 있습니다 로마, 콘스탄티노플, 예루살렘, 안티오크, 알렉산드리아(이게 다죠 아마?) 원래 각각의 교회는 동등한 위치에 있었고 그 교회를 Catholic 교회라 칭합니다.
그러던중 로마의 대주교가 교황을 자칭하면서 다른 교회 위에 군림하려 했고 그 시점에서 이미 로마 가톨릭교회는 Catholic이라는 의미를 스스로 상실합니다..
앤티오크, 예루살렘, 알렉산드리아의 교회는 시간이 흘러서 이슬람에 점령당했구요 (그 와중에 8C 콘스탄티누스 기진장 조작 문제가 발생했죠)
++++++++++++++++++

형제님의 윗글의 첫 진술에 대해서는 저도 별 이의는 없습니다.^^
제가 뉴조게시판에다가
가톨릭교회의 지체임을 부정하는 일부 개신교도들을 향해서
<로마가톨릭만 가톨릭인가?>라는 형태의 글을 게시 한적도 있듯 말입니다.^^

참고로,
기독교의 교회를 가톨릭교회라 처음으로 사용한 사람은 성 이레네오 주교라는,
(100년~105년사이)에 로마에서 "짐승 밥"으로 순교하신 안티오키아(안디옥)교회의 3대 주교셨는데,
그 분의 일곱편지 중 “스미나르교회에 보내는 편지”에 나오는 표현입니다.

<주교가 있는 곳에 예수 그리스도의 가톨릭교회교회가 있다>

당대는 지역주의 교회였으며
(지금도 가톨릭이나 정교회 등 고대교회들에게는 당연한 일입니다만),
4개의 교회를 중심으로 성장하였습니다.

즉 로마교회, 알렉산드리아교회, 안티오키아(안디옥)교회, 예루살렘교회 등이었지요.

물론 기타 지역에도 소규모 교회가 성장하고 있었겠지만 역사 안에 들어와 성장한 초대교회들은 대충 위와 같습니다.

이들 4개 교회는 지역교회므로 자치적으로 성장 발전하고 있었습니다만,
교회안에 이단설이니 기타 교회 행정문제 등에 이견이 있으면
서로 모여서 함께 논의하고 토의하면서 사도들로부터 전해받은 공통된 신앙을 지켜나갔습니다.

이견이나 문제점등이 특정 지역안에만 생겼을 경우는 그 지역교회 자체의 교회회의(시노드)를 열어 해결하고,
그러한 문제가 전체교회의 신앙문제, 행정사항이라면
전체 교회의 지도자(주교) 혹은 지도자(주교)가 보낸 대리자<사절>등이 모여 오랫동안 검토하고 논의하여 교회안에서 일치된 대응 방향을 잡습니다.
이를 세계공의회라 합니다.

초기 공의회는
로마황제가 먼저 요청을 하였습니다.
로마황제는 제국안에서 정치적인 일 뿐 아니라
종교의 일까지 간섭을 하였는바,
하여 로마제국안에서 종교적(기독교안에서)인 문제로 시끄러울 때는
공의회 소집을 교회에 요청을 하였고,
또한 교회는 검토 후 특정 지역을 설정하여 그 지역에서 전체 주교들이 모여 회의를 하게 되지요.

이러한 교회회의는 로마 교회의 주교의 동의나 추인이 있어야 (세계)공의회로 인정이 되었습니다
로마교회의 주교는
처음부터 다른 전체 교회들 안에서 <맏형>의 역할을 인정 받았습니다.
그 이유는,
사도 바울로와 베드로가 로마에서 순교를 하셨고
특히 베드로의 계승자가 로마교회의 주교로서 로마교회를 치리하셨기 때문입니다.

