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Re:성당에서 사용하는 성경책과 교회에서 사용하는 성경책이 다르나요?? | 카테고리 | 성경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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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이삼용 | 작성일2007-11-15 | 조회수1,962 | 추천수0 | 신고 |
Naver.com에서 검색한 것중 아래 것을 참고히시라고 옮겨봅니다.
저도 차제에 많이 공부되었네요.
그리고 券數만 틀린 것이 아니라, 특히 한글번역이 개신교성경은 의도적으로 原意와 다른 부분도 있습니다.
참고로 천주교에서도 "교회"라고 하기 때문에 "성당"과 "교회"라 하시는 것 보다는 "천주교 또는 가톨릭교회"와 "개신교"라고 하심이 좋겠습니다.
이것은 "천주교(가톨릭)"와 "기독교"라고 잘못 비교하는 것과도 같습니다. "천주교"도 "개신교"도 모두 "기독교"인데 자칫 "기독교"는 "개신교"만을 지칭하는 듯 오해를 하고 있으니깐요~~~~
(아래는 인용부분입니다)
개신교성경 66권 천주교 성경 73권 어떤것이 진리인가?
루터가 빼버린 제2정경(개신교가 말하는 외경) 그리고 야고보까지 빠질뻔한 사연. 사해문서 발굴로 히브리어와 그리스어번역본 모두에게서 제2정경이 성경임이 역사적으로 드러났는데 이에 대해 잘 모르는 개신교인들이 생각보다 매우 많더군요. =================================================================
re: 개신교성경 66권 천주교 성경 73권 어떤것이 진리인가? bbately (2005-11-11 01:19 작성)
일단 개신교의 성경수는 사해문서발굴로 인해 제2정경이 빠진 66권이 반쪽짜리 성경임이 드러났습니다. 가톨릭의 정경 73권의 성경이 진실임이 역사적으로 증명되엇습니다. 히브리어판과 그리스어판중 히브리어판에 나와있지 않다하여 도중에 첨가했다고 우겨가며 히브리어번역판을 선택하여 66권이고 가톨릭은 73권이지 않습니까? 하지만 사해문서 발굴로 히브리어판에 빠진 제2정경이 발굴되엇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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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서의 정경(正經) -
교회는 사도 전승(傳承)에따라 어떤 문서들이 성서 목록에 포함되어야 할지를 판단 했습니다. 이렇게 결집된 목록을 성서의 "정경"이라 한다. 이 목록에는 구약성서에 46권과 신약성서 27권, 총 73권이 들어 있습니다.
그런데 개신교의 성서는 구약성서39권과 신약 성서 27권, 총 66권입니다. 왜 이런 차이가 나는 것일까요? 그 이유를 알고 나면 저들이 얼마나 무지하며 얼마나 오만하며 얼마나 독성죄를 저지르고 있는지 잘 알 수 있습니다. 이집트의 알렉산드리아에 이주해 살던 유대인들은 히브리어보다도 당시 국제어인 그리스 (희랍)어가 더 익숙했습니다. 그래서 기원 전 3세기 중엽에 그리스어에 정통한 72인 유대인 학자들이 히브리어 성서를 그리스어로 번역하였는데, 100여 년 간에 걸쳐 이루어졌습니다. 이를 칠십인역(七十人譯)이라 합니다. 여기에는 유대인들의 히브리어로 된 구약성서의 정경 (正經)39권이 있습니다. 이를 제1 경전(정경)이라 합니다. 이외에도 토비트서, 유딧서, 지혜서, 집회서, 바룩서, 마카베오 상.하권 일곱 권과 다니엘서 일부(3,24~90 ; 13~14장), 에스델서 일부(10,4~16, 24)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이를 제 2경전(經典) 혹은 외경(外經)이라 합니다.
천주교회에서는 예수시대, 사도시대, 교부(敎父)시대를 통해서 지금까지 그리스어로 된 칠십인역[제1 경전(정경39권)과 제2 경전(외경 7권과 다니엘서 일부, 에스델서 일부)] 46권을 모두 성서로 인정해 왔습니다. 특히 가장 오래된 성서 사본인 꿈란 동굴의 구약성서 사본도 칠십인역과 일치하며, 예수님과 사도들이 구약성서를 인용할 때 칠십인역을 사용했습니다.
