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Re:원죄사함 받았다는 성경구절이 어디에 있습니까? | 카테고리 | 성경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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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송두석 | 작성일2008-04-04 | 조회수1,751 | 추천수8 | 신고 | ||
가. 서론 자매님의 질문에 대해 그동안의 신앙생활을 통해 신부님, 교형자매님들의 가르침, 주님의 은혜로 알게된 부족한 지식이나마 성경말씀에 근거하여 나누고자 본글을 쓰게 되었읍니다. 자매님의 질문에 대해 간단하게 성경말씀만을 인용하는 방법도 있지만, 진리에 목말라 답답했던 과거의 제 경험에 비추어 볼 때 원리적인 설명이 필요할 수도 있다 싶어서 다소 장황하지만 종합적으로 다음의 주제들에 대해 성경말씀을 근거로 설명을 드리고자 합니다.
1.죄(원죄, 본죄)란 무엇인가? 2.사랑의 하느님께서는 죄사함(용서)을 위해 죄인에게 무엇을 요구하시는가? 3.공의로우신 하느님께서 죄인을 용서하시는 근거는 과연 무엇인가? 4.용서받은 죄인은 무엇을 선물로 받는가? 용서와 선물을 받았음을 어떻게 알 수 있는가?
나. 본론 1.죄(원죄, 본죄)란 무엇인가? 죄의 성경적 개념은 "하느님을 떠난 것이 죄다."라고 성경에서는 보고 있읍니다. 다음말씀은 (원죄보다는) 본죄에 대해서 설명하는것이지만 죄의 개념을 잘 설명하므로 예례미야서 2장 13절의 말씀을 참조하시기 바랍니다 정녕 내 백성이 두 가지 악행(죄)을 저질렀다. 그들은 생수(생명)의 원천인 나를 저버렸고 제 자신을 위해 저수 동굴을, 물이 고이지 못하는 갈라진 저수 동굴을 팠다. 예례미야 예언자를 통해 하느님께서 하시고자 하는 말씀은 생명과 만복의 근원이시고 은총의 샘이신 하느님을 저버리고 떠나는 것이 죄인데, 이렇게 하느님을 떠난 사람에게는 항상 영적인 갈증이 생겨서 갈증해소를 위해 세상적 유희(재산, 명예, 육욕)에 탐낙하지만 이러한 것은 물이 고이지 못하는 갈라진 저수 동굴과 같아서 아무리 세상적 쾌락을 추구해도 영적인 갈증을 해소할 수는 없다는 것입니다. 오직 생명의 근원이신 하느님께 돌아와야만 비로소 영적인 갈증이 해소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께서 요한복음 4장에 보시면 우물가에 물길러 온 여인에게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신약에 들어와서 주님께서 죄에 대해 영적인 말씀을 남기셨는데, 바로 요한 복음 3장 18절의 말씀입니다. 아들을 믿는 사람은 심판을 받지 않는다. 그러나 믿지 않는 자는 이미 심판을 받았다. 하느님의 외아들의 이름을 믿지 않았기 때문이다 위 성경말씀은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은 새생명(하느님의 조에 생명으로 영생함)으로 태어났으므로 멸망(요한묵시록에 나오는 마지막 때에 불못에서 영원한 벌을 받는 것)의 심판에서 벗어났다는 것입니다. 즉 죄에 대해 용서를 받았다는 것입니다. 왜 그런가에 대한 영적인 설명은 로마서에 자세히 나오는데 제가 아래 긴 글에서 "용서의 근거"와 관련하여 자세히 설명드리겠읍니다.인용한 복음말씀은 하느님의 아들인 예수님을 믿지 않는 것이 죄인데 믿지 않는 자는 이미 멸망의 심판을 받았다는 것입니다. 믿지 않는 자에게는 새생명(영생하게 되는 조에 생명)이 임하지 않으므로 멸망(지옥 불못에서 영원한 벌을 받게 됨)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를 뒷받침 해주는 복음말씀은 요한복음 5장 24절입니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내 말을 듣고 나를 보내신 분을 믿는 이는 영생을 얻고 심판을 받지 않는다. 그는 이미 죽음에서 생명으로 건너갔다 예수 그리스도(하느님의 아들)의 말씀과 하느님을 믿지 않는게 죄라는 것입니다. 이와 관련하여 성령께서 행하실 중요한 사역에 대해 복음서에서 주님께서 말씀하시길, 성령께서 죄에 대해 세상 사람들이 잘못 생각하는 것을 밝히실 것인데, 세상사람들이 죄에 관하여 잘못 아는 이유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16장 9절에 주님께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십니다. 그들이 죄에 관하여 잘못 생각하는 것은 나를 믿지 않기 때문이고. 이와 관련하여 자세한 설명은 아래 글에 "용서의 법적 근거"를 읽어보시면 되겠읍니다. 죄는 하느님(하느님의 말씀)을 떠나 불순종하는 것인데, 신약에 와서 구세주인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 수난 공로로 세우신 구속의 진리를 믿고 새생명(물과 성령으로 거듭난 생명) 으로 태어나지 않으면 하느님께로 돌아갈 수(용서받을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께서 요한복음 14장 6절에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 나를 통하지 않고서는 아무도 아버지께 갈 수 없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생명은 우리의 육신적 생명 또는 혼적 생명이 아닌 하느님의 조에 생명, 즉 영원한 생명입니다. 