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Re:"나는 세상에 불을 지르러 왔다...." 도와주세요! | 카테고리 | 성경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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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송두석 | 작성일2007-10-29 | 조회수782 | 추천수4 | 신고 | |||||||||||
자매님께서 질문하신,49절 말씀의 불을 성경에 비추어 보면 심판과 관련이 있읍니다.. 바오로 사도께서 마지막 심판 때에 각자의 소행에 따라 불로 심판을 받게 됨을 다음과 같이 말씀하고 있읍니다.
창세기 9장에 보시면 노아 때에 물(홍수)로 세상을 처음으로 심판하신 후에 하느님께서 무지개를 계약의 표징으로 삼아 다시는 물로 심판하시지 않겠다고 약속하십니다. 이후로는 하느님의 심판은 불을 통해서 이루어짐을 다음과 같은 예를 통해서 발견하실 수 있읍니다. 1.창세기 19장 : 소돔과 고모라를 불로 심판하심 2.레위기10장 : 아론의 두 아들인 나답과 아비후가 속된 불을 사용했을 때 하느님께서 불로 그들을 삼켜 죽게 하심으로 심판하심. 3.민수기 16장 : 모세에 맞서 반역한 코라의 편에 섰던 250명을 불로 삼켜 죽게 하심 (민수기16장 35절) 4.묵시록 20장과 21장 : 마지막 심판 때에 사탄과 짐승과 거짓 예언자 그리고 생명의 책에 기록되지 않은 모든 악인이 불못(불과 유황이 타는 못)에 던져져 영벌을 받아 두번째 죽음을 맞게됨.
그러나 질문하신 주님의 말씀, "나는 세상에 불을 지르러 왔다." 에서 말씀하시는 불은 한편으로는 세상에 대한 심판을 의미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믿는 이들을 거룩하게 변하게 하는 성령의 불을 의미합니다. 똑 같은 성경말씀이 믿는 이에게는 구원의 복음이 되고 안 믿는 이에게는 심판의 말씀이 되듯이 똑 같은 불이 믿는 이에게는 구원의 성령의 불이 되고 안 믿는 이에게는 심판의 불이 되는 것입니다. 믿는 이가 세례를 받으면 믿는 이 안에 새생명이 작은 불씨와 같이 살아나게 되는데 (신비차원) 주님의 은혜로 기름부음(성령충만)이 있게 되면 믿는 이 안에 있는 불씨에 기름부음으로 흡사 불이 타오르듯이 뜨거워져서 모든 악한 것, 시기, 질투, 증오, 음란, 방탕, 교만등이 불에 타 없어지듯 소멸되어, 성화를 통해 금(신성,거룩함), 은(구속,죄에 대해 죽음), 보석(사랑,성령의 열매)과 같이 주님을 닮아 그리스도의 향기를 전하는 사람으로 변화됩니다. 바로 이와 같은 성화의 불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불이 한편으로 심판이고 다른 한편으로 성령이 되는 이유는 성도의 심령에 성령께서 역사하시면 성도의 삶과 행실을 빛으로 조명하여 회개에 이르게 하는데 이러한 회개에 이르는 과정까지가 성령의 역사에 의한 심판이 되는 것이고, 이후 성령께서 성도와 함께 하시어 인도하심에 따라 말씀에 순종하며 점차로 거룩한 삶을 살아가게 되는데, 거룩한 삶에 초점을 맟추면 성령의 성화의 불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주님 앞에 회개하게 되는 것도 성령께서 성도의 심령 안에서 심판의 불로 역사하시기 때문에 가능한 것입니다. 다시 정리해보면 똑같은 불이 믿지 않는 이들에게는 심판을 통한 멸망의 불이 되고, 믿는 이들에게는 성령의 구원의 불이 됩니다. 믿는 이에게 성령께서 구원의 불이 됨에 있어서도 초기에 성도의 내면을 은혜의 빛으로 조명하여 그동안 살아오며 저지른 죄를 낱낱이 드러내어서 하느님 앞에 회개하게 하시는 데 이러한 성령의 조명은 믿는 이에게도 심판이 불이 되는 것이며, 성령의 은총에 힘입어 성도가 십자가를 지는 삶을 살 때(십자가를 진다 함은 죄에 대해 죽는 것을 의미함. 즉 죽은 사람이 죄를 지을 수 없는 것임. 