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Re:2. (예수님을 믿는) 바리사이파 사람을 조심하여라 | 카테고리 | 성경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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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안승태 | 작성일2007-01-25 | 조회수616 | 추천수1 | 신고 |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너희는 주의하여라. 바리사이들과 사두가이들의 누룩을 조심하여라." 하고 이르셨다(마태 16,6).
- 한국 천주교회 200주년 신약성서(주석서) 1 "마태오 복음서"의 "누룩"에 대한 주석 내용 발췌 인용합니다.
마르 8,15에선 "바리사이들의 누룩과 헤로데의 누룩"이라고 하면서 누룩의 뜻은 밝히지 않는다. 루가는 마르 8,15을 고쳐 "바리사이들의 누룩, 곧 위선"이라 한다. 마태오는 마르코를 고쳐 "바리사이들과 사두가이들의 누룩"(6절)이라 하고 누룩의 뜻을 밝혀 "바리사이들의 가르침과 사두가이들의 가르침"(12절)이라 한다. 바리사이들의 가르침과 사두가이들의 가르침 사이에는 공통점도 많지만 상이점도 적지 않다(부활논쟁의 예).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기서 두 종파의 가르침을 하나로 묶은 까닭은 유대교를 대표한 그들의 가르침이 예수님의 가르침(마태 7,28-29; 22,23; 28,20)과 맞지 않기 때문이다.
묻고 답까지 주셨지만, 누구에게 묻고 싶은 마음보다 현실을 지적하시기 위한 글로 보입니다, 안타깝게도. 성경을 공부하거나 또는 묵상하면서 저는 자주 유다의 말이 떠오릅니다. "주님, 저는 아니겠지요?" 무엇을 "썩게" 만드는, 부패하게 만드는데 누룩, 이스트가 도움이 되지요. 그러기에 긍정적인 용어로 사용되기도 하지만, 부정적인 뉘앙스로도 많이 사용됩니다. 그리스도의 대리자로 부르심을 받았지만, 그렇게 살지도 못하고 가르침에도 오류가 많은 사제들은 분명 비판의 대상이 되겠지요. 그러나 예수님께서 그러한 이후의 현실을 모르고 제자들을 불러 모아 사도로 뽑으시고, 그들의 후계자들이 계속 사도들의 일을 이어받아 오늘날에 이르기를 원하시지는 않으셨을 것입니다. 예수님 외에는 그 누구도 죄 없는 사람은 없습니다. 죄가 두려워서, 많은 나약함과 부족함 때문에 하느님 앞에 나설 수 없고 그리스도의 일을 할 수 없다면 그것이 더 큰 믿음의 부족일 것입니다. 유다의 더 큰 죄는 예수님을 배신한 것 보다 자신이 용서 받을 수 없다고 포기하고 "하느님의 사랑과 용서"에 대한 믿음의 부족으로 스스로 생명을 끊은 것에 있지요.
누가 바리사이이며, 누가 사두가이며, 누가 부정적인 누룩의 존재입니까?
그 누가 자신있게 "저는 아니겠지요?"라고 이야기 할 수 있을까요?
오늘날의 가톨릭 교회에 대한, 사제들에 대한 실망과 비판의 내용으로 겸허하게 받아들이면서도, 우리 모두 함께 생각해 볼 수 있는 말씀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우리는 누구나 예수님의 가르침과 맞지 않는 생각과 말과 행동으로 살아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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