신약에 와서 죄는 "예수님이 구세주이심을 믿지 않는 것"입니다. 그 이유는 죄의 삯인 사망(멸망)에서 벗어나는 유일한 길이 바로 예수님을 믿는 것이고, 이러한 믿음으로 새생명(하느님의 조에 생명, 영원한 생명)으로 태어나야만 죄의 용서를 받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믿지 않는 자는 죄의 결과인 멸망심판에 처해지므로 바로 믿지 않는게 죄가 되는 것, 즉 죄 중에 살다가 멸망당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베드로 사도가 이러한 계시진리를 깨닫고 사도행전 4장 12절에 다음과 같이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분(예수 그리스도) 말고는 다른 누구에게도 구원이 없습니다. 사실 사람들에게 주어진 이름 가운데에서 우리가 구원받는 데에 필요한 이름은 이 이름(예수 그리스도)밖에 없습니다 왜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세례를 받으면 구원이 임하는지에 대하여 성경말씀을 근거로 법적 원리적 논리적 영성적 설명은 아래 긴 글에서 차근 차근 설명드리오니 시간과 인내를 가지고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구약의 죄는 하느님을 떠난 것인데, 신약의 죄는 예수님을 믿지 않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지 않는 것이 왜 죄가 되냐하면 하느님의 영원한 생명(조에 생명)으로 돌아갈 수 있는 유일한 길이 바로 주님께서 세우신 십자가의 길이기 때문입니다. 성경말씀은 구약에서 신약까지 영적으로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성령의 도움이 없이 우리의 세상적 지식으로 하느님의 뜻을 알아낼 수 없읍니다. 하느님의 뜻은 하느님의 성령만이 아시기 때문에 기도로 은혜를 청할 때 저희가 깨닫도록 도와 주십니다.
그러면 이제 본론으로 돌아가서 원죄를 다루어보기로 하겠읍니다. 다음에 인용한 창세기 2장 16절에서 17절까지의 하느님의 말씀(명령)을 불순종한 것이 바로 원죄입니다. 원죄도 본죄와 같이 하느님의 말씀에서 떠난 것(불순종한 것)이 바로 죄가 됩니다. 그리고 주 하느님께서는 사람에게 이렇게 명령하셨다. “너는 동산에 있는 모든 나무에서 열매를 따 먹어도 된다. 그러나 선과 악을 알게 하는 나무에서는 따 먹으면 안 된다. 그 열매를 따 먹는 날, 너는 반드시 죽을 것이다. 이러한 하느님의 말씀을 어떻게 해서 불순종하게 되었을까요? 창세기에 나와 있듯이, 뱀(사탄)의 유혹에 넘어가 선악과를 취함으로써하느님의 말씀에 불순종한 결과 인류의 조상인 아담과 하와는 타락하게 되고 낙원에서 쫓겨나 고통스러운 삶을 살다가 종국에는 죄의 삯인 죽음을 맞이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누구나 갖게 되는 의문이 있는데 하느님의 말씀을 불순종했기로서니 그게 과연 죽음에 이르게 할 정도로 큰 죄인가? 그리고 도대체 하와는 무슨 심정으로 하느님께 불순종하여 선악과를 취했는가? 라는 본질적인 질문을 하게 됩니다. 여기에서 고찰해야될 중요한 사항은 뱀의 다음과 같은 유혹의 말(창세기 3장5절)인데 원죄를 적나라하게 설명해 주고 있읍니다 너희가 그것을 먹는 날, 너희 눈이 열려 하느님처럼 되어서 선과 악을 알게 될 줄을 하느님께서 아시고 그렇게 말씀하신 것이다.” 주묵해야할 구절은, "너희 눈이 열려 하느님처럼 되어서" 라는 말씀입니다. 이러한 뱀의 유혹의 언어로 인해 하와는 하느님을 의심하게 된 것입니다. 즉, 사람이 선악과를 먹고 하느님처럼 전능하게 될 것을 시기하여 하느님께서 먹지 못하게 하셨다라고 하느님의 말씀을 의심하고 오히려 뱀(사탄)의 거짓말을 믿고 드디어 선악과를 취함으로써 하느님의 말씀에 불순종하는 원죄를 저지르게 된 것입니다. 도대체 어떤 심정으로 하느님께 불순종하고 선악과를 취했는가? 라는 질문에 대한 답을 성경은 명시적으로 밝히지 않지만, 피조물이 창조주 하느님과 동등하게 되려고(눈이 열려 하느님처럼 되려고) 선악과를 취했음을 뱀의 유혹의 말을 통해 알 수 있읍니다. 그러면 그랬기로서니(불순종했기로서니) 그게 낙원에서 쫒겨나서 저주받아 죽음에 이르는 죄가 되는 것인가? 라는 질문에 대한 답은, 다음의 성경구절(창세기 2장 9절)을 통해 우리가 알 수 있읍니다. 주 하느님께서는 보기에 탐스럽고 먹기에 좋은 온갖 나무를 흙에서 자라게 하시고, 동산 한가운데에는 생명 나무와, 선과 악을 알게 하는 나무를 자라게 하셨다 위 성경말씀에서 주목할 부분은, 하느님께서는 생명나무를 순서적으로 볼 때 선악과나무보다 앞에 두심으로써 생명의 근원이 하느님이심과 하느님께서 생명의 주관자되심과 하느님의 임재 안에서만 생명이 있음과 그러한 생명이신 하느님(생명나무, 생명의 근원)께로부터 생명을 공급받으며 아담과 하와가 살기를 바라셨기 때문에 하느님께서는 선악과에 앞서 생명나무를 두신 것임을 성령의 빛아래 성경을 봉독하시면 깨닫게 됩니다.