주후 30년대~100년 사이의 인물인
로마교회의 3대 주교(교황)이신 <클레멘스>는
고린토교회의 분열을 질책하면서
전체교회 안에서 일치를 누리도록 권고하고 경고하기도 하였습니다.
(로마의 성 클레멘스의 서신에서)

로마 교회는 처음부터 위의 4대교회에서
서열 1위의 교회로 내려왔으며 그 다음 서열은 알렉산드리아 교회, 그 다음은 항상 알렉산드리아와 신학적으로 경쟁하였던 안티오키아 교회
(초대교회 이후의 신학의 역사는 알렉산드리아교회 학파와 안티오키아교회학파 사이의 경쟁과 애증의 역사이기도 하답니다.)
두 교회는 성장과 전체 교회 안의 서열을 위하여^^서로 경쟁관계였습니다.
4위 교회는 예루살렘 교회였구요.

이러한 질서는 ^^
Dr.Oh™님의
지적과는 달리

로마교회가 이들 전체교회에서 이탈해서
로마교회가 "가톨릭교회의 보편성을 잃은 것"이 아니라^^
(완전히 특정 정교회의 주장이군요^^)

로마황제가
로마제국의 320년 전후에 수도를 로마에서 <콘스탄티노플=콘스탄티누스황제의 도시>로 천도를 한 후부터 균열이 갑니다.^^

황제는 제국의 새로운 수도 자신이 거쳐하는 도시(콘스탄티노폴리스=콘스탄티노플)의 교회가 지금까지는 "이름도 성"도 없었지만^^
이제는,
황제의 도시의 교회답게
황제처럼 웅대하고 화려하며 권위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였습니다.

하여 로마황제는 불법을 저지르고자 합니다.

니체아 공의회 이후 삼위일체에 대한 논쟁이 잠잠해 지는 듯 하였으나,
그 이후 로마황제는
교회에서 단죄된 "아리우스" 파들을 지지하였고,
정통 신앙자인 "아타나시우스"를 박해하고자 합니다.
아타나시우스는 로마교회의 주교에게로 피신을 합니다만, 여의치 않습니다.

교회는 381년에
재연된 삼위일체 논쟁을 마감시키기위해서 <콘스탄티노플>에서 공의회를 엽니다.
이 회의에서 아리우스파들은 거듭 단죄되었고,
로마교회를 중심으로한 알렉산드리아 등 서방교회에서 주로 통용되어 온 <신앙신조>를 선언합니다.
이것이 기독교의 근본 신앙이 고백되어 있는 <니케아-콘스탄티노플신조>입니다.

황제는 이러한 신앙신조 고백 후
교회의 규범을 정하는 행정사항에 대한 논의를 하는 회기에서,
기습적으로
<콘스탄티노플 교회는 황제의 교회답게 전체 교회의 서열 안에서 로마교회 다음으로 즉 서열 2위로 한다>라는 조항을 물리적으로 통과시켰습니다.

전체 교회는 황제의 폭행에 벌집을 터트린 듯 반발을 하였으나 무위로 끝이 났습니다.

로마교회의 주교(교황)은 이 "콘스탄티노플 공의회"를 공의회로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하여 이 교회회의는 유야무야 끝이 났습니다.

이때부터 콘스탄티노플교회는 점차 황제의 힘을 근거로 머리를 쳐 들기 시작합니다.^^

그런데^^
로마교회가 가톨릭교회를 이탈하였다니요^^~~@@
좀 더 보자구요^^

451년 로마교회의 주교(교황)는
주 예수 그리스도의 본성에 대하여 엉뚱한 주장을 하는 이단에 대하여
전체 교회가 같은 목소리를 내어야 한다고 생각하였습니다.

하여 451년 칼케톤에서 공의회를 소집하고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과 인성에 대한 신조를 고백합니다.
이것이 칼케톤 신경입니다.

칼케톤 신경은
에페소 공의회에서 다루어진 <예수님의 신성과 인성>문제를 거듭 확인한 것이기에
에페소 공의회에서 거론된 신앙조항과 거의 같습니다.