다음의 구절들을 비교해 보면 알 수 있다. *마태 6,14/ 집회 28,2 *마르 6,15/ 집회 48,9~10 *루가 13,27/ 1마카 3,6 *루가 24,4/ 2마카 3,26 *요한 3,12/ 지혜 9,16 *로마 1,20~32/ 지혜 13,10~19 *1베드 1,6~7/ 지혜 3,5~7
기원 후 90년경 팔레스티나 얌니아에서 유대인 학자들이 히브리어로 된 구약성서 39권만을 유대교 경전으로 확정하고 이를 정경이라고 했습니다. 여기에 포함되지 않은 일곱 권의 성서를 성서로서의 가치가 떨어진다고 외경이라 하며 성서로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한국의 개신교는 이를 따르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성서로 인정하시고 사도들도 성서로 인정한 그 성서를 따를 것입니까? 아니면 그리스도교를 말살하려고 하였던 유대인들이 확정한 성서를 따를 것입니까? 사도 계승을 하고 있는 서방 교회나 동방 교회는 모두 사도들의 전통을 따라 46권의 구약 성서를 모두 하느님의 말씀으로 받아들입니다.
유대인들이 제 2경전을 인정하지 않은 이유는 예수를 진정한 메시아로 보지 않았기에 예수에 대해 부인하려고 했다는 것 또한 큰 이유 중의 하나입니다.
이런 점에서 볼 때 성서 몇 권의 문제가 아니라 46권의 구약 성서를 모두 인정하지 않고 유대인의 전통을 따라 39권의 구약성서만을 성서로 인정하는 개신교는 그리스도를 구세주로 인정하지 않는 이단에 빠질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신약 성서는 27권입니다. 이에 대해서도 개신교는 아무런 할말이 없습니다. 그 어떤 개신교인들도 신약 성서가 28권이라는 둥, 26권이라는 둥의 사설을 늘어놓지는 않습니다. 다만 (현재 한국 루터교는 어떤지 몰라도 초기 루터교는 분명히 신약 성서 26권을 인정하고 있습니다. 루터가 바로 ‘허수아비 편지’라고 부른 ‘야고보서’를 빼버렸기 때문입니다.)
신약 성서는 왜 27권일까요?
너무나 당연한 질문입니까? 바보 같은 질문일까요? 정말 그럴까요?
정히 궁금하시면 주위에 아는 개신교인들에게 ‘신약 성서는 왜 27권입니까?’하고 질문을 해 보세요. 정말로 속시원히 대답해 줄 수 있는 개신교인들은 거의 없을 것입니다.
복음서는 과연 4권밖에 없을까요? 그렇다면 원 야고보 복음서, 베드로 복음서, 도마 복음서, 마리아 (막달레나) 복음서, 마티아 복음서, 안드레아 복음서 등은 무엇일까요? 베드로 행전은 무엇일까요? 또 베드로 묵시록은 무엇일까요? 이런 책들이 왜 성서가 되지 못했을까요?
신약 성서는 물론, 구약 성서 어디를 찾아봐도 성서의 목록표는 없습니다. 전능하신 성령께서 모든 사람들에게 “신약 성서 27권”의 목록에 대한 영감을 불어 넣어주신 것일까요? 그것은 정말로 하느님을 도깨비 방망이로 전락시키는 짓입니다.
4세기까지 신약성서는 각 교회마다 달랐습니다. 어떤 교회는 25권 정도, 어떤 교회는 한 30권 정도...이렇게 말입니다.
과연 개신교의 어느 누구가 위에 언급한 외경과 정경을 구분해서 신약 성서를 확정지었답니까? 신약 성서 27권은 1500년대에 확정된 것이 아니라 이단들이 판을 치고 있던 4세기에 가톨릭 교회에 의해 확정된 것입니다. 물론 개신교가 뿌리를 두고 있던 이단들은 그런 정경 목록조차도 가지지 않고 있었습니다.