그 다음에 고려해볼 사항은 선악과가 가지고 있는 상징적 의미인데. 선악과를 취함은 인간이 스스로 독립하여 하느님과 관계없이 자의적으로(제 멋대로) 선악을 판단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독립하여 자의적으로 선악을 판단하는 것이 왜 죄가 되느냐 하면 우리 인간은 불완전한 피조물이기 때문에 하느님을 떠나서 독립할 때 필연적으로 그릇된 선악판단(자신에게 유익한 것만 선으로 판단하게 됨)을 내리고 만인이 만인을 대항하여 스스로 자신민 선하다고 주장하며 무한의 투쟁을 전개해 나갈 수 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인류의 역사가 이를 증명하고 있다고 봅니다. 인간세상에서는 사람이 자라서 성인이 되면 분가하여 독립하는 것이 세상이치이지만 신앙의 세계에서는 하느님과 더욱 친밀해질 수록 하느님께 모든 것을 의뢰하고 의지하는 것이 성숙한 신앙인입니다. 세상의 이치와는 반대라고 생각할 수 있겠읍니다.
원죄란 무엇인가? 에 대한 답은 하느님의 말씀에 불순종한 것이 원죄이다 라는 답을 위와 같이 성경을 상고하며 말씀드렸읍니다. 또 그러면 왜 불순종하게 되었느냐? 라는 질문에는 사탄의 유혹의 언어, 즉 하느님처럼(하느님과 동등하게 됨) 된다는 유혹의 말에 넘어가 하느님의 말씀을 의심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라는 말씀을 드렸읍니다. 사랑의 하느님의 본래의도는 생명나무(영생, 그리스도 예표)를 앞에 두신 것에서 알 수 있는데, 피조물인 인간이 하느님의 임재아래 하느님의 말씀에 순종하며 낙원에서 영원히 살기를 원하셨기 때문입니다. 한편으로 인간이 불순종하여 선악과를 취하고자 하면 취할 수 있도록 생명나무(순종)와 선악과나무(불순종)를 같이 두셨음을 미루어 보아 우리에게 자유의지를 허락하셨음을 알게 됩니다.
사탄(뱀)의 말이 거짓임은 다음 두가지에 비추어보면 자명합니다. 첫째, 죽지 않는다는 뱀의 말과는 달리 죽게 되었음(죄의 결과). 이와 관하여 하느님의 말씀에 의하면 선악과를 따먹은 그날 죽어야 하는데 그날 죽지 않았으므로 하느님의 말씀이 거짓이라고 주장하는 사탄 추종 세력도 있으므로 이런 사람들의 말에 현혹되면 안되겠읍니다. 하느님의 임재(에덴동산)에서 추방되는 것이 바로 영적으로 죽는 것이며 이렇게 추방되먼 영적으로 죽은 것과 같이 되어 하느님과 관계(교통)가 끊어지는 것입니다. 바로 이러한 죽음이 영적인 죽음입니다. 그리고 육신적으로 봐서 아담이 930세에 죽은 것으로 성경에 나오는 데 베드로 사도가 말씀하듯이 하느님께는 1000 년이 하루와 같읍니다. 즉 930 살에 죽은 아담이 하느님 눈에는 하루도 못살고 그날(불순종한 날) 죽은 것입니다. 따라서 뱀의 말이 틀리고 하느님의 말씀이 옳은 것입니다. 둘째, 눈이 열려 하느님처럼 된다 했는데 우리가 전지전능하신 하느님같이 되지 못했음. 사탄 말대로 하느님같이 되었다면 우리가 전지전능해야 함에도 전혀 그렇지 못한 것입니다.