(개신교들도 칼케톤 신경을 모두 고벡한다고 합니다만^^조민경님의 덧글에서의 지적처럼,
그 내용은 수록하지 않드라고여^^
그러나 장로교 통합은 공식적으로 이형기 교수<장신대>의 번역을 통해 칼케톤 신경 전문을 번역하여 장로교 통합의 신조임을 분명히 하드라구요^^
그러나 일부 개신교 종파에서는 칼케톤 신조를 믿는다고만 하였지
그 번역문 은 소개를하지 않드라구요^^
이런 면에서
장로교 통합은 다른 개신교들보다 정직한 교단이고 자기 정체성을 분명히 하는 장로교로 보입니다.)

그러나 대부분 개신교단들도 그들 홈페이지에는 칼케톤신조와 에페소 신조 모두 신조로 믿는다고 고백은 합니다.^^(신조문의 내용 소개는 없어도^^)

이 칼케톤 공의회에서
두 번째 콘스탄티노플에서 열린 교회회의를
<제2차 공의회>로 인정을 해 주었으며
<니케아 콘스탄티노플 신경>을 교회의 신앙신조로 산언합니다.

이런 후
교회 행정 규범을 다루는 회의에 또다시,
로마 황제가 도둑처럼 군사들을 회의장 안팎에 배치한 후 물리적으로 제안한
<<전범 제28조>>를
황제의 어용주교들(콘스탄티노플 측)이 통해서 강제로 통과시킵니다.^^

전범 제28조란???

=========>콘스탄티노플교회는
황제의 도시의 교회로서
전체 교회안에서 로마교회 다음으로 제2위의 서열로 두며 특히,
로마제국의 동방지역에서 콘스탄티노플 교회 총대주교는 "다른 지역의 주교를 서임"할 수 있는 권한이 있다

라는 것입니다.

전체 교회는 다시 발칵 뒤잡어 졌습니다.
로마교회(가톨릭교회=천주교회)는 오늘날까지 이 전범28조를 공식적으로 승인하지 않고 있습니다.

로마교회의 주교는
로마황제의 박해를 더욱 더 받게 되었고
콘스탄티노플 교회는 기승을 부리며
전체교회안에서 자기들이 교회를 지배하고자 로마교회에 도전을 시작하게 됩니다.

이때부터 로마교회와 콘스탄티노플 교회 사이에는 불목이 생기는 겁니다.^^

그러나 로마교회의 주교 즉 교황의 권위는
450년 이후

아시아와 전 유럽을 휩쓸은 훈족 등의 침략을 두 번이나
로마황제 대신
로마교회의 주교(교황)가 맨손으로 막아 내어
서 유럽 민중들에서의 받게되는 교황의 신망은
이제는 로마황제 따위는 아뭇거도 아니게 되었습니다.

이 사건들은
교황이라는 직무를 전체 유럽에서
확고하게 신망을 받고
교만한 황제의 권력보다 고결하게 각인시켜준 일대의 사건들입니다.

이러한 와중에 이슬람이 강성해 져서
알렉산드리아, 안티오키아, 예루살렘의 교회들은 거의 멸망하게 되었습니다.
이러자
칼케톤 공의회에서 불법으로 획득한
전범 제28조 사항을 근거로
콘스탄티노플의 총대주교는
그러한 지역에 로미제국의 군사력에 의하여
자기 영향이 미치는 주교들을 보냅니다.

동방의 교회들은
이슬람교도에 의해 망하게 된 후 완전히 콘스탄티노플 교회의 영향안으로 들어간게 되었던 것이지요.^^(아직 동로마제국은 망하지 않았으니까)

전체 가톨릭교회는 이제는 크게 두가지로 나누어져 보입니다.

서방교회의 주축인 로마교회와,
동방 지역을 불법에 의하여 총 관할하게 된 콘스탄티노플 교회.

하여 Dr.Oh™님의
말씀 로마교회가 전체 가톨릭을 이탈하였다는 말은^^
정교 연합의 말같지도 않은 ^^일방적인 주장일 뿐
전혀 진실이 아닙니다.

그러한 것을 주장하려면
381년,
451년의 전범 28조가 반드시 해명되어야 하겠기 때문입니다.

