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카인의 아내 | 카테고리 | 성경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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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송두석 | 작성일2008-11-30 | 조회수1,562 | 추천수0 | 신고 |
우리가 성경을 읽으면서 항상 간과하는 부분이 있는데, 하느님의 전능하심입니다. 신앙고백할 때에는 전능하신 하느님이시라고 고백하면서도, 돌아서서 성경을 읽으면서 "말도 안돼." 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주일 미사에서 항상 고백하듯이 하느님께서는 실제로 전능하신 하느님이십니다. 전능하신 하느님이라고 믿지 않기 때문에 우리가 성경말씀을 하느님의 말씀으로 받아 들이지 못하게 됩니다. 전능하다는 말은 모든 것이 가능하다는 말이므로 성경에 나오는 어떠한 초자연적인 기적도 전능하신 하느님에 의해 이루어진 것입니다. 만일 우리가 성경에 나오는 말씀들을 받아 들이지 못한다면, 우리는 거짓으로 전능하신 하느님이라고 고백하고 있는 셈입니다 .왜냐하면 하느님의 성경말씀을 못 믿는다는 것은 하느님을 못 믿는 것과 같은 의미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믿는 하느님은 성경에 나오는 하느님이시고 성경에서 말씀하시는 하느님이신데, 우리가 성경말씀을 못 믿는다면 당연히 하느님을 못 믿게 되는 것이지요.
성경은 전능하신 하느님께서 성령을 통하여 여러 기록자들을 사용하시어 성령의 감도 아래 기록된 생명의 말씀이므로 우리는 의심 없이 성경말씀을 생명의 양식으로 받아들여야 하겠습니다. 자의적으로 황당한 주장을 해서는 안되고 성경의 창세기에서 묵시록까지를 빠짐없이 기도를 통하여 수 차례 봉독하고 신부님과 신앙의 선배들을 통하여 진지하고도 이성적인 자세로 공부해서 어느날 성령하느님께서 빛으로 조명해 주실 때에 신약과 구약이 연결됩니다. 그렇게 될 때, 성경의 많은 사건과 예화들을 통해서 하느님께서 하시고자 하는 말씀에 심오한 진리가 숨겨져 있음을 하느님의 온전하신 뜻 안에서 우리가 오직 은혜로 알게 됩니다.
"전능하신 하느님" 이라는 고백과 "말도 안돼." 라는 주장은 양립할 수 없는 것입니다. 만일 누구라도 성경을 읽으며 "말도 안돼." 라고 생각한다면 그 사람은 전능하신 하느님의 성경말씀만 믿지 않을 뿐만 아니라 하느님의 전능하심도 믿지 않게 되어 하느님 자체를 못믿게 되는 것라는 데에 문제가 있습니다. 미사 중의 신앙고백에서는 믿는다고 하면서도 사실은 안믿는 것이지요. 믿음의 은사를 받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믿음의 은사를 청하지 않았기 때문에 받지 못한 것이고 받지 못해서 믿지 못하는 것이지요. 믿음은 내 맘대로 노력해서 믿을 수 있는 것이 아니고 주님께서 은사로 허락하셔야 믿을 수 있는 것입니다.
아담과 하와가 카인/아벨/셋만 낳은 것이 아니고 무수한 아들 딸을 낳았을 것입니다. 무려 930세까지 살면서 아들 딸을 낳았다고 성경에서 분명히 이야기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딸의 이름이 나오지 않는다고 해서 딸을 낳지 않았다고 생각하면 안됩니다. 딸을 낳았다는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고 해서 딸을 낳지 않았다고 생각해서는 안됩니다. 성경이란 우리의 구원을 위하여 하느님께서 남겨두신 생명의 말씀인 것이지, 족보 타령하라고 남겨두신 말씀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성경에는 말하는 부분이 있고 말하지 않는 부분이 있읍니다. 다시 말해서 아들을 낳은 것은 이야기 하지만 딸을 낳은 것은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이야기하지 않읍니다. 이야기하지 않았다 해서 딸을 낳지 않았다 라고 해석할 수는 없읍니다. 논리적으로 추론하면 카인의 아내는 아담과 하와가 낳은 딸들 중의 하나인데, 1.아담과 하와가 카인을 낳기 전에 낳은 딸일 수도 있고, 2.카인을 낳고 난 다음에 아벨을 낳기 전에 낳은 딸일 수도 있고, 3. 아벨을 낳고 난 다음에 셋을 낳기 전에 낳은 딸 일 수도 있고 4.셋을 낳은 다음에 낳은 딸일 수도 있읍니다. 분명한 것은 아담과 하와가 카인, 아벨, 셋만 낳은 것이 아니고 무려 930세까지 살며 계속 아들 딸들을 낳았다고 성경에서 분명히 얘기하기 때문입니다.(창세기 5장4절) "셋을 낳은 다음, 아담은 팔백년을 살면서 아들 딸을 낳았다. 아담은 모두 구백삼십 년을 살고 죽었다."
다시 말씀드리지만, 성경에서는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딸을 낳은 이야기를 하지 않읍니다. 아들도 중요한 경우에만 이름이 나오고 그렇지 않으면 이름도 나오지 않고 태어난 사실 조차도 말하지 않읍니다. 성경에서 얘기하지 않는 많은 부분이 그러한 사실이 없어서 이야기하지 않는 게 아니고 성경의 일관적 주제인 인류의 구원과 별다른 관계가 없을 경우 생략되는 것입니다. 아담이 과연 얼마나 많은 딸들을 낳았을지는 성경에서 정확히 이야기하지 않기 때문에 우리가 정확히 알 수 없지만 분명히 낳은 것만은 확실한 사실입니다. 인용한 성경 구절에 아들 딸을 낳았다 라고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성경에서는 말하는 부분(아들)이 있고 말하지 않는 부분(딸)이 있는데, 말하지 않았다고 해서 그러한 사실이 없었다고 단정해서는 안될 것입니다.