사탄은 오늘날에도 수하들을 조종하여 어떻게 해서든지 성경의 하느님 말씀을 못믿게 하려고 온갖 수작을 다 부리고 있으므로 믿는 이들은 항상 깨어서 분별해야하겠읍니다. 전능하신 하느님의 성경말씀에 대해 감히 맞네 틀리네 하는 주장은 자신이 하느님보다 더욱 똑똑해서 성경을 다시 쓰겠다는 것인데 얼마나 분수를 모르는 한심한 주장입니까? 기껏해야 이상한 책 몇권 읽은 지식으로 하느님의 말씀인 성경을 의심하여 말도 안된다 라고 주장하고 있는데 이는 참으로 교만한 행위라 하지 않을 수 없읍니다. 서푼어치도 안되는 자신의 알량한 지식을 가지고 감히 전능하신 하느님의 성경말씀이 맞네 틀리네 하는 것은 세례받은 신자가 취할 도리가 아닙니다. 사탄의 유혹의 언어에 넘어가서 미혹된 사람들(믿음에서 떨어져 나간 사람들) 이나 그런 주장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하느님의 성경말씀은 참으로 심오하여 성령의 인도없이는 그 누구도 성경을 이해할 수 없읍니다. 지식으로도 노력으로도 안되고 오직 은혜로만 성령의 빛비추심 아래에서 성경을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하느님이 어떤 의도로 그러한 성경말씀을 쓰쎴는지는 하느님만 아시는데 바로 삼위로 한 분 하느님이신 성령하느님이 알려주셔야 우리가 성경을 제대로 깨달아 알게되는 것입니다.(코린토1서 2장 11절 참조) 그 사람 속에 있는 영이 아니고서야, 어떤 사람이 그 사람의 생각을 알 수 있겠습니까? 마찬가지로, 하느님의 영이 아니고서는 아무도 하느님의 생각을 깨닫지 못합니다.
하느님의 영은 성령이신데 바로 성령께서만 성경에 계시된 하느님 말씀 안에 숨어있는 하느님의 뜻을 믿는 이에게 알게 하신다는 말씀입니다. 성경은 계시진리입니다. 성령의 감도로 40 여명의 서로 다른 저자를 통해 장기간에 걸쳐 성경이 쓰여졌지만 놀라운 일관성과 통일성을 보여주는 것이 바로 이 사실을 증명하는 것입니다. 성경 안에 있는 계시진리가 믿는 이에게 다시 계시되어야만 계시진리에 대한 하느님의 뜻을 이해하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날에도 성경의 계시진리는 점진적으로 믿는 이에게 성령을 통해 계시되고 있읍니다. 따라서 성경을 봉독하며 이해가 어려운 부분, 또는 앞뒤가 맞지 않아 보이는 부분이 있으면 성령께 기도로 깨달음을 간구하셔야 합니다. 하느님의 말씀인 성경이 말이 안된다는 주장은 하느님이 하시는 일이 말이 안된다 라고 주장하는 신성모독죄를 범하는 수가 있기 때문입니다. 욥기에 욥이 깨달음을 얻은 것의 정수는 바로 욥기 42장 3절의 다음과 같은 욥의 고백입니다. "그렇읍니다. 저에게는 너무도 신비로워 알지 못하는 일들을 저는 이해하지도 못한 채 지껄였읍니다.(하느님의 섭리를 비난하는 말들을 욥이 지껄인 것을 의미함)"
자신의 알량한 머리를 믿을 것입니까? 아니면 전능하신 하느님과 그분의 살아있는 생명의 말씀인 성경을 믿을 것입니까? 하느님은 믿는데 성경말씀은 믿지 않는 그런 법도 있읍니까? 어떤 성경말씀은 믿고 어떤 성경말씀은 믿지 않으려면 그 알량한 머리로 판단(선악과의 결과)을 하겠다는 것인데 전능하신 하느님을 피조물이 교만하게 판단하겠다는 것입니까? 우리는 다만 겸손하게 하느님의 말씀인 성경을 믿음으로 받아야 할 것입니다. 아담과 하와와 같이 말씀을 의심해서는 안되겠읍니다. 의심의 결과는 저주이기 때문입니다.
2.사랑의 하느님께서는 죄사함(용서,구원)을 위해 죄인에게 무엇을 요구하시는가?
그리스도교의 가장 큰 역설은 "죄인이어야만 구원을 받는다 " 라는 복음서의 말씀입니다. 주님께서는 "의인을 구하러 오신 것이 아니라 죄인을 구하러 오셨다." 라고 마태오 복음서 9장 13절에서 분명하게 말씀하십니다. 이 말씀은 본인이 죄인임을 인정하고 회개하는 죄인만을 구원하신다는 의미입니다. 본인이 죄인임에도 오히려 의인으로 착각하고 사는 죄인은 주님께서 구원하지 않으신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주변을 살펴보면 조폭과 흉악한 사람들이 오히려 자신들을 협객 또는 의리의 사나이 운운 해가면서 자기 자신이야말로 가장 의로운 사람이라고 내세우는 것을 보게됩니다. 왜 이런 일이 있게 될까요? 주님께서 회개할 수 있도록 은총을 주시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은총이 있어야만(선행해야만) 비로소 죄인이 자신의 죄를 깨닫고 주님 앞에 회개하는 것입니다. 회개의 은총에는 죄를 깨닫게 하시는 은총과 그리고 죄를 회개하게 하시는 은총이 모두 포함되며 용서의 은총에 선행됩니다. 그래서 구원에 있어 은총의 선행이 필수적인 것입니다. 