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창조자’이신 예수님
「내 영혼의 리필」이란 책은 인간이 늙지 않고 영적 활력을 유지하면서 살 수 있는 방법을 제시하는데 그 하나의 방법이 「아낌없이 베푸는 것」이라 합니다.
연구 조사에 의하면 인간은 남을 도울 때 크게 6가지의 느낌을 가진다 합니다. 고양된 행복감, 더 강해지고 활기에 찬 것 같은 느낌, 주위가 따뜻해지는 느낌, 침착해지고 우울함이 줄어드는 느낌, 나 자신에 대해 더 좋은 느낌, 그리고 통증이 줄어드는 느낌 등이 그것인데 이 느낌이 영적활력을 가져오는 원동력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느낌을 위해서는 주의할 점이 있는데 그것은 자기 정체성을 잃어서는 안 된다는 점입니다. 자칫 남을 돕는다는 사실에 집착한 나머지 타인의 욕구에 지나치게 의존하여 자신의 존재를 잃어버리거나 혹은 허영심 때문에 자신의 한계를 넘어서는 도움을 주는 경우가 있는데, 이렇게 베푸는 것은 좋은 느낌보다는 오히려 자기 비하와 더불어 부정적인 느낌을 가져오기 때문입니다.
그러기에 베풀 때에는 도움을 통해서 정말로 주어야 할 것을 주는 지혜와 자신을 잃지 않는 냉정함이 필요한데, 이 모습은 기적을 베풀면서도 함구령을 내리는 예수님의 모습 안에서 발견할 수 있습니다.
오늘 복음은 귀먹은 반벙어리를 고치시는 기적 이야기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귀먹은 반벙어리에게 손가락을 귀에 넣고 침을 바르고 숨을 내쉬는 동작을 통해 병을 고쳐 주셨다는 것이 그 내용입니다.
먼저 이 이야기는 전형적인 치유이적사화로서 사람을 대상으로 하는 모든 기적이 그러하듯 하느님 나라의 위력, 하느님의 구원능력이 지금 이 자리에서 드러나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 주면서 그 분의 사명에 대한 암시가 드러납니다. 그리고 또한 이 부분에는 창세기 1장에 나오는 표현들이 많이 사용되고 있는데, 이러한 표현들은 모두 오늘 기적을 하시는 예수님이 「새로운 창조자」라는 사실을 은연중에 암시하고 있다고 주석가들은 이야기 합니다.
그리고 귀먹은 반벙어리를 고치는 기적은 예수님이야 말로 오늘 1 독서의 이사야 예언서에 예언된 대로 이상적 메시아시대를 완성하는 약속된 메시아라는 사실을 확인해 주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오늘 복음을 보면서 이상하게 생각하는 부분은 이 기적을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라고 엄하게 당부하시는 함구령입니다.
사실 이 함구령은 보통의 상식으로는 잘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입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이 이 세상에 오신 목적이 하느님나라의 선포이기에 이 사명이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오히려 많은 사람들에게 이러한 종류의 소식이 전해져야 하고, 또 많은 사람들이 매력적인 느낌을 가지고 접근할 수 있는 놀라운 기적의 이야기를 선전하는 것이 많은 도움이 될 텐데 오히려 감추다니 정말 이해가 쉽지 않은 부분입니다. 그리고 더욱더 곤혹스러운 사실은 이러한 함구령이 이 기적에만 국한된 이야기가 아니라 그분의 일관된 삶의 자세였다는 점입니다(1, 24. 44 ; 8, 30 등).
물론 일부 주석가들은 마르코 복음에 나오는 이러한 비밀사상을 복음 선포 실패를 합리화하기 위해 복음사가들이 적어 놓은 이야기로 해석하기도 합니다만 그러나 필자가 생각하기는 이러한 이해하기 어려운 함구령 안에는 예수님의 겸손과 더불어 우리 신앙인이 진정으로 깨달아야 할 실재에 대한 가르침이 숨어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 봅니다.
불교에서는 손가락을 보지 말고 달을 보라는 이야기를 곧잘 합니다. 이 말은 매개체와 실재를 구별하라는 이야기지요. 아마 예수님의 함구령에도 이 같은 교훈이 숨어 있는 것 같다는 말씀입니다.
왜냐하면 기적은 기적 그 자체에 목적이 있기보다는 하느님나라가 시작되고 있음을 보여줌에 그 목적이 있고, 예수님의 사명도 하느님나라였기 때문입니다. 그런 상황에서 기적과 예수님에게 사람들의 관심이 쏠린다면 자칫 원하든 원하지 않든 하느님나라가 감추어질 위험성은 충분히 있었기 때문입니다.
아마 예수님의 함구령은 이러한 위험성을 누그러뜨리고, 또 달보다는 너무나 쉽게 손가락에 집착하는 인간의 본능적인 어리석음을 약화시켜 하느님나라의 실재를 보여주기 위해 자신을 낮추는 그분의 배려가 이러한 함구령의 배경이 아닌가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본다면 이 함구령은 먼저 하느님과 하느님 백성 사이에 자리하는 교회와 교회 지도자들의 자세에 대한 교훈과 함께 매개체에 집착하여 정말로 중요한 실재를 보지 못하는 인간의 어리석음에 대한 고발인 동시에 교회를 믿는 오늘의 우리 신앙이 진정으로 관심을 가져야 할 이상을 보여주는 것이 아닌가 여겨집니다.
〈원주교구 삼척종합복지관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