그렇다면 가톨릭 교회에서는 어느 날 갑자기 (다마소 교황님께서) 이런 이런 책들을 정경으로 한다...하고 선언한 것일까요? 소위 성령의 영감을 받아서? 그것은 그야말로 가톨릭 교회를 이성이 결여된 만화와 같은 종교로 전락시키는 짓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 직접 가르침을 받았던 사도들, 성서를 저술했던 사도들이 모두 죽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적었던 책들에 대해 해석을 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사람들에게 가르치는 것은 바로 그 사도들의 제자들이었습니다. 무지랭이 김갑돌이가 예수님의 가르침을 사람들에게 가르칠 수가 있었겠습니까? 사도들의 제자들만이 세세한 것을 전수받고 가르칠 수가 있었겠지요. 그 사도들의 제자들도 차례 차례 죽었습니다. 그렇다면 누가 가르쳤을까요? 사도들의 제자들의 제자들이겠지요. 그렇게 제자들의 제자들로 이어지는 교회 지도자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에 대해서, 성서에 대해서, 성서에 근거한 신학적인 것들을 가르쳤습니다. 50년이 흐르고 100년이 흐르고 200년이 흐르면서 성서도 있고 위경도 나타났고 제자들이 교육적 목적으로 지은 책들도 있고 제자들의 편지들도 있고 초대 교회 교인들의 규범집도 있고 이단들이 지은 책들도 있고 구전되어 내려오는 ‘주님의 가르침과 성서’에 대한 해석도 있고 문서로 남겨진 해석들도 있었습니다.
이런 상태에서 과연 어떻게 누가 성서를 확정할 수가 있었을까요?
장기간에 걸친 면밀한 조사와 검토와 연구를 거쳐 어느 것이 한 점 틀림없는 예수님의 가르침이고 세월을 거슬러 스승의 스승인 사도들의 가르침과 부합하는지 밝혀야만 했습니다. 또 어느 것이 (단 하나라도) 그 가르침에서 벗어난 것인지 밝혀야만 했습니다.
누가 그 일을 했을까요? 존재하지도 않았던 개신교일까요? 아니면 이단들일까요? 바로 가톨릭교회가 아닙니까! 그 필생의 하느님 사업을 바로 가톨릭교회가 한 것입니다.
바로 성서에 대한 가장 권위 있는 교회는 가톨릭교회라는 말입니다.
이런 가정은 할 수가 있습니다. 비록 사도들의 가르침에 위배되지는 않았지만 가톨릭교회가 가르치는 바와 다른 견해가 들어가서 성서로 채택되지 못한 것은 어떻게 봐야하는가? 그렇다고 생각되면 그 책을 성서로 인정하고 혼자 그렇게 생각하면 됩니다. 그런데 아무리 오만한 개신교라고 해도 그런 주장은 하지 않는 것을 보면 (그들이 가톨릭교회를 철천지 원수처럼 생각하면서도) 은연중에 그들이 얼마나 가톨릭교회의 권위를 인정하는지 잘 알 수 있습니다. 가톨릭교회에서 성서라고 한 것이 성서이고 가톨릭교회에서 성서가 아니라고 한 것이 성서가 되지 못한 것입니다. 다른 주장은 있을 수 없습니다.
신학과 성서와 특히, 사도들의 가르침과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에 정통하지 않다면 어느 누구도 위경과 정경을 구별할 수 없습니다. 신약 성서가 27권이라는 선입견을 버리고 위에 언급한 위경들을 (어떤 것은 정말로 조잡하여 위작이라는 티가 잘 드러나는 것도 있지만 어떤 것은 정말로 구별이 어려운 것도 있습니다.) 보면 왜 정경이 되지 못했는지 이해할 수가 없을 것입니다. 그 정경화 과정에서 판단 기준이 된 것이 바로 성전입니다. 성전에 대해서는 또 다시 설명을 하겠지만 간단히 말해서 성전은 기록되지 않은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과 사도로부터 이어져 내려온 성사들과 기록되지 않은 사도들의 가르침(이것 역시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과 같겠지요. 이런 것은 구전되어 오다가 교부들에 의해 단편, 단편으로 문서화 되었지요.)과 교회 교부들의 (성서) 해석과 신학적 가르침(이것도 크게 보아 성서 해석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등입니다. 정말 상상하기 어려운 방대한 작업이 아닙니까?
한 가지만 더 짚고 넘어가겠습니다.
그렇다면 그 수많은 책들 중 성서로 인정받은 기준이 무엇이었을까요?
대강 말씀드리자면
1.사도들로부터 유래해야만 한다.
사도들로부터 유래해야만 교리의 확실한 출처와 교리의 순수성이 보증되기 때문입니다. ‘헤르마스의 목자’와 같은 책은 아주 훌륭한 책이지만 정경으로 인정받지 못한 이유는 사도로부터 유래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디다케’도 마찬가지 이유이지요.
단 반드시 직접 사도가 써야만 했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이에 관해서는 전문적인 책을 참조하세요.)
2. 보편성이다.
교회 전체가 한 문헌을 사도로부터 유래되었다고 인정한다면 그 문헌은 정경이다.
3. 영감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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