우리가 가톨릭 신앙 안에서 "믿는다" 라고 말할 때, 도대체 무엇을 믿는 것일까요? 혹시라도 우리의 세상적 지식에 기반한 의심을 믿고 있지는 않을까요? 우리의 의심이 하느님의 성경말씀보다 우월한 것으로 착각하여 우리의 의심을 신앙하는 바보가 된 것은 아닐까요?
우리가 믿는다 라고 말할 때 우리는 하느님(그리스도, 성령)을 믿는 것입니다. 그러면 어떤 하느님을 믿는 것일까요? 우리의 상상 속의 하느님을 믿는 것일까요? 옛날 옛적 호랑이 담배피우던 시절의 전래동화에 나오는 하느님을 믿는 것일까요? 아니면 우상숭배자들과 같이 피조물을 멋대로 흠숭하면서 허수아비 하느님을 하나 세워놓고 믿는 척 사기를 칠 때, 등장하는 그런 하느님을 믿을까요? 이런 것들은 하느님이 아닙니다. 순전히 자기들 맘대로 상상해서 믿거나, 또는 마귀에 미혹되어 사적계시(무당공수)를 믿는 것이지 참된 하느님을 믿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믿는 하느님은 성경에 계시된 구약의 야훼하느님, 신약의 성자하느님이시고 유일하신 구속주이시자 구세주이신 주 예수 그리스도, 그리고 오순절에 강림하시어 믿는 이를 하나로 만들어 주시는 성령하느님이신 것입니다. 성경에 세 위격으로 계시된 삼위일체 한 분 하느님을 믿는 것이지 우리 마음대로 상상해서 우상을 만들어 내어서 믿는 것이 아닌 것입니다.
우리가 성경말씀을 의심할 때, 우리는 절대로 하느님을 믿을 수 없습니다. 성경에 계시된 하느님만 하느님이신데, 성경말씀을 의심하는 사람이 어떻게 하느님을 믿을 수 있겠습니까? 우리가 만일 의심하고 있다면 하느님 앞에 회개하고 바른 믿음을 청해야 할 것입니다. 믿음은 내가 만들어 내는 것이 아니고 하느님께서 은총으로 허락하시는 것입니다. 어느 날 이러한 은총을 선물로 받을 때, 의심의 먹구름이 물러가고 성령께서 밝은 빛을 우리의 심령에 밝혀주시어 하느님의 성경말씀을 생명의 양식으로 취하게 될 것입니다.
성경이란 사람들이 상상해서 소설 쓰듯이 쓴 것이 아닙니다. 하느님의 계시진리를 성령의 감도 아래 여러 기록자들을 통하여 장구한 세월에 걸쳐 기록되었음에도 일관적으로 하느님의 사랑과 인간을 위한 구원을 다루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저희 가톨릭 교회에서 성경을 하느님의 공적계시라고 부르는 것이며, 성경은 하느님의 계시말씀이고 그러한 계시를 기록함에 있어 성령의 감도에 의해 기록자들이 성경을 남겼다고 교회에서 공식적으로 가르치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날 무분별하게 범람하고 있는 자유쥬의적인 신학 사조의 나쁜 영향으로 인해 마음대로 성경을 해석하는 문제가 있을 뿐만 아니라 심지어 성경이 사람들의 상상에 의해 쓰여진 소설이나 설화 수준의 허구이다 라고 주장하고 있고, 어떤 사람들은 성경이 그저 공자 맹자 수준의 사람들이 남긴 도덕 교과서에 나오는 훈화일 뿐이라고 생각하고 있음에 참담한 마음을 금할 수 없습니다. 다시 말씀드리지만 성경의 저자는 하느님이시며 하느님께서 성경을 남기신 이유는 우리가 성경을 통해 하느님의 온전하신 뜻을 깨달아 알고 하느님의 영원하시고 복되신 생명에 참여하게 하시려는 것입니다.
성경을 읽으며 놀라게 되는 것은, 오랜 기간에 걸쳐 40 여명의 서로 다른 기록자들을 통해 쓰여졌음에도, 성경에서 사용되는 용어와 상징들은 동일한 의미로 지속적으로 다루어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성경을 기도하시며 공부하시면 성령께서 인도하시어 신약의 빛에 의해 구약의 예표들이 완벽하게 해석되도록 은혜를 주시어 하느님의 온전하신 뜻을 알게 하실 것입니다.
성경을 의심 없이 하느님의 말씀으로 받아들이고 봉독할 때, 우리에게 생명의 말씀이 되어 우리로 하여금 하느님의 뜻을 알게 하고 하느님의 뜻 안에서 복된 삶을 살게 하실 것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의심하라고 성경말씀을 남기신 것이 아니고 믿고 구원을 얻으라고 생명의 말씀으로 남기신 것이기 때문입니다. 믿음의 은사를 청할 때 하느님께서는 즐겨 들어 주시어 우리에게 믿음을 허락하실 것입니다.
이상은 나눔 차원에서 말씀드렸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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