정교회 홈페이지를 보면
Dr.Oh™님과 같은 주장은 있지만
이들 교회들은
문제의 핵심에 있는 <전범 28조>조에 대해서는

꿀먹은 벙어리처럼 시침이를 딱 떼며 가만히 있드라구요@@~~.

그 후 로마교회에 대한
콘스틴티노플 교회의 총대주교의 도전과 도발이 심해지자,
일부 서방 신자들이 <위조문서>를 만들어 콘스탄티노플에 야유를 보내지만
그런 것 때문에 로마교회의 수위권이 있거나 없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위에서 본 약사에는 로마교회의 주교(교황)의 수위성이 전체교회안에서 발휘되고 있음이 들어가 있습니다.

+++++++++++++++++
<<1054년에 성상숭배 논쟁으로 인해 동서교회는 완전히 분열하죠>>
++++++++++++++++++

대개의 개신교인들은 이렇게 말하지만^^
그것도 사실이 아닙니다.
(저는 도대체 그렇게 주장하는 그 근거를 모르겠드라구요^^)

1054년 교회의 대이교-교회분열은 <성화상 논쟁>과는 "전혀" 관계가 없답니다.^^^^
성화상 논쟁은 700년도 중반에 일어난 것으로서,
서방교회와 동방교회간의 논쟁이 아니라^^
동방 교회 안에서 이슬람의 식민을 받는 일부 동방 지역과 그 지역을 지지하여 정치적 영향을 늘리려는 황제와 황제의 권력에 맞선 동방 교회 지역의 수도회와 교회지도자 간의 논쟁이었답니다.
로마황제의 권유로 인하여
결국 로마교회가 개입하였고
로마는 동방 교회와 함께 황제파와 논쟁으로 싸웠으며^^교회파가 이긴 사건입니다.
이때 열린 공의회를 제2차 니케아공의회라 합니다.

그러므로 위의 말도 사실이 아님을 확인해 드립니다.^^

1054년의 교회 이교(분열)는 니케아콘스탄티노플 신조의 고백 문제와
로마주교(교황)이 로마제국의 황제대신 프랑크 왕을 황제로 대관시킨 문제

이 사건은 로마황제에게 예속되어 있던 콘스탄티노플 교회의 극렬한 반감을 샀습니다 
콘스탄티노플 교회는 로마교회가 황제를 두명이나 세운다며 극렬하게 로마교회를 비난하였습니다.^^
==========>자기들만 황제를 이용할 수 있다는 것인가요^^

그리고 풍습과 언어, 신학을 사색하는 방법 차이등등과 감정문제들이 엉키고 설킨 가운데
교황의 사절단(움베르토 추기경)은
지 주제 모르고^^ 즉
콘스탄티노플 총대주교와 불목한 여러가지 일을 평화롭게 논의하라는 임무를 받고 갔는데 그 총대주교와 언쟁을 벌인 후
"총대주교가 막간다" 하여
그 총대주교를 <파문> 하고 되 돌아왔습니다.^^
그러나 그 당시에 교황은 "서거" 중 이었습니다

파문 당한 총대주교는 가만히 있겠나여^^'얼마후 그 사절대표인 흅베르또 추기경을 향해서 같은 파문장을 날렸지요^^그해가 1054년도이고 이때부터 교회는 서목해 졌으며 결국 교회는 동서로 분열되어 오늘에 이릅니다만,


1966년 로마교황 바오로 6세와 콘스탄티노플 총대주교 아테나고라스는 서로 파문을 풀고 형제 교회로서 서로 화해를 하게되었습니다.

이 정도만 하고~~

++++++++++++++
<<그리고 교황권 강화가 가속되어 여러 사건이 발생하지 않습니까...
그러기를 수백년 많은 이들이 종교개혁을 시도했고
결국 루터에 이르러서 은 로마카톨릭으로부터 완전 분리되었습니다.>>
+++++++++++++++++

루터에 의해서 완전 분리된 게 아니라^^,
루터 등은 애당초
교회를 벗어나고자 하지 읺았답니다.^^
그의 동료
멜랑히톤 역시 교회안에 머무르고자 백방 노력을 하였지요.