다음에 인용하는 성경말씀들을 기도하는 마음으로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1)사도행전 2장 38절 베드로가 그들에게 말하였다. “회개하십시오. 그리고 저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아 여러분의 죄를 용서받으십시오. 그러면 성령을 선물로 받을 것입니다. 2)사도행전 13장 38절에서 39절까지 그러므로 형제 여러분, 여러분은 이것을 알아야 합니다. 바로 그분을 통하여 여러분에게 죄의 용서가 선포됩니다. 모세의 율법으로는 여러분이 죄를 벗어나 의롭게 될 수 없었지만 믿는 사람은 누구나 그분 안에서 모든 죄를 벗어나 의롭게 됩니다. 위 성경말씀 대로 모든 죄(원죄, 본죄)를 용서받게 됨. 3)콜로새서 2장 12절 여러분은 세례 때에 그리스도와 함께 묻혔고, 그리스도를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일으키신 하느님의 능력에 대한 믿음으로 그리스도 안에서 그분과 함께 되살아났습니다 4)로마서 6장 3절에서 8절 그리스도 예수님과 하나 되는 세례를 받은 우리가 모두 그분의 죽음과 하나 되는 세례를 받았다는 사실을 여러분은 모릅니까? 과연 우리는 그분의 죽음과 하나 되는 세례를 통하여 그분과 함께 묻혔습니다. 그리하여 그리스도께서 아버지의 영광을 통하여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되살아나신 것처럼, 우리도 새로운 삶을 살아가게 되었습니다 위에 인용한 성경말씀들을 차례로 읽으시면 죄인에 대한 하느님의 용서와 관련 다음과 같은 법칙(원리)을 이해하실 수 있을 것입니다. 죄의 용서를 위해 필요한 것은, 첫째,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인을 위한 속죄제물로 십자가에서 피흘려 돌아가셨음과 우리의 구세주 되심을 믿는 믿음이 가장 중요합니다. 둘째, 이러한 믿음 하에서 죄를 회개하고, 셋째,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아야 함. 성경말씀에 의하면 진심으로 위와 같이 믿고 죄를 회개하고 세례를 받으면 성령을 선물로 받게됩니다. 여기에서 성령이란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는 새생명"을 선물로 받게 된다는 의미입니다. 결론적으로 말씀드려 우리가 죄사함을 받기 위해 필요한 것은 바로 구세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인데 이러한 믿음이 회개의 은총을 불러 죄인은 하느님 앞에 죄를 회개하게 되고 세례성사를 통해 주님과 함께 죄인(옛사람)이 죽고 주님과 함께 새생명으로 다시 태어나는 것입니다. 성경에서 요구하는 죄사함을 받기 위해서는 믿음, 회개, 세례가 필요하다 하겠읍니다. 성경에 유일하게 세례가 없이 죄사함과 성령을 선물로 받은 경우가 있는데, 이는 이방인 선교를 꺼리는 베드로에게 이방인도 성령을 받을 수 있다는 점을 알려주시려 하느님께서 주권적으로 세례이전에 성령을 내려주신 경우로써 사도행전 10장에 나오는 코르넬리우스의 집에서 일어난 성령세례가 유일하다 하겠읍니다. 이와 같이 성경에 세례받지 않고도 성령이 임한 경우가 있지만 그것은 이방인 전교의 시작을 위한 예외적인 것이고 모든 믿는 이는 주님의 말씀대로 (마태오복음 28장19절, 마르코복음 16장16절),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믿고 세례성사를 받아야 죄사함과 새생명으로 거듭나는 은총을 받을 수가 있읍니다.
3.공의로우신 하느님께서 죄인을 용서하시는 근거는 과연 무엇인가? 로마서 6장 23절에서 말씀하시듯이 "죄의 품삯은 죽음" 이라는 공의로운 법을 세우시고 마찬가지로 히브리서 9장 22절에서 말씀하시는 바와 같이 "피를 쏟지 않고서는 죄의 용서가 이루어지지 않는다." 는 엄위하신 법을 말씀하십니다. 이렇게 피로만 죄가 용서되는 것은 레위기 17장 11절에 "피가 그 생명으로 속죄하기 때문이다." 라고 말씀하시듯이 오직 피로만 속죄(용서)가 이루어지는게 바로 하느님이 세우신 공의로운 법입니다. 공의로우신 하느님의 법에 의하면 우리 모두는 죄인이므로 피흘려 죄를 속죄하며 죽음으로 죄값을 치러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성경전편에 흐르는 하느님의 일관적인 품성인 사랑의 하느님께서는 공의로우심에 입각하여 자신이 세우신 법을 어기지 않고도 죄인을 용서하시고 구원을 베푸시기 위하여 구약의 속죄예식 절차에 따라 짐승의 피를 봉헌하는 속죄제사를 통해 죄를 용서하시어 죄인이 하느님 앞에서 죄사함 받은 기쁨을 누리게 하였읍니다. 