성도는 십자가에서 주님과 함께 죽었으므로 죄를 지을 손도 없고 죄악된 길을 걸을 발도 없는 것임) 바로 성령의 거룩하게 하시는 성화의 불, 구원의 불이 되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49절의 말씀을 하실 때는 아직 영광을 받지 아니하여(십자가 구속및 부활 승천, 오순절 성령강림이 이루어지기 전임), 믿는 이들에게 성령(불)이 임하지 않았을 때이므로, 50절에 말씀하시는 주님께서 받으실 세례(십자가 구속)를 받고 부활 승천하시고 오순절에 성령를 보내시어 믿는 이들에 대한 의화(성화)로 마치 불이 타오르듯이 성령의 거룩케하는 역사가 앞으로 있을 것임을 암시하시는 것입니다. 참고로 사도행전 2장 3절에 보시면 오순절 마르코의 다락방에 성령께서 강림하실 때 불꽃 모양의 혀들이 나타나 갈라지면서 각 성도들에게 강림하신 것으로 나와 있읍니다. 즉 성령이 내리실 때 불꽃 모양으로 불과 같이 내렸음을 확인할 수 있으므로, 주님께서 언급하신 "나는 세상에 불을 지르러 왔다." 에서의 불은 성령강림을 의미하는 것으로 해석하시면 될 것입니다. 심판이 아닌 성령강림으로 해석할 수 있는 또 다른 성경적 근거는 루카복음 9장 54절에서 56절 말씀에 보시면, 사마리아 사람들이 예수님을 맞아들이지 않는 것에 분개한 야고보와 요한 사도가 주님께, "주님, 저희가 하늘에서 불을 불러내려 저들을 불살라 버리기를 원하십니까?" 하고 묻자, 예수님께서 그들을 꾸짖으셨다 라고 되어 있읍니다. 즉, 분노의 불을 보내 심판하시는게 하느님의 뜻이 아니고 성령의 구원의 불을 내려보내 구원하시는 것이 하느님의 뜻임을 전술한 성경말씀들을 비추어 보아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구원하시러 육화강생하신 것이지 심판하시러 오신 것은 아니시지만 예수님을 구원으로 받아들이지 않는 사람에게 심판이 임하는데 이러한 심판은 실제적 불로서 영원한 벌을 받아 영원히 타오르는 불못에서 맞이하게 되는 두번째 죽음인 것이고(묵시록 20-21장 참조), 한편 믿는 이들은 성령의 불로 내면의 육신적 허망한 것들을 소멸시켜 거룩한 하느님의 자녀로 성화시키신다는 점에서 성도 내면의 육신적 허망한 것들에는 준엄한 심판의 불이고 소멸의 불이지만, 이러한 성령의 불을 통한 연단과 정화로 거룩한 하느님의 자녀가 되어 그리스도 안에서 그리스도와 함께 영원토록 하느님 나라를 상속받아 영원한 생명 안에서 의와 평강과 희락을 누리게 하시므로 성령의 구원의 불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왜 똑 같은 불이 심판도 되고 구원도 되는가 하면 성령께서 성도에게 임하시어 성령충만해지면 성도의 내면의 육신적인 것들(바오로사도는 나무, 풀, 짚으로 표현함)을 심판을 통해 소멸시키시고 성화를 통해 성도를 거룩하게 변화시켜(하느님의 속성인 금으로 바오로사도는 표현함) 죄에 대해 죽고(은, 십자가 구속), 사랑의 열매(보석으로 표현함)를 맺게 하시기 때문입니다. 바오로 사도께서 마지막 심판과 관련 다음의 고린토 1서에서 말씀하시듯이, 마지막 심판 때에 우리 안에 심판의 불이 임해 나무나 풀이나 짚과 같이 육신적인 것으로 된 것들은 다 소멸되고 금이나 은이나 보석은 불에 견디어 심판을 이기게 됨을 보여줍니다. 이는 마지막 심판에서 뿐만 아니라 매일 매일의 성도들의 삶에 성령께서 기름부으심으로 역사하시면 은혜로운 삶을 살며 온갖 육신적 허망한 탐욕(나무, 풀, 짚) 들에서 벗어나 하느님의 거룩하신 속성인 금, 은, 보석과 같이 변모하여 사랑의 열매를 맺게 됨을 의미합니다. 즉, 심판의 불이 성도 안의 육신적 탐욕(나무, 풀, 짚)을 태울 때 성도는 금, 은, 보석으로 불(성령)을 통해 정련되고 성화의 길을 걷게 되어 거룩한 사람이 되도록 역사하신다는 것입니다. 주님의 은혜로 매일 말씀에 순종하며 성령충만(불이 성도의 심령 안에서 타오름)한 생활을 하면 마지막 심판을 피하게 되는 것 입니다. 그래서 주님께서 그렇게 성령의 불이 타올랐으면 얼마나 좋으랴 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말씀드린 대로 똑같은 불이라도 악인에게는 심판의 불이 되고 택한 이에게는 구원의 불이 되고 똑같은 성경말씀도 심판의 말씀도 되고 구원의 말씀도 되는 것 입니다. 그리스도를 믿는 이에게는 구원의 불이요 구원의 말씀이지만, 믿지 않는 이에게는 심판의 불이요 심판의 말씀이 되는 것입니다. 고린도 1서 3장 12-15절 참조하세요.