루터는 후에는
감정이 악화되어 교회를 이탈해 보고자 하였는지 몰라도,
그의 대지라 멜링히톤은 끝까지 교회안에 남아 있고자 합니다.
멜랑히톤이 작성하고 루터파에 의해 공인된 <아우구스부르크신조>는 가톨릭교회의 신앙과 대동소이합니다.

교회로부터 완전한 이탈을 원했던 자는
이단자 <쯔빙글리>였지요^^
호전적이고
무대포롤 막나갔던 이자는
개혁을
"전쟁을 통해서" 하고자 하였나 봅니다.
결국은 제세례파와 전쟁에서 싸우다 죽었다더군요^^
이런 자를 두고 종교개혁가라고 숭상하는 일부 개신교인을 보면 안타깝지만 말입니다.^^

개신교가 로마가톨릭과 분리되고 종파로서 인정을 받는 것은,
30년전쟁의 개신교 연합의 승리에 대한 전리품으로 획득되어 진것입니다.
그게 베스트팔렌 조약이었지요??

그 전쟁에서 개신교도가 이긴 이유는
당대 군사적으로 최강국인 가톨릭국가인 프랑스가
같은 가톨릭국이며 세계주의자인 신성독일제국과
제국에 영향권을 행사하는 스페인이 미워
<루터와 루터를 지지하던 독일 일부 영주국가, 덴막크, 영국>등을 후원하면서 함께 싸워준 덕입니다.^^

하여 30년 전쟁은 종교전쟁이 아니라 <정치전쟁> 이라고 함이 타당합니다.^^

++++++++++++++
<<정리를 하겠습니다. 사도신경의 번역이 같은건 당연합니다..
로마가톨릭이 세워지기 이미 이전에 그리스도인들의 신앙고백을 위해 만들어진 기도문이니까요.>>
+++++++++++++++++

^^
사도신경은
고대 로마교회부터
로마교회안에서 세례를 받고자 하는 예비자에게 질의 문답하였던 신앙고백서입니다.
당연히 로마교회의 고유한 신조입니다.

로마교회 전승을 따르는 교회 외에는
사도신경을 고백하는 고대교회들이 없답니다.^^
(신앙 내용은 “인정한다” 하여도)

개신교는
로마가톨릭안에서 개혁하고자 일어난 운동이었다가
교회에서 쫓겨난 후^^
베스트파렌 조약 이후부터
기독교의 종파로 인정받고 등장한 것입니다.

개신교의 세례 역시 침례가 아닌 세례로 함은
침례에 대한 로마교회의 고유한 전승을 그대로 따르기 때뭄입니다.^^
로마가톨릭과 일치를 누리는 다른 동방(정)교회
(=동방 가톨릭교회 혹은 유니트라 합니다)교회들은
로마교회와 일치를 누리지만
로마 전승을 따르지 않고 <침례>를 합니다.^^
물론 예배 중 신앙고백을 할때에도 <사도신경>대신에 <니케아콘스탄티노플 신조>를 고백하지요.
(로마 전승은 니체아콘스탄티노포플 신경을 고백하라고 하지만
사도신경을 대신 고백하기도 합니다.)^^

++++++++++++
<<거기에서의 Catholic은 로마가톨릭을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들꽃님이 말씀하신 보편 교회에서 로마가톨릭이 스스로 박차고 나갔다는 점을 좀 아셨으면 좋겠군요.>>
++++++++++++++++

하여 사도신경에서 말하는 보편교회란 당연히 2000년간 보편교회의 중심부 즉 한 가운데 있었던
로마 가톨릭교회를 무시하고는 성립이 되지 읺는 것입니다.

그리고 로마가톨릭이 전체 가톨릭교회를 박차고 나간 것이 아님을 이제는아시겠지요^^

정교회 홈페이지를 보니
님과 같은 주장을 하지만
그분들의 교회는 사실^^ <전범 28조> 위에 세워진 것입니다.

