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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Re:'사울'이라는 이름과 '바오로'와의 이름에서? 카테고리 | 성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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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송두석 쪽지 캡슐 작성일2008-11-28 조회수523 추천수1 신고
문의하신 "사울"과 "바오로"라는 이름에 대해 제가 그동안 성경을 봉독하며 나름대로 묵상한 결과를 나눔 차원에서 적어 봅니다.
 
먼저 바오로 사도께서는 벤야민 지파 사람으로서 원래의 이름이 사울이었던 것이 확실하다 하겠습니다.
참고로 벤야민 지파는 야곱의 열두 아들 중에 막내아들인 벤야민의 후손들인데, 사무엘을 마지막 판관으로 해서 판관시대가 끝날 무렵 이스라엘 백성들의 요청에 의해 하느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처음으로 세워주신 왕의 이름이 사울이었으며 베냐민 지파 사람이었습니다. 이스라엘의 첫번째 왕이었던 사울에 관해서는 성경에서 다음과 같이 이야기합니다(사무엘상  9장 2절).
 
이름은 사울인데 잘생긴 젊은이였다. 이스라엘 자손들 가운데 그처럼 잘생긴 사람은 없었고, 키도 모든 사람보다 어깨 위만큼은 더 컸다.
 
사울왕이 말년에 하느님 말씀에 순종하지 않음으로써 그다지 훌륭한 왕은 아니었을지라도, 이스라엘의 초대 왕이었다는 점과 기골이 장대한 사람이었다는 점에서 볼 때, 벤야민 지파 사람들에게는 위대한 조상으로 여겨졌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이러한 의미에서 바오로 사도의 원래 이름이었던 사울은  "큰 사람", 또는 "위대한 사람"이라는 상징적 의미를 내포하는 것이라 볼 수 있는 것입니다(개인적 추정임).
 
사도행전을 주의 깊게 읽어보시면, 사울이 처음으로 등장하는 대목은, 순교자인 "스테파노"를 돌로 쳐죽이는 이스라엘 사람들의 겉옷을 지키는 젊은이로 나타나는 사도행전 7장 58절입니다. 이렇게 그리스도인을 박해하는 바리사이인으로 등장하여 적극적으로 그리스도인을 핍박하는 삶을 사는 동안에는 지속적으로 사울이라는 이름으로 성경에 기술됩니다.
 
한편 바오로라는 이름으로는 사도행전 13장 9절에 처음으로 등장하는 데, "바오로라고도 하는 사울이 성령으로 가득차서" 라는 해당 말씀에서 보시듯이 이미 성령으로 충만하여 복음을 전하기 시작하면서 이름이 바오로로 바뀌고 있는 점을 알 수 있습니다. 사도행전 13장 9절 이후에는 철저하게 바오로라는 이름으로만 등장합니다. 간혹 사울이라는 이름으로 나오는 것은 사울이라는 이름으로 불리던 시절을 회상할 때(다마스커스 가는 길에서 주님 만난 것을 회상할 때)에만 한정되어 사울이라는 이름이 기술됩니다.
 