구약에 보시면 속죄제사를 통해 죄인은 죄사함을 받고 하느님과 화목해져서 하느님 전에 기쁨을 누리게 됩니다 (레위기 참조). 이러한 구약의 짐승의 피를 통한 반복적 대속적 속죄제사는 앞으로 오실 그리스도의 단 한번의 십자가 희생제사를 통해 과거 현재 미래의 모든 죄를 영원히 용서하시기 위한 예표로써 하느님께서 모세에게 명하시어 세우신 것입니다. 죄인이 자신의 죄를 짐승에 안수함으로써 짐승에게 죄를 넘겨 짐승이 피흘려 죽음으로써, 이러한 짐승의 대속적 피흘림과 죽음으로 죄인이 죄사함의 은혜를 입는 것입니다. 구약의 레위기에서 자세히 설명하고 있듯이 오직 피를 뿌림으로써만 죄인의 죄사함이 이루어졌읍니다.(구약의 속죄는 짐승의 피로 지은 죄에 대한 1회용 속죄이므로 반복적으로 짐승을 잡아 피를 뿌려야 했음. 반면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단한번 십자가 상에서 피흘리고 돌아가심으로 과거 현재 미래의 모든 죄를 영원히 속죄하신 것임. 이는 그리스도께서 성자 하느님이시기 때문에 그분의 신적위격(전능)에서 죄에 대한 용서, 즉 구속이 가능한 것임)
성경을 성령의 은혜아래 읽게되면 구약이 신약의 그림자임을 알게됩니다. 구약의 모든 내용은 다만 앞으로 오실 그리스도를 위한 예표로 이스라엘 백성에게 주어진 것입니다.그래서 주님께서 요한복음 5장 39절에 다음과 같이 말씀하신 것입니다. 너희는 성경에서 영원한 생명을 찾아 얻겠다는 생각으로 성경을 연구한다. 바로 그 성경이 나를 위하여 증언한다. 신약의 십자가 상에서 주님의 단 한번의 유혈제사로 주님께서는 믿는 이에게는 누구에게라도 죄사함과 영생을 주시는 은총을 값없이 베푸십니다. 즉, 믿되 주님의 십자가 성혈에 의해 죄인의 죄가 용서받는다는 것을 믿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창조되지 않고 나신 성자 하느님이시기때문에 바로 하느님이라는 신적위격에서 그러한 죄의 용서가 가능한 것입니다. 어떠한 짐승이나 사람의 피로도 이 세상의 모든 죄를 영원히 도말할 수 없으나 오직 참 하느님이시고 참사람이신 성자 예수 그리스도의 피에 의해 죄인이 죄를 용서받게 하느님께서 은혜를 베푸신 것입니다. 이와 같이 공의로우신 하느님께서 자신이 세우신 엄위한 법(죄의 삯은 사망, 피를 쏟아야만 죄의 용서가 이루어짐)을 스스로 사람의 몸으로 오시어 33년 반의 인생을 사시고 십자가 상에서 수난하시어 피흘려 돌아가심으로 우리 모두의 죄를 처리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사흘만에 부활하시어 승천하신 후에 오순절 성령강림을 통해 교회(주님의 몸)를 세우시고 오늘날까지 죄인을 구원하시는 구세사를 펼치시는 사랑의 하느님이신 것입니다. 죄를 용서하시는 근거가 바로 주님께서 그 모진 고난을 통해 흘리신 피(성자 하느님의 보혈)에 있는 것입니다.
성령께서 이러한 구속의 진리를 깨닫게 하시면 참으로 회개의 눈물을 흘리지 않을 수 없읍니다.(저는 삼개월에 걸쳐 거의 매일같이 회개의 눈믈을 흘렸음을 주님 앞에 고백합니다.)
죄의 용서와 관련해서 첫째로 알아야 할 것은 오직 하느님께서만 죄를 용서하실 수 있는 권한을 가지고 계신다는 것이고, 둘째로, 죄를 용서하시는 근거는 그리스도의 성혈에 있다는 것입니다. 다시말해, 이천년전에 십자가에서 피흘려 돌아가신 주님이 바로 내 죄 때문에 그렇게 처참하게 돌아가셨다 라고 믿고 죄를 통회(마음이 아프게 죄를 회개하는 것)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구원하시려는 사랑의 하느님이 아니시라면 뭐하러 사람이 되시어 십자가 상에서 피흘려 돌아가셨을까요? 주님께서 바오로 사도에게 계시를 통해 십자가의 신비(주님과 함께 죄인이 죽고 새생명으로 태어나는 신비)를 보여주시어 다마스커스 가는 길에서 주님을 만난 바오로 사도는 극적인 변화를 겪고 오직 주님의 십자가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 외에는 모든 것을 쓰레기로 여기며 생명이신 그리스도를 순교할 때까지 전하신 것입니다. 주님 만나기 전의 바오로(사울)은 당시 최고의 율법학자인 가말리엘 문하에서 가장 잘 나가던 율법학자(바리사이파)였고 로마의 시민권및 대단한 학식과 지위를 가진 사람이었지만 주님 만난 후에 자신이 알고 있던 지식을 쓰레기로 여기게 되었읍니다. 이렇게 철저하게 변화되는게 바로 성령의 역사인 것입니다.주님 만나고 주님께서 보여주시고 알려주시어 그렇게 믿게되고 오늘날 그리스도교 신학의 기초를 바오로 사도께서 계시를 통해 로마서를 기록함으로써 굳게 세우신 것입니다.