참고로 성령을 예표하는 많은 상징 중에서도 불은 심판과 성화, 연단과 관련하여 성경에서 사용되고 있고 물은 생명과 기쁨을 표현할 때 사용되며 생수 또는 생명강수로 언급됩니다.
그 다음에 질문하신 51절의 말씀, 즉 세상에 평화를 주러 온게 아니라 분열을 일으키러 오셨다는 말씀은 다음과 같이 이해하시면 되겠읍니다. 주님께서는 믿는 이를 어디에서 구원하시는가 하면 사탄과 세상과 죄로부터 구원하시므로 세상은 심판의 대상인 것이지 주님으로터 평화를 얻을 수 없읍니다. 주님께서는 믿는 이에게 평화를 주시는 것이지 세상에 평화를 주시는 게 아닙니다. 즉 우리가 구원받은 후에도 계속해서 세상사람과 같이 타락한 생활을 하면 우리에게 환란이 임하게 되며 평화가 사라집니다. 주님 안에서 말씀에 순종하는 삶을 살 때에만 주님께서 주시는 평화와 기쁨을 누리게 되는 것 입니다. 이러한 평화는 주님께서 말씀하셨듯이 세상이 주는 평화와는 다릅니다. 또한 분열을 일으키러 왔다 라는 말씀은 양떼(하느님의 자녀들)과 염소떼(사탄의 종들)를 가르듯이 그리스도를 믿고 물과 성령으로 거듭난 이들은 죄악에 찬 세상및 죄인들과 분리되어 성별되고 거룩한 삶을 살게 된다는 의미입니다.(마태 25장 32-46절 참조하세요.) 즉 세상으로부터 구원을 받아 그리스도 안에 있는 영원한 생명에 참여하게 되는데, 이렇게 될 때 세상적인 것들(죄와 탐욕)과 나뉘어져서 분열이 일어난다는 것입니다. 하느님에 대한 신앙이 들어오면 우상숭배하는 사람들과 갈라서게 되어 분열이 있고 또한 믿는 이의 심령 안에서도 하느님을 따르고자 하는 순종적인 마음과 자기의 세상적 욕심을 따르고자 하느님께 불순종하는 마음으로 분열이 일어나 영적인 전쟁이 있게 됩니다. 이때 하느님께 순종하면 심령에 기쁨과 평화가 임하게 되지만 세상적인 욕심에 끌려가면 세례이후 활성화된 양심에 의하여 가책을 많이 받게되어 심령에 평강이 없어지게 됩니다. 참고로, 이렇게 평강을 잃고 눌려있는 상태의 영혼을 치유하는 성사가 바로 고백성사입니다. 다시 풀어서 말씀드리면 주님께서는 세상에 평화를 주시는 것이 아니고 믿는 이에게 평화를 주신다는 것이고, 믿는 이가 세상과 연합하여 죄악된 삶을 살게 하시는 게 아니고 주님과 연합하여 거룩한 삶을 살게 하시어 세상적인 죄악된 삶으로부터 분열(분리)되어 주님 앞에 성별된다는 의미입니다. 도움이 되었으면 합니다. 전술한 내용은 제가 성경공부하며 개인적으로 깨달아 알게된 내용이므로 보편교회의 가르침과 다른 부분이 있다면 제가 쓴 내용이 틀렸다는 점을 미리 밝혀둡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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