참고로 바오로는 라틴어로 "Paulus" 인데, 이는 "작은 자" 또는 "보잘 것 없는 사람" 을 뜻합니다. 주님이 바꾸어 주신 것으로 성경에 나오지는 않지만 주님 만난 후에 스스로 주님 앞에 작은 자가 되었기 때문에 바오로 사도께서 스스로 이름을 바꾼 것으로 추정됩니다. 벤야민 지파 사람이었던 바오로 사도가 벤야민 지파의 위대한 조상이었던 사울(큰 사람, 위대한 사람의 의미를 내포함)이라는 이름을 버리고 주님 앞에 작은 사람이라는 의미의 바오로로 이름을 바꾼 것은 영적으로는 큰 의미가 있다고 하겠습니다. 우리가 제대로 주님을 알지 못할 때는 스스로에 대한 자부심과 교만, 오만을 가지고 살게 됩니다. 그러나 주님 만나게 되면, 스스로가 얼마나 보잘 것 없는 사람인지를 알게 되고 주님과 형제들 앞에 자기 자신을 낮추게 됩니다. 주님께서 주시는 겸손한 마음때문에 그런 일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주님을 제대로 만난 바오로 사도는 스스로 주님 앞에 작고 보잘 것 없는 사람임을 자각하고 사울(큰 사람)이라는 이름 대신 바오로(작은 사람)라는 이름을 쓰게 되었을 것으로 추정하는 데 그 근거를 다시 설명해 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사울이라는 이름은 벤야민 지파에게는 위대한 조상이었던 이스라엘의 첫번째 왕의 이름이었다. 사울이 초대 왕이자 기골이 장대한 사람이었듯이, 사울이라는 이름에는 큰 사람, 또는 위대한 사람이라는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 벤야민 지파인 사울(바오로)는 다마스커스 가는 길에서 주님을 만난 후, 성령이 충만하게 되어 이방인을 위한 사도로 주도적인 역할을 하기 전까지는 사울이라는 이름으로 불렸으며, 사울이라는 이름이 나올 때에는, "바르나바(안티오키아 교회 감독)와 사울" 하는 식으로 뒤에 이름이 따라나오며 종속적인 역할을 했던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그러나 사도행전 13장 9절 이하부터는 바오로라는 이름으로 나오는데, 이때 부터는 성령에 충만하여 이방인을 위한 사도로써 주도적인 역할을 하게 됨을 우리가 알 수 있는데 성경에서도 "바오로와 바르나바"라고 기술함으로써 안티오키아의 감독이었던 바르나바에 앞서 이름이 기록된 것이다. 성경은 계시진리를 밝히고 있으며 성령의 감도 하에 기록된 것이므로 우리가 성경을 읽을 때에는 무슨 의미로 하느님(성령)께서는 그와 같이 두 이름, 사울과 바오로라는 이름을 성경에 기록되게 하신 것인가를  깊이 있게 묵상해 보아야 한다.
 
-바오로라는 이름을 쓰기 시작하면서 부터는(하느님 앞에 작고 보잘 것 없는 사람임을 자각하고 난 다음부터는), 사도행전에 기록된 바와 같이, 하느님께서 바오로를 이방인을 위한 사도로 중요하게 들어서 쓰신 것을 우리가 알게 되는데 심지어 이름을 기술하는 순서에 있어서도 바르나바(감독)보다 앞에 기술함으로써 바오로 사도가 주도적인 역할을 하게 됨을 보여주는 것이다. 이후에 마르코 문제로 바오로와 바르나바가 다투게 되는데, 바오로의 말을 듣지 않은 바르나바는 더이상 성경에 등장하지 않게 된다. 하느님의 뜻대로 움직인 바오로 사도가 주도적으로 이방인을 위한 전교를 수행하게 되는 것임을 우리는 알 수 있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말씀드려, 성령으로 충만해지면 스스로에 대한 자부심과 교만 오만이 남김없이 부서지고 하느님 앞에 작은 사람으로 서게 되며, 영적으로 이러한 상태에 있을 때에 하느님께서는 그 사람을 도구로 이용하시어 복음을 전하게 하심을 알게 됩니다. 왜 그런가 하면, 우리가 복음을 전한다 할 때, 우리는 다만 그리스도를 전할 뿐이지 우리의 지식을 현학적으로 전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하느님 앞에 겸손해진 후에 비로소 하느님의 온전한 뜻 안에서 복음을 전할 수 있게 되기 때문입니다. 사울(큰 사람)과 바오로(작은 사람)라는 두 이름과 이러한 이름이 성경에서 사용된 용례를 통해, 하느님께 쓰임 받는 사람은 예외 없이 스스로를 하느님과 형제 앞에 작고 보잘 것 없는 사람으로 겸손되이 낮추게 됨을 우리가 알게 되는 것입니다.
 
위에 기술한 내용은 제가 그동안 성경공부하며 알게 된 내용이므로 교회의 공식적인 가르침과 다른 부분이 있다면 제가 쓴 내용이 잘못된 것임을 미리 밝혀둡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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