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Re:최후의 만찬 | 카테고리 | 성경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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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하경호 | 작성일2008-03-17 | 조회수681 | 추천수0 | 신고 |
''최후의 만찬''이라 함은 미켈란젤로의 성화를 통하여 세상 사람들에게도 관념적으로나마 잘 알려져 있겠는데,
크리스마스=그리스도미사=최후의 만찬으로의 뜻으로도 통합니다.
때 마침 주님의 예루살렘 입성을 기념하는 성지주일을 맞아 연중 가장 중요하고도 신자들이 꼭 참례하길 권고하는
''성삼일''을 통하여 우리들의 최후의 만찬이 함께함을 볼 수 있을것입니다.
부활의 성삼일중 최후의 만찬의 의미를 되살리는 ''주의 만찬 저녁 미사''는 오랜 옛 전통에 따라 이 날은 참석하는
교우가 없는 미사를 모두 금합니다. 예를 들어서 예수님의 탄생을 기원으로 2008년이 지나고 이러한 신약을 믿는
가톨릭 교회의 작금의 휴일인 월요일 아침등에 사제 홀로 벽을 보고 미사를 드리는 교우 미참석 미사도 금한다는
것이겠지요.
저녁 때 적당한 시간에, 지역 공동체 전체와 모든 사제들과 성무에 임하고 있는 모든 성직자들이 참석하는 가운데
주의 만찬 저녁 미사를 드립니다. 성유 축성 미사를 공동으로 집전하였거나 또는 교우들의 편리 때문에 이미 미사
를 집전한 사제들도 이 만찬 미사를 다시 공동으로 집전할 수 있습니다.
사목적 필요성이 있을 경우에는 교구장들은 성당이나 경당에서 저녁 때에 둘째 미사를 드리도록 허락할 수 있습니
다. 저녁 미사에 참여할 수 없는 신자들만을 위해서 아침 미사 집전도 허락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특수 미사
집전이 어떤 개인의 이익을 위해서나 또는 중심적 저녁 미사에 앞세워져서는 안됩니다. 신자들의 영성체는 미사 중
에만 허락되고, 병자의 영성체는 아무 때라도 허락 됩니다.
하느님과의 계약(신약, 구약)서를 보고 즉 성경을 보는 최선의 공부생활을 통하여 그것을 얼마나 준수 하느냐의
따라서 우리들 자신의 행복한 삶의 관건을 보게 될 것입니다. 사실 신앙 생활이라는 것은 취미 활동으로 국한 되
어서는 안 될 일일것입니다. 그러나 우리 자신의 모습을 살펴보면 자주 세속의 그것들에 얽매여 진, 선, 미조차 초월
하시는 하느님의 사랑과 또 그것을 따른 순교자들의 유지를 저버리고 결국은 어둠 속에서 허덕이는 가운데 이러한
''성삼일''이 가톨릭(보편사랑, 보편성) 신앙인으로서의 의미 기념일임을 잊는 분들이 적지 않은것! 애석한 일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아무튼 나와 세상의 모습이 때때로 이렇게 비추어질진데, 우리는 어떠한 환경과 어려움 속에서도 이미 하느님께서
너를 선택하여 주신 크나 큰 은총에 그 용기를 저버리지 말고 매일 오늘이 마지막이라는 각오로서 최선을 다할 수
있도록 허무한 삼일간의 여행이 아닌 주님께서 당신의 희생을 통하여 베푸시는 聖삼일의 초대에 응답하여야 할 것
입니다.
이 때의 미사 역시 보는 것이 아니라 참례하는 것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늘 저녁에 최후의 만찬을 이루는 분들은
복된 분들입니다. 하느님이 주시고자 하는 행복이 보장되기 때문이며 행복의 꽃을 피워 바칠 수도 있기 때문이지
요.
1. 성목요일 : 최후의 만찬 ▷ 예수님 게쎄마니 기도(성시간), 우리도 이 때에 한시간이라도 깨어 있을 수 있도록 각
본당에서 열리는 성체조배등에 참례합니다.
2. 성금요일 : 이날은 연중 유일하게 미사가 없습니다. 다만 기념 예절이 거행됩니다. 예수님께서 아침부터 극심한
채찍질 당하심과 함께 죽음의 골고타 언덕으로 끌려가시어 십자가에 못박혀 돌아가셨기 때문입니다. 아침 아홉
시부터 낮 세시에 운명하시기 까지 예수님께서 ''일곱마디''의 말씀을 주신 것 역시 최후의 만찬에 의거하여 깊은
묵상으로 인도해 주실 것입니다. 함께 찰고해 봅니다.
"아버지, 저 사람들을 용서하여 주십시오! 그들은 자기가 하는 일을 모르고 있읍니다."(루가 23 : 34)
"오늘 네가 정녕 나와 함께 낙원에 들어 가게 될 것이다."(루가 23 : 43) "어머니, 이 사람이 어머니의 아들입니다. " "이분이 네 어머니시다"(요한 19 : 26-27) "엘리 엘리 레마 사박타니?" 번역하면 "나의 하느님, 나의 하느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마태오 27 : 46). "목마르다" (요한 19 : 28) "다 이루었다" (요한 19 : 30) "아버지, 제 영혼을 아버지 손에 맡깁니다" (누가 23 : 46) ♡ ♡ ♡ ♡ ♡ ♡ ♡
끝으로 생활 성서사에세 제공하는 별책부록 소금 항아리에서 발췌된 일부로서 "깨어 있는 사람은 행복하다"의
주님 말씀을 통한 어떤 사제의 일화를 첨부코자 합니다. 좋은 여정 이루십시오.
♡ ♡ ♡ ♡ ♡ ♡ ♡
주인이 밤중에 오든 새벽에 오든 깨어 있는 종은 복을 받으리라는 주님의 말씀을 들으며,
한 할아버지의 임종이 생각납니다.
어느 월요일 정오 무렵, 병자성사를 청하는 전화가 걸려왔습니다.
알려준 아파트 주소대로 물어물어 찾아가서 서둘러 병자성사를 집전했습니다.
할아버지는 아주 평온하게 주무시듯 임종을 맞으셨는데,
갑작스럽게 돌아가신 시아버님을 생각하며 눈물흘리던 며느리가 전해준 이야기는
두고두고 잊혀지지가 않습니다.
할아버지는 식구들에게 얼굴 한 번 찡그리는 일 없이 늘 기쁜 모습이셨다고 합니다. 그동안 아프신 적도 없고 건강하셨는데, 돌아가시던 날도 늘 하던 대로 아침기도를 바치고 식사도 잘 하셨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조금 후에 며느리를 부르시며 "얘야, 아무래도 주님께서 나를 부르시는 것 같아" 하시며 자리에 누우시겠다고 하셔서 자리를 깔아드렸다는 것입니다. 본당 신부님에게 연락을 해달라고 하셔서 전화를 했는데 되지를 않아 또 다른 본당에도 연락을 해보고 하다가 저와 연결이 되었습니다. 시아버지는 아무래도 신부님은 못 보고 바로 주님께 가야겠다고 하시며 잠자듯 눈을 감으셨답니다. 오래 전에 보았던 영화에서 한 유다인 의사를 도와주었다는 죄목으로 적군 장교로부터 총살을 당하기 전 보좌신부에게 남긴 본당신부의 마지막 대사가 생각납니다. "어떻게 죽느냐보다는 어떻게 잘 살아왔느냐가 더 중요한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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