이 규범을 근거로한다면
가톨릭교회를 분열시킨 장본이 어디인지가 아주 쉽게 판단이 될 것입니다.^^

451년 로마황제에 전범 28조 규정에 대적하여 뭉친 교회들 즉 로마교회, 알렉산드리아교회, 안티오크아교회, 예루살렘교회들은 아직도 그 규범을 인정하지 않고 있답니다.^^
비록 오늘날은
로마 교회 외
나머지 교회들은 이슬람교에 망하여 유명무실해져
콘스탄티노플 교회 영향하에 편입되었다 하여도^^

그러므로
Dr.Oh™ 님께서 정교회에 편향된 시각은 버리시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
<<그리고 개신교는 로마가톨릭을 모체로 하고 있다기 보다는...
Back to the Basic이라는 관점에서 초대교회를 근원적, 정신적 모체로 하고 있다는 점 알아두셨으면 합니다~
로마가톨릭은 Roman Catholic Church일뿐 보편교회가 아닙니다!! 오해 마셨으면 좋겠군요...-_-;>>
++++++++++++++++++++

말장난입니다.^^

개신교 운동은 처음에는 개혁 운동이었습니다.^^
초대교회로 돌아가자??=============>
이 구호는 무엇인가요 ================> 그냥 구홉니다.^^
오늘날에도
개혁이 필요할 때마다 신,구교 할 것 없이 사용하는 구호지요^^?

그런데 초대교회의 신앙이란 무어지요??????
초대교회의 예배는 ????
초대교회는 구약70인역 성서외에는 (신약)성서도 없었구요.^^
==========>하여 초대교회로 되 돌아 간다고 함은 무슨 의미일까여???

로마가톨릭은 가톨릭교회의
중심입니다.^^
로마가톨릭과 온전한 친교가 없는 교회는 상처입은 교회입니다.^^

그러므로 오해는 Dr.Oh™ 님께서 하시는 것입니다..^^
님의 말대로 한다면^^
개신교야말로 보편교회의 근원이라 그건데요^^

일부 개신교가 다른 교회를 비방하며서 간혹 이곳 저곳에서 구호로 외치는
<초대교회로 가자^^>
<성경만으로 하자>
<믿음만으로 놀자>
<은총 만으로 살자>라 한다 하여 그렇게 되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말장난 일 뿐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장로교 통합측의
사도신경 재번역 출발시 공고한 말들은
참으로 정작하고 합당한 말입니다.
즉,
<우리는 사도신경의 재번역을 하는데 그 원천은
750년에 확정되고 공인된 “로마가톨릭교회”의 사도신경을 원본으로 한다>

+++++++++++++++++==
<<분명 개신교에서 로마가톨릭을 벌레보듯하는 사람이 좀 있긴 합니다.
저도 물론 그런 관점은 싫어하죠. 그러나 그들의 논지를 역이용해서 로만가톨릭의 입지를 강화하려는 그런 시도는 좀 그렇군요..>>
++++++++++++++++++

로마가톨릭이 개신교를 이용하여 입지를 강화하고자 한다???
어떤 입지를 강화하고자 하는데요^^

로마 가톨릭은 가톨릭신앙과 합치되지 않은 종파와는 입지고 뭐고 그런 짓은 하지 않습니다.^^
신앙이 다른데 무슨 일치가 되나여^^
신앙이 다른 모임은 그냥 <대화 혹은 친선 모임>입니다.^^

개신교안에서 같은 신앙을 고벡하는 교단들과는 비록 노선과 현실안에서 예배전승이 달라도
서로 신앙 안에서 대화하고 기도하며 일치를 도모하는 것이지요.
"하느님의 더 큰 영광"을 위해서 말입니다.

가톨릭교회는 교회의 전 분야에서 분명히 선언합니다.

일치나 대화를 위해서
가톨릭신앙을 숨기거나 왜곡하는 <<<거짓 평화주의>>>는 배척되어야"만" 된다.

저는 이 가르침에 전적으로 순응합니다.^^

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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