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Re:창세기22장..이사악을 제물로 바치려는 아브라함.. | 카테고리 | 성경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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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이효숙 | 작성일2007-01-24 | 조회수585 | 추천수0 | 신고 |
이 정은 님.
님의 생각에 공감하는 사람으로서 아무라도 답글을 올려도 된다는 공지글에 힘입어 한 자 적어 봅니다.
칼과 불씨를 든 아버지와 장작을 등에 진 아들이 길을 가며 이야기 합니다. "아버지!" "얘야, 내가 듣고 있다." "아버지, 불씨도 있고 장작도 있는데, 번제물로 드릴 어린 양은 어디 있습니까?" "얘야! 번제물로 드릴 어린 양은 하느님께서 손수 마련하신단다." (창세기 22:7-8)
아들은 이미 장작을 지고 갈 수 있을 정도로 다컸고, 합리적인 질문을 할 수 있을 정도로 사리도 깨우쳤습니다. 서로를 부를 때 느낌표가 붙어 있으니 그 심정이 비장합니다. 가벼이 부르는 것이 아닌 듯 합니다. 아버지는 아들에게만 집중합니다. 아들이 부르니 곧 대답이 돌아옵니다. 어쩌면 마지막으로 같이 가는 길, 일거수 일투족 무엇 하나 놓치는 것이 없습니다. 아들은 무엇을 생각하며 아비의 뒤를 좇았을까요. 이미 모든 것을 느끼고 있었을지도 모릅니다.
아버지는 백세노인 이었습니다. 아들 이사악을 묶어 제단에 올릴 때 힘에 버거웠을 것입니다. 아들의 협조가 없었더라면 불가능했을지도 모를일 입니다. 울었다는 이야기는 없지만 서로 눈빛만 봐도 그 심정을 이해하고도 남았을 것입니다.
상대방의 처지에 대한 이해와 고통의 감내와 받아들여야만 하는 피할 수 없는 상황, 서로를 사랑하는 맘이 없었다면 이루어질 수 없는 일이었겠지요. 이미 답글을 달아주신 중에 예수님 얘기도 나오던데요, 예수님도 전날 밤에 피눈물을 흘리지 않으셨습니까?
우리들 평범한 사람들의 삶도 그러하다고 생각합니다. 매일 매일 크고 작은 일에서 쉴새없이 판단과 관계를 요구받습니다. 어느 한 순간 죽음으로부터 해방되어 있는 것도 아닙니다. 평균 수명이 칠십이네 팔십이네 하지만 그것이 누구의 이야기인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그렇다고 세상이 너무 비정하다고 한탄만 하고 있을 수는 없습니다. 때론 아브라함처럼 판단하고 이사악처럼 받아들이며 살아가야겠지요. 주변 사람들을 이해와 사랑으로 대하면서요.
하느님의 처사가 비정하게 느껴질수록, 삶이 우리에게 주는 교훈이 괴로울 수록 아브라함이 내뱉은 고백을 통하여 우리는 자유로와질 수 있을지 모릅니다.
"얘야! 번제물로 드릴 어린 양은 하느님께서 손수 마련하신단다."
내가 그 번제물이 되어야 하는 날 남김없이 기꺼이 드릴 수 있는 그런 일상, 사랑으로 꽉 채운 하루를 꿈 꿔 봅니다. 이 정은 님 복된 주님의 사람이 되시기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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