로마서의 핵심은 다음과 같읍니다. 그리스도를 구세주로 믿고 세례를 받으면 전능하신 하느님의 신비에 의해 죄인(세례 받는 이)이 십자가 상에서 주님과 함께 죽고(하느님의 전능하심과 신비에 의해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여 그러한 일이 일어남) 물과 성령으로 다시 새생명(영원한 생명, 하느님의 조에 생명)으로 태어난다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세례받은 이후에는 십자가에 주님과 함께 못박혀 죽은 옛사람(믿기 전의 죄인)의 죄악된 삶을 살지 않고 부활하신 주님의 새생명으로 거듭난 새사람의 삶을 살도록 성령의 생명의 법이 인도하신다는 것입니다.(로마서 6장 7장 8장을 성령의 인도로 읽으시기 바람) 죄사함의 근거가 성경말씀 대로 그리스도의 성혈에 있지만, 주님께서 바오로 사도에게 보여주신 신비에 의하면 세례성사 때에 믿는 이는 주님과 함께 십자가에서 죽고 새생명으로 태어난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세례성사로 거듭난 믿는 이는 죄에 대해서는 십자가에서 죽은 사람과 같이 죄를 행할 손도 없고 죄악된 길을 걸을 발도 없는 사람같이 살아야하고 오직 그리스도 안에서 새생명으로 의롭고 거룩한 삶을 성령의 인도하심(성화조력은총)에 따라 성사생활 잘하며 살아야하는 것입니다.
결론적으로 말씀드려, 죄를 용서하시는 근거는 그리스도의 성혈인데 하느님께서는 죄인이 그리스도 안에서 그리스도와 함께 죄에 대해 죽은 것으로 보시기때문에 실제로도 성경적 진리에 의하면 죄인은 하느님의 법에 의해 피흘리고 십자가 상에서 주님과 함께 죽은 것입니다. 그러면 살아서 이렇게 글을 쓰고 있는 이 사람(송두석)을 하느님께서는 어떻게 보실까요? 그리스도 안에서 새생명으로 태어난 자녀로 보신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죄인(송두석)은 그리스도 안에서 세례받을 때 그리스도와 함께 죽은 것으로 보시기 때문에 하느님의 눈에는 죄인은 보이지 않으시고 오직 그리스도 안에서 새생명으로 태어난 자녀(송두석)로만 보신다는 것입니다.
죄인인 우리가 구속된 성경적 근거는 그리스도의 성혈에 있지만, 구속된 다음에 하느님과의 관계는 자녀된 새생명에 있으므로 하느님께서는 구속된 이는 죄인으로 보지 않으시고 자녀로 보시는 것입니다. 그러나 자녀가 되는 법적인 근거는 그리스도의 피에 있고 그리스도의 피가 우리의 죄를 사하시는 법적인 근거가 되므로 우리는 항상 그리스도의 보혈아래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보혈아래라는 의미는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서 죄에 대해 죽었으므로 더이상 죄악을 행하지 않는 상태로 이해하시면 되겠읍니다. 또한 복음서에서 주님께서 말씀하시는 바와 같이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르는 삶" 으로 이해하시면 되겠읍니다. "우리가 십자가를 진다" 라고 말할 때 성경에서의 본질적 의미는 "우리의 죄악된 육신이 십자가에서 주님과 함께 죽었으므로 더이상 죄를 짓는 삶을 살아서는 안된다" 라고 해석해야 올바르게 성경을 이해한다고 할 수 있읍니다. 그래서 거듭난 새생명을 지닌 믿는 이는 하느님과 이웃을 사랑하는 삶을 살게 되는 것입니다. 만일 믿는 이가 아직도 죄 중에서 자기 자신의 유익만을 추구하는 육신적 삶을 산다면 이는 자신의 육신이 십자가에서 주님과 함께(세례성사의 신비) 죽었다 라는 성경의 하느님 말씀을 믿지 않기 때문입니다. 육신이 멀 쩡히 살아 있는데 무슨 소리냐? 라고 하면서 자신의 감각을 믿고 하느님의 말씀을 믿지 않는 것이지요? 우리의 육신은 유한하고 항시 변덕을 떨지만 하느님의 말씀은 영원히 변하지 않는 진리임을 믿어야 합니다. 그래서 믿음으로 우리가 구원을 이루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억지로 믿겠다고 노력한다고 해서 믿어지는게 아니고 주님께 믿게 해달라 겸손히 청할 때 주님께서 은사로 믿음을 허락하시어 우리의 믿음이 견고해지는 것입니다. 믿음조차도 주님께서 은혜로 허락하셔야만 우리가 바르게 믿을 수 있는 것이므로 항상 바른 믿음으로 그리스도 안에서 거할 수 있도록 주님께 청해야 합니다.
다시 설명드리자면, 하느님께서 우리의 죄를 용서하시는 근거는 그리스도의 성혈에 있으며 이러한 그리스도의 성혈을 믿고 그리스도를 구세주로 믿는 믿음으로 세례를 받으면 하느님의 신비에 의해 죄인이 그리스도와 함께 죽음으로써(죄에 대해 죽음) 바로 새생명으로 태어나게 되므로 하느님의 성경적 진리에서 보면 죄인은 주님의 피로 용서되었을 뿐만 아니라 주님과 함께 십자가에서 죽었으므로 결국 하느님의 공의로우신 법(피를 쏟야야만 용서가 된다. 죄의 품삯은 사망이다.)이 세례성사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위의 설명은 성경의 진리에 입각한 것이고, 신앙생활의 실제에 있어서는 세례성사 이후에도 죄로 기우는 성향때문에 자주 죄를 짓고 의무를 소홀히 하게 됩니다. 그래서 우리에게 고백성사를 주신 것입니다.
4.용서받은 죄인은 무엇을 선물로 받는가? 용서와 선물을 받았음을 어떻게 알 수 있는가?
베드로가 그들에게 말하였다. “회개하십시오. 그리고 저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아 여러분의 죄를 용서받으십시오. 그러면 성령을 선물로 받을 것입니다
위에서 인용한 사도행전 2장38절의 말씀과 같이 성령을 선물로 받게 됩니다. 다시 말하면 물과 성령으로 새생명으로 다시 태어나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우리가 용서와 선물을 받았는지를 알 수 있을까요? 하느님과의 화목에서 오는 평화와 기쁨이 심령에 있고 하느님의 뜻에 따라 하느님의 보다 높으신 뜻을 분별해가며 살아가고 있다는 내적확신을 갖게 됩니다. 하느님께서 싫어하시는 일은 영적으로 알게되어 자연히 죄에서 멀어지는 삶을 성령의 인도하심에 따라 살게 됩니다. 성경을 읽으며 하느님의 뜻을 깨달아 알게 됩니다. 범사에 감사함을 느끼며 조그마한 일에도 하느님과 이웃에게 감사하게 됩니다. 하느님의 말씀을 경홀히 여기거나 무시하고 비난하는 사람들에게 거룩한 분노를 느끼게 됩니다. 매사를 행함에 있어 주님께 의뢰하고 어떠한 결과라도 믿음과 인내로 감사하게 받게 됩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성령으로 말미암아 의와 평강과 희락, 즉 하느님 나라에서의 삶을 미리 맛보며 살게 됩니다.
그러나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르지 않고 과거에 살던 식으로 자기 멋대로 하느님의 뜻과 달리 개인적 유익만을 추구하거나 죄에 기우는 삶을 살 때에는 하느님께서 평강과 기쁨을 빼앗아가시기 때문에(사실은 하느님에게서 멀어지지 때문에 저절로 없어지는 것임) 사람이 공허해지고 세상에 대한 근심 걱정 불안이 엄습하고 뭔가 어두운 터널을 통과하는 듯한 심적 상태에 빠지게 됩니다.
이 상태에서 헤어나기 위해서는 하느님과 믿는 이 사이를 가리는 죄를 회개해야 하므로 주님께 기도로 어떠한 죄가 있는지 알려주실 것과 죄를 회개할 은총을 주십사 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우리의 문제는 죄를 짓는 것에 있다기 보다는 무슨 죄를 범했는지를 모른다는 문제가 있읍니다.또한 주님께서 성령을 통해 죄를 알려주셔도 회개하지 않고 고집을 부리는 경우가 제 경험에 비추어 보면 왕왕 있었기 때문입니다.
중요한 것은 하느님 보시기에 합당하지 않은 죄를 짓고도 회개하지 않을 경우 우리는 은총지위를 상실하여 영적으로 어두운 삶을 살게 된다는 것입니다. (왠지 불안하고 심령에 평강과 기쁨이 없게 됨)
죄를 알게 하시고 지은 죄를 회개하게 해주시는 은총이 그래서 소중한 것입니다. 그래서 은총이 없는 죄인은 자신을 의인으로 착각하며 살다가 멸망당하고 마는 것입니다.
위에 설명드린 선물, 즉 죄인이 용서받은 후에 하느님의 자녀가 되면서 받게 되는 선물을 설명드림에 있어 새생명, 즉 속생명(다시 태어난 영에 거하시는 성령하느님께서 생명을 주시는데 바로 이러한 조에 생명, 영원한 생명이 속생명임)이 곧 선물이라는 설명드렸읍니다. 그래서 니체아 신경고백에 보시면, 성령하느님께 다음과 같은 신앙고백을 하는 것입니다.
"또한 주님이시며 생명을 주시는 성령을 믿나이다."
본글에서는 성령의 은사를 다루지 않고,물세례및 견진성사(성령세례)로 태어나는 속생명(영원한 생명) 위주로 글을 쓰고 있음을 밝힙니다.
성령께서 속생명으로 역사하시든 외적 능력(은사)로 역사하시든 성령의 역사는 오직 믿는 이의 삶에 나타나는 열매(사랑)에 의해서만 믿는 이가 하느님의 참된 자녀인지 아닌지를 알 수 있게 됩니다.
끝으로 마태복음 10장 22절과 24장 13절에 동일한 말씀을 주님께서 반복하시었는데 다음과 같이 인용하며 나눔차원의 부족한 글을 마칩니다.
"(어떠한 박해나 환란에도 불구하고 주님을 의지하며 믿음으로), 끝까지 견디는 이는 구원을 받을 것이다."
사랑의 주님, 저희 모두에게 자비를 베푸시어 그리스도 안에서 끝까지 견디어 주님으로부터 구원을 받을 수 있도록 은혜로 인도하소서. 우리 주 그리스도를 통하여 비나이다. 아멘
제가 장황하게 쓴 글의 내용이 교회의 공적 가르침과 만일 다른 내용이 있다면 이유여하를 막론하고 제 내용이 잘못된 것임을 미리 